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수 억 짜리 집 사고 아파트 무너질까 걱정해야 하는 현실
무더운 여름날 남편이 바람을 좀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에 무슨 바람을 쐰다는 건지 의문이긴 했지만 일단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30분 뒤쯤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 두 장. 알고 보니 남편은 입주가 1년 2개월 남은 아파트가 잘 지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확인을 하러 간 것. 그날 본 공사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이었다.
셋째를 임신하고 우리 부부는 다자녀 특별공급 청약을 준비했다. 간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당첨을 목표로 했고 일상의 잉여에너지를 모두 청약공부에 썼다. 역할분담을 해가며 열심히 준비한 결과, 청약 당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과제였기에 최선을 다했고 당첨 사실을 확인한 날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만큼 지금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는 우리에게 평범한 집 그 이상의 의미다. '사활을 걸었다'까지는 아니지만 당시의 처지와 상황에서 보다 나은 환경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첨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당첨의 기쁨도 잠시, 불안하다 몹시
입주 예정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서는 아파트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그 중에는 유독 부실공사에 대한 소식이 많이 공유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 관심 있게 봤던 사건은 바로 광주의 한 아파트. 10개 층 이상이 붕괴되었는데 부실시공과 부실관리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또 하나는, 올해 상반기에 사전점검을 위해 방문한 입주 예정자가 해당 세대 내 화장실에서 인분을 발견한 일이다. 이는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연관되어 있으며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뿐인가. 최근에는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붕괴되는 사건이 터졌다. '어린이 놀이터 예정 지점과 지하주자창 2층의 지붕층이 연쇄적으로 붕괴되어 무너져내린 사고'라 했다(입주 후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사건은 더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입주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시공사인 GS건설은 설계와 시공단계에서 점점 기준보다 적은 철근을 넣어 시공했고 비는 공간은 콘크리트로 채웠다고 한다. 그 결과 아파트 뼈가 없다는 의미로 '순살 자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입주를 앞둔 우리 부부에게 이런 뉴스는 초관심사였다.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지, 부실 공사의 원인은 무엇인지 연일 기사를 클릭해서 읽었다. 아무리 우리나라에서만 이례적인 '선분양제도'가 문제라고 해도 수억, 수조의 금액이 투입되는 공사를 이토록 부실하게 할 수가 있는 건가. 내가 2023년에 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입주예정자 오픈채팅방과 지역부동산카페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또는 입주할 아파트가 괜찮을지 걱정하는 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오죽하면 내가 속한 예비입주자들의 모임에서 '요즘 날씨도 더운데 공사 현장에 계시는 분들께 아이스크림이라도 한번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까. '우리 아파트 제발 좀 잘 지어 주십사' 하는 예비 입주자들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나조차 기사를 보며 알아볼수록 놀라고 있는 건 바로 설계부터 잘못되었다는 '순살자이' 논란이다. 설계에서 문제가 있었고 감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시공에서는 더 심각한 부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기업은 1조1300억을 들여 재시공을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기업의 이윤추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업의 이윤추구를 통해 사회 전체적인 부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은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 부부만 해도 입주가 더욱 가까워진 내년부터는 가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아파트에 투입할 각오를 하고 분양을 받았다. 이렇게 한 개인 또는 한 가정에서 몇 십 년을 담보로 대출을 해서라도 살려고 하는 아파트인데 그런 곳에서 이런 부실공사가 자행되고 있다니.
제대로 했으면 없었을 망신
대형 건설사들을 풍자하는 네이밍이 유행하고 있다. 철근이 부식된 채로 건물 외벽에 버젓이 노출되어 '통뼈캐슬'이라고 부르고, 폭우가 내렸을 때 건물에 물이 줄줄 새 단지가 침수된 경우를 빗대어 '흐르지오'로 부른다. 망신이다. 제대로 했으면 듣지 않아도 될 망신이라 시민들은 그저 웃프다.
지금부터라도 도덕적 해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실공사가 드러나면 타격이 크다. 잘못을 인정하고 재시공을 하는 건 이미지 타격도 크고 재정적 손실도 막대하다. 그러니 처음부터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서 안전 시공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그뿐이다. '통뼈캐슬', '흐르지오', '순살자이'...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제발 아파트 부실공사가 아니라 아파트 안전공사 소식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부실 공사가 터지고 나면 어느 브랜드였는지 따져볼 것이 아니라 어느 시공사가 더 안전하게 짓는지 경쟁하는 때가 도래하면 좋겠다. 수 억 원을 들여서 구입하는 내 집을 두고 지진도 아닌데 무너져 내릴까 걱정하는 현실이 속상하다.
중국의 기나라에 걱정 많은 사람을 빗대어 표현한 '기우(杞憂)'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라는 뜻으로, 소위 '쓸데없는 걱정'을 이르는 말이다. 아파트 완공을 기다리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파트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저 '기우'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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