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ico Nov 18. 2022

안방 할아버지와 어머니 (1)

<안방 손님과 어머니> 외전

나는 금년 세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김소심이고요. 열 하나씩이나 되는 식구들과 함께 산 좋고 물 좋은 하동에서 살고 있답니다. 아차, 큰일났군, 할아버지를 빼놓을 뻔했으니......

우리 식구가 처음부터 이곳에서 산 것은 아니야요. 동리에 고양이들이 아주 많고 바람이 불면 바다 내음이 맡겨지는 곳에서 나는 태어났지요. 우리 어머니도 그곳에서 나고 자랐고 우리도 그곳에서 태어나 터를 잡고 살았으니 평생 그곳에서 살 줄 알았는데, 영역을 옮겨야 한다지 뭐야요.

지금에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그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답니다. 어찌나 가기 싫던지 만날 울고 떼쓰고 그랬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죄스러운데, 할아버지도 마구 원망하고 그랬어요.

그게 무려 일 년도 더 전의 이야기이니 저도 많이 어려서 철이 없어 그랬지요. 우리 오빠들과 어머니는 만날 밖으로 나가 나무에 얼굴도 비비고 돌에 엉덩이도 문지르고, 또 쌈질도 여러 번 하면서 영역을 지켰는데, 그래서 그곳이 우리 집이고 우리 영역인걸 고양이들은 다 알았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필시 할아버지가 게으름을 부리다가 영역 표시를 소홀히 해서 그랬던 게지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새 집이 너무나도 훌륭하여 나는 불평이 없어요. 방도 여러 개이고 맛 좋은 풀도 마음껏 뜯어먹을 수 있지요. 그리고 원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무엇이든 만들어 주어요. 커다란 창을 열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풀내음도 맡기지요. 예전에 살던 곳보다 곱절로 좋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고향이라 그런지 가끔은 그리워요.


우리 어머니는 처녀 적에 길고양이로 살았다는데,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할아버지를 만난 곳도 그곳이었지요. 어머니가 길에서 살던 시절에 사람이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여 아무에게도 정을 주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할아버지를 만나고 생각이 차츰 바뀌었대요. 할아버지는 갈 곳 없는 어머니에게 집도 지어 주고 물고기도 잡아다 주고, 또 김누리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 주셨대요. 내 이름도 그렇게 이쁘면 좋을 텐데요.

난 어머니의 신식 이름이 무척 부러운데, 점남이도 그런가 봐요. 점남이는 부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가 이름을 새로 지었다면서 무어라무어라 꼬부랑 말로 자기를 불러달라지 뭐야요. 이름만 갖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저는 양반 가문의 고양이이니 남들과 다르다며 점잔을 빼고 그러는데, 다들 어이가 없어 대꾸를 않아요. 우리 모두 어머니 태에서 똑같이 태어났는데, 저는 양반이고 우리는 아니라니. 이건 무슨 고양이가 애완 물고기 기르는 소리인가요.

난 점남이가 무어라는 지도 모르겠고, 또 이름이란 모름지기 제가 짓는 것이 아니고 집안의 제일 어른이 지어주는 것이 옳으니 그냥 점남이라 하지요. 기실 집안 식구들 누구도 점남이가 불러달라는 대로 부르지 않아서 점남이는 무척 약이 오르는 모양이지만 점남이는 그냥 점남이지요 무어.


어머니는 길에서 생활하면서 언니 오빠들을 낳았다는데, 그때 어찌나 고생을 하고 살았던지 곤희 오빠는 꼬리가 짧똥하니 뭉툭하고, 막례 언니는 문희 오빠의 반토막도 안 되는 크기로 태어났대요. 막례 언니는 지금 다 큰 처녀인데도 몸집이 아기 고양이만 하지요.

인적 없는 곳을 찾느라고 밥을 먹던 곳에서 아주 먼 공사장에다가 아기들을 낳아 놓는 바람에 어머니도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그러다 보니 젖도 잘 나오지 않았다고 그래요.

거기에 공사장이 너무나 춥고 먼지가 많아 언니 오빠들이 하나씩 아프기 시작했대요. 특히나 막례 언니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보이니 어머니는 겁이 더럭 났다고 해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찾아가 내 새끼들을 살려주십사 하고 청했더니 할아버지가 오냐 하고 나타나서 언니 오빠들을 거두고, 또 다 살려내셨대요. 우리 할아버지는 못 하는 일이 없지요.

