웨딩부케가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

웨딩부케

by 플로리나

27살의 신부였던 나는 결혼식 준비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친구들 중에서 1번 타자로 웨딩마치를 울리다 보니 조언을 구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살림과 혼수는 마당발인 엄마가 알아서 척척 준비해주셨다. 문제는 소위 스드메라고 말하는 웨딩 촬영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할 곳을 찾는 일이었다. 신부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꼼꼼히 알아보고 신경 쓰는 영역이다. 당시 어리숙했던 나는 예식장을 예약하면서 예약실 옆에 있는 샵에서 덜컥 스드메 예약을 해버렸다.


내 평생 가장 예뻐 보여야 할 결혼식 날인데, 나의 취향과 스타일에 잘 맞는 곳을 알아보지 않은 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딱히 물어볼 곳도 없고 이미 예약한 걸 취소하면 위약금을 물게 될까 봐 걱정돼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 바로 옆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내연애 사실이 밝혀지면 둘 중 하나는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회사 선후배들에게 결혼 준비한다는 말을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팀의 언니가 나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어서 나한테 몇 가지 질문을 툭툭 던졌는데, 내가 바로 걸려든 것이었다. 어차피 탄로 났으니 언니한테 결혼 준비 조언이나 얻자 싶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많은 분야에 능숙한 언니는 나의 결혼 준비 멘토가 되어주었다.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으면 일단 스드메 예약부터 취소하고 마음에 드는 곳을 알아보길 권했다. 나는 조심스레 예식장 스튜디오에 전화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취소는 간단했다. 심지어 위약금도 없이 그냥 취소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자마자 언니가 추천해준 스튜디오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보통은 웨딩 플래너와 계약하고 나면 플래너가 신랑 신부의 취향에 맞는 스튜디오와 드레스샵을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결혼 준비가 진행된다. 그런데 언니가 추천해준 스튜디오는 촬영 기사님의 아내 되시는 분이 웨딩 플래너 역할을 해주신다고 했다. 그래서 웨딩 플래너 컨설팅 비용이 별도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드레스와 자연스러운 신부 화장이 마음에 들었다. 비용이 더 저렴하다고 서비스 수준까지 낮은 게 아니라는 걸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상담 첫날부터 시원시원한 말투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플래너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친한 언니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분은 결혼 준비에 일자무식한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컨설턴트였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남편과 함께 웨딩산업 분야에서 일하시는 그분의 모습은 꽤나 멋있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떠오르는 드레스샵이 몇 군데가 있다 하면서, 양가 부모님의 직업, 거주지역, 성향을 물어봤다. 내 드레스 고르는데 나의 취향과 체형에 맞는 걸 고르면 되지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싶었다. 내 표정을 보고 플래너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결혼식 날에 신부 모습을 보고 부모님 친구들, 특히 시부모님 친구분들이 행여라도 흠잡는 말씀을 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시집간 지 얼마 안 된 새댁의 입장에서는 시댁 어른들의 작은 말씀 하나에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자는 거였다. 세월이 흐르면 그런 이야기들이야 기억도 잘 안 나겠지만, 분명 신혼 초기에는 어른들의 말씀과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플래너의 호구조사에 순순히 응했다.


플래너는 내 스타일과 부모님의 성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드레스샵과 드레스 디자인을 제안해줬다.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지 싶어서 나는 그분이 권해주는 드레스를 입어봤다. 난생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데, 제일 먼저 입어본 드레스가 마치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처럼 마음에 쏙 들었다. 나중에 후회가 남으면 안 되니까 나머지 두 군데 샵에 들려서 다른 드레스도 몇 벌 더 입어봤다. 그러나 맨 처음 입었던 것처럼 찰떡같이 나한테 맞지 않았다. 드레스샵 투어를 하고 나서 플래너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더 깊어졌다. 그 후로는 머리 스타일, 액세서리, 한복, 화장 등 추가로 결정해야 할 부분들에 있어서 전적으로 그분의 의견을 따랐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결혼식 당일 하객들한테 드레스가 특이하면서도 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나의 웨딩 플래너는 스튜디오 촬영은 물론이고 결혼식 당일까지 든든하게 많은 걸 챙겨줬다. 친정 식구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폐백실에서도 내 곁에 서서, 긴장한 나의 얼굴 근육을 자연스럽게 펴줬다. 언니가 없는 나는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그분께 참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워킹맘 생활이 만만치 않을 텐데,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게 참 신기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결혼식 사진을 찾으러 가던 날, 그분께 물어봤다.


“저도 직장인이지만 매번 즐겁게 일할 수는 없는데, 플래너님은 어떻게 늘 웃으면서 기분 좋게 일하세요?”


“웨딩 관련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내 몸이 힘들어도 같이 웃게 돼요.”


사랑하는 사람과 새 가정을 꾸릴 생각에 들뜬 예비 신혼부부를 보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거. 내가 봐도 정말 행복한 일인 것 같다. 게다가 웨딩 플래너의 역할은 신랑 신부의 기쁜 순간을 더 빛나게 해주기 위해 서포트하는 거니까 예식 하나를 마칠 때마다 얼마나 뿌듯할까 싶다.


그렇다고 웨딩 플래너라는 직업이 파티를 즐기듯 신나기만 한 것을 아닐 것이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사항이 까다로울 수 있다. 입맛대로 못 맞춰주면 그에 따른 컴플레인도 많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결혼식이 무산되는 안타까운 커플을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 안에는 벽을 향해 기울여둔 액자들이 여러 개 있었다. 파혼한 고객들의 액자를 차마 치우지 못하고 한동안은 그렇게 뒤집어 둔 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행복한 미소를 띤 남녀의 사진을 반대로 뒤집어두는 그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싶다. 설렘을 안고 예식 준비를 하는 남녀의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이니 더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하나씩 떠올려보면 웨딩 컨설턴트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피곤한 직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 고작 2년차였던 나는 그 당시에 그분을 보며 마냥 부러워하기만 했다. 나는 왜 저렇게 의미 있고 행복한 직업을 갖지 못했을까 한탄하면서 말이다.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일터를 떠난 상태에서 되돌아보니 내가 했던 일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의 편리하고 알뜰한 소비를 돕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며 보낸 시간이 꽤 많았다. 모든 고객은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내 덕분에 더 만족스러운 경제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한테는 매달 21일이 되면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이 중요했다. 그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고 이따금씩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푸는 데서 내 직업의 가치를 느낄 뿐이었다. 돈을 쓰는 일에서 더 이상 흥미가 느껴지지 않자 내가 그 일을 유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의 직업에서 좀 더 유의미한 가치를 일찍 발견했더라면 현재까지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진작에 내 일의 가치를 높이 샀더라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생각들을 떠올려보고 있다.


똑같은 꽃을 가지고도 웨딩부케를 만들면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인다. 로맨틱한 결혼식에 대한 여자들의 로망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웨딩부케가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성스러운 결혼의 서약이 오고 가는 가운데 신부의 두 손에 조심스레 들려있는 꽃이니 당연히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웨딩 플래너라는 직업이 근사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웨딩부케를 구성하고 있는 꽃은 더 특별해 보인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일이 타인의 행복에 일조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고, 나 역시 그 행복의 가치를 스스로 체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시간을 켜켜이 쌓다 보면 그 기록과 행보가 나에게 축복해주는 날이 올 것이다. 웨딩부케를 들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소중한 가족을 꾸린 그날처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