막례 언니는 너무 작고 약해서 할아버지가 품에 끼고 다니면서 젖 먹이고 닦아 주면서 키웠대요. 너무 감사한 일이지 뭐야요. 할아버지가 아녔음 지금 막례 언니는 세상에 없을 텐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성큼하고 눈물이 나요. 난 막례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로 좋거든요. 이건 비밀인데, 엄마보다도, 할아버지보다도 더 좋아요. 막례 언니는 참말 다정하고, 천사처럼 맘씨도 곱고, 또 세상에서 제일로 이쁘거든요.

어머니는 언니 오빠들을 할아버지 손에 맡겨놓고 독하게 마음먹고 떠나려고 했는데, 도무지 마음이 끊어지지가 않아서 한 번만 보고 가려고 할아버지를 찾아갔다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어머니를 안으로 들였대요. 난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너무 슬퍼서 울어요. 어머니는 참 억척스럽고 무뚝뚝한 분인데,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양 굴지만 몰래 눈물을 훔치지요.


나와 점남이, 가칠이는 창고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길 생활을 한 번도 안 해 보았지요. 언니 오빠들은 우리가 철없이 굴거나 사고를 치면 혀를 끌끌 차면서 "저것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물정을 모른다."라고 해요. 길에서 생활하는 것은 정말 너무 무섭고 고생스러울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집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지요.

우리는 창고에서 태어났으니 거기가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와서 우리를 전부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난 그때까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창고에 나타난 할아버지가 어찌나 크고 무섭던지 보자마자 도망을 쳤답니다. 그렇게 꼬박 한나절을 숨어서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다니도록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죄송스럽지요.  

난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좋은데, 너무 무섭기도 해요.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로 크거든요. 할아버지는 늘 날 귀애하여주시고 해 달라는 건 다 해주시는 데다 꾸중도 안 하시니 무서워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가까이 오면 나도 모르게 도망을 치고 말아요.

내가 자꾸 도망을 쳐서 할아버지가 마뜩잖아 그런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어요. 그래서 늘 할아버지에게 열심히 말도 걸고, 부르시면 소심이 여기 있어요 하고 대답도 꼬박꼬박 하지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내가 자꾸 도망 다닌다고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가끔 할아버지는 소심이가 너무 무섭게 쳐다본다고 그러는데, 당치도 않은 말이지요. 나와 가칠이는 얼굴이 무척 닮았지마는 가칠이는 고양이답지 않게 눈매가 쳐져 있어 순해 보이는 인상인데 난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갔지요. 그래서 그리 보이는 게지 내가 부러 눈을 뾰족하게 하고 할아버지를 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다만 이따금 원망은 아니고, 얼핏 섭섭한 기분으로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하는 막례 언니가 할아버지한테 가서 쓰다듬어 달라고 하거나 안겨 있을 때야요. 난 언니가 너무너무 좋아서 항상 같이 꼭 붙어 있고 싶은데 내가 할아버지를 겁내 하니 막례 언니는 날 떨어뜨려 놓고 할아버지한테 가서 부비곤 하지요. 그럴 때 할아버지가 "막례야. 가서 소심이를 보살피거라. 응."하고 보내주면 언니는 순순히 와서 날 안아주고 핥아주고 할 텐데 싶어서 아주 조금은 속상해요.

그런데 할아버지도 막례 언니가 너무도 사랑스러운지 끌어안고 털을 빗겨주고, 또 작은 발바닥도 만져보고, 입도 맞추고 그러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심정이 이해는 간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맘씨도 고운 작은언니가 사랑스럽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어요.



새로 이사 온 집은 참 좋아요. 볕도 잘 들고 예전 집보다 넓지요. 놀 거리도 숨을 장소도 훨씬 많은데, 할아버지는 부족하다 여기는지 만날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요.

그러면 나와 가칠이, 점남이는 옆에서 지켜보다 할아버지 물건들을 가져가지요. 우리가 훔친 물건들을 숨겨놓으면 할아버지가 무어라 중얼중얼하면서 그것들을 찾으러 다니는데, 그걸 보는 것이 참으로 재미나답니다.

새 집에서는 예분이 언니와 운섭이 오빠가 같이 먹고 자고 해서 그것도 참 좋아요. 난 예분이 언니가 참 좋거든요. 예분이 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친언니처럼 날 잘 보살펴주었는데, 요즘은 무에 그리 화가 났는지 계속 앵돌아져 있어요. 할아버지가 훌륭한 방을 하나 마련해 주었는데, 예분이 언니는 운섭이 오빠하고 거기에서만 지내지요. 그것이 난 참으로 서운해요.

우리가 막 이사를 왔을 때에는 난 너무너무 겁이 나서 예분이 언니와 늘 숨어만 있었는데, 언니도 그때 혼이 나가 있었거든요. 고집쟁이 운섭 오빠가 이사를 오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언니 혼자 와 있었는데,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운섭 오빠가 애가 쓰이는지 언니는 자꾸 울기만 했어요. 그땐 나랑 같이 붙어 다니면서 서로 의지했는데 글쎄, 운섭 오빠가 오자마자 오빠랑만 꼭 붙어서 난 신경도 쓰지 않지 뭐야요.  

방 밖에는 놀이터도 있고 장난감도 많고, 또 향이 좋은 풀들도 몰래 뜯어먹을 수 있으니 나와서 같이 놀자고 해도 들은 척 만척하겠지요. 언니랑 놀고 싶어서 방에 들어가면 무섭게 골을 내어요. 언니와 오빠는 이제 더 이상 하숙을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집 식구인데. 언니는 아직 그것이 영 면구스럽고 어색한가 봐요.

나는 어머니도 있고 형제들도 있는데 언니는 피붙이라고는 달랑 운섭이 오빠 하나뿐이니 이해해주어야지 싶다가도 언니를 보러 방에 들어가면 사납게 호통을 하며 나가라고 하니 무던히 섭섭해요. 그래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두 가끔 심술을 부리게 되지요.  

운섭이 오빠는 울 집에서 덩치도 두 번째로 큰데 예분이 언니는 아직 오빠를 아기 취급하면서 싸고돌아요. 우리가 놀러 가면 운섭이 오빠를 어떻게 하려나 싶어 자꾸 암팡지게 화를 내니 참 곤란하게 되었지요. 정작 운섭이 오빠는 누가 오건 말건 관여치 않는데. 얼른 언니가 마음을 풀고 다시 나랑 다정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마루로 나오면 맛 좋고 향기 좋은 풀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면서 꽁꽁 숨겨 놓았지요. 예분이 언니가 방 밖으로 나오면 그 풀도 보여주고 같이 힘을 합쳐 밖으로 꺼내서 같이 흙도 파구 그러고 싶어요.     


예전 집에서는 밖에 나가 산보도 하고 마당에서 햇볕도 쪼이고 했는데 새 집에서는 집 안에서만 지내지요. 하지만 나는 본디 밖에 나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집 안에도 해가 잘 드니 도리어 잘 되었어요. 모두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언니 오빠들도 영역 지키느라 다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예전에는 문희 오빠가 만날 밖으로 나가 순찰을 돌았어요. 불량배들이 언니들에게 수작을 걸거나 영역에 멋대로 들어오면 쌈질도 곧잘 했지요. 문희 오빠는 힘이 아주 세고 쌈도 아주 잘하거든요.

성정이 과묵해서 이렇다 저렇다 딱히 말을 하거나 불평을 하진 않았지만 늘 신경을 곧추세우고 집을 지키는 것이 마땅치 않았을 거야요. 큰오빠는 유순하고 태평해서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새 집에서 문희 오빠는 좋아하는 방석에 누워서 쉬거나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볼기를 두들겨 달라고 응석을 부리거나 하지요.  

원래 문희 오빠는 세상일이 어찌 돌아가건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성격인데, 예전에는 안 하던 행동들을 하곤 해요. 어두운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자꾸 예분이 언니와 운섭이 오빠 방에 들어가서 언니 자리에 버티고 앉아있지 뭐야요. 예분이 언니는 성을 내면서 나가라고 하는데, 문희 오빠는 개의치 않아요.  

참말로 이상하지요. 본디 오빠는 남 싫다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데, 예분이 언니가 골을 내고 나가라고 누차 말해도 듣지 않고 물끄러미 예분이 언니만 보고 앉아 있어요.

예분이 언니가 제 화를 못 이기고 방 밖으로 나와 앉아 있으면 문희 오빠는 그쪽으로 몸을 돌리고 앉아 또 예분이 언니만 한참 보고 앉아 있지요. 우리가 왜 그러는지, 혹시 언니에게 성이 나서 그러는지를 물어도 무어라 대답도 않고 잠자코 예분이 언니만 뚫어져라 보지요.  

혹시 그 자리가 마음에 딱 맞아 그러나 싶어 할아버지가 문희 오빠한테 썩 훌륭한 자리를 두 개나 만들어 주었는데, 오빠는 여전히 한 자리에서 고집스럽게 앉아 있지 뭐야요. 예분이 언니는 결이 나서 발을 구르고 눈을 흘기면서 타박을 해도 문희 오빠가 듣지 않으니 별 수 없다 여기고 있었는데, 얼마 전엔 모두들 놀랄 일이 생겼지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입을 떼는 일이 드문 큰오빠인데, 할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시고 나니 문희 오빠가 예분이 언니한테 그러겠지요.

"너 나랑 같이 마루로 나가볼 테냐?"

"누가 마루에 나가고 싶다니?"

"나가면... 꼭대기 숨숨집이 있다."

"누가 그런 거 보고 싶다든?"

"그네도 있다."

"그... 그네...?"

예분이 언니는 그네가 못내 궁금하였는지 문희 오빠를 따라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오지 뭐야요. 우리는 모두 놀라 둘을 쳐다보고 있는데, 문희 오빠는 개의치 않고 예분이 언니에게 이것저것을 보여주겠지요.

예분이 언니는 그네가 신기한지 만져도 보고 분재들 냄새도 맡아보고 하는데, 난 언니가 너무 반가워서 가서 아는 척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나를 못 가게 막지 뭐야요.

의아하여 어머니를 바라보니, 어머니는 문희 오빠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계시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의뭉스러워서 난 예분이 언니와 놀려고 작정한 것까지 잊어버렸지 뭐야요.    


문희 오빠도 여전하지만 더 여유로워지고 태평해졌지요. 예전에는 집을 지키느라 동분서주하였는데 이제 집에서만 지내니 다른 데에도 신경을 쏟기 시작했어요. 툭하면 거울에 저를 비춰보기도 하고 몸단장에 신경을 쓰지요. 큰오빠는 신수도 훤하구 무늬도 화려한 데다 떡 벌어져서 무척 멋진데 새삼 무에 그리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작은오빠와 장난을 치고 놀거나 씨름 시합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예분 언니와 운섭 오빠가 있는 방을 들락거리면서 계속 살핀답니다. 작은오빠는 작은오빠대로 금희를 돌보느라 바쁘니 자연히 둘이 어울려 노는 시간이 줄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둘은 참으로 의좋게 지내지요.

내가 어렸을 때 멋지고 듬직한 큰오빠가 너무 좋아서 졸졸 따라다녔는데, 크면 오빠한테 시집갈 거라고 말하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달희 언니가 우리는 가족이니 난 문희 오빠에게 시집갈 수 없다고 말해주었는데, 어찌나 서럽고 큰언니가 야속하던지 온종일 숨숨집에 틀어박혀서 엉엉 울었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기억이야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예분이 언니와 운섭이 오빠는 본디 우리 집에 세들어 살았었는데, 이사를 오고 나서는 이제 우리 가족이라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예전이야 남남이었으니 모르지만 이젠 가족이니 그럼 예분이 언니도 문희 오빠한테 시집을 갈 수 없는 건가요?  

난 그것이 궁금하여서 막례 언니한테 물어보았는데 언니는 답은 아니하여주고 샐샐 웃기만 하겠지요. 그래서 허실 삼어 직접 물어보아야겠다 하고 예분이 언니한테 심상하게 말을 비쳐보았더니 언니는 코가 새빨개져서는

"원 세상에 별일이 다 많지! 게 무슨 매친 소리인가? 누가 네 오빠한테 시집가고 싶다든?"

하고 팩 소리를 지르며 훌훌 뛰지 뭐야요.  

아니 내키지 않으면 그냥 그렇다고 할 일이지 무에 그리 골은 내고 그러나요. 난 그저 궁금했을 따름인데 싫은 소리를 들으니 속이 상하여서 언니는 우리 가족 아니라고 하면서 심술을 부렸는데, 큰언니에게 들켜서 무척 혼이 났지요.  

달희 언니는 왜 나에게만 엄격하게 구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남남이라며 심술을 부린 것은 죄스러워 회심하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운섭이 오빠는 그리 서운해하는 기색도 없고, 큰언니를 쳐다보며 몸을 배배 꼬는 것이 그다지 맘이 상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요.

서운하다고 말대답을 하였다가 더 크게 꾸중을 들었어요. 억울하여 대들고 싶었지만 달희 언니는 나보다 크고 무서우니 방법이 없지요.

울면서 막례 언니한테 갔더니 언니는 넓은 품으로 날 꼭 안아주고 달래어 주었어요. 난 세상에서 작은언니가 제일로 좋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안방 손님과 어머니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