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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려 낸 식빵 한 조각

항암치료 중인 누군가를 위한 팡파르-식빵 한 조각


내 별명은 빵순이


어렸을 때 너나 나나 할 것없이 너무 가난했다. 외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집에는 소머리표 전지분유가 있었다. 뜨거운 물에 가루 우유를 한 숟가락을 타서 먹은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 지금도 타 먹는 전지 분유는 아니더라도, 그 유아의 입맛을 가진 덕분으로 찬 우유보다 뜨거운 우유에 가루 커피 한봉지를 넣어서 마신다.


우리의 어린시절은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도 가난했다. 알루미늄 누런 도시락(일본식:밴또)은 김치, 멸치볶음 정도로 들고 왔다. 어린시절부터 밥 보다는 ' 아 점' 겸으로 가벼운 식사대용의 조찬으로 먹었다. 도시락은 멸치볶음, 콩자반, 계란후라이를 넣어서 들고 왔다. 그 당시 난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 아이이다.


왜냐하면


내 기억으로 엄마가 우리집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집 가장 노릇을 해야했다. 엄마는 사업수업도 뛰어난 편이므로 일감은 늘 넘쳐 났다. 엄마는 집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미싱자수를 하셨다. 미싱기술자도 4~5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퇴근을 한 후에도 늘 미싱 앞에서 밤을 세웠다. 그래서 엄마가 밤을 세우는 날은 고요함 속에서 미싱 소리만 덜 덜 덜 거리며 돌아갔다. 우리의 아침식사는 늘 서양식이다. 우리에게 아침인사를 건내는 사람은 아버지다. 엄마의 방은 불이 끄져 있다. 혼자서 힘든 밤을 세우며 양단 이불에 기계자수를 수 놓고 잠이 든다. 생계를 위해 낮 밤을 가리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 우리 3남매의 아침 식사 당번은 아버지의 몫이다. 우리는 아침식사로 따뜻한 우유 한컵, 계란후라이, 식빵 한조각이 우리 3남매의 식사이다. 


브런치의 의미는 아침과 점심의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가볍게 먹는 빵과 과일이다. 난 어려서부터 이런 멋진 식사를 누렸다. 시간은 좀 다르지만 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누리고 있다. 


결혼을 하기전 남편에게 딱 잘라 말했다." 난 아침에 밥을 먹지 않고 빵으로 대신한다." 아침에 밥을 거의 먹어 본적이 없다. 결혼 전 밥만 먹었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한 덕분으로, 지금까지 군 소리 없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어떨결에 말을 했는지 몰라도 할 수 없다. 약속은 약속이다. 내 입맛에 맞춰 아침은 식빵 한 조각, 우유, 과일 한조각으로 가벼운 식사만 하고 각자의 일터로 나간다. 남편의 마음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내 입맛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내 별명은 빵순이 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빵종류도 다양하다. 여기 저기 방송국 채널을 돌리면 티비 속에 나오는 유명 빵집의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게 보이는 빵들로 넘쳐난다. 그런 빵을 한 두번 맛 보지만 그 맛은 어렸을 때 먹었던 동네 빵집의 식빵이나 단팥빵의 맛은 아니다. 


잠시는 유명 베이커리의 빵집들을 찾아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해 보지만 그것도 초딩시절에 맛보았던 그 입맛을 느끼기는 역 부족이다. 그래서 반대로 추억처럼 그 시절에 맛 보았던 옛날 빵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는 그냥 식빵 사다 먹어요."


다시 현란하고 고급스러운 빵보다 어렸을 때 동네 빵집에서 먹었던 빵이 최고다. 아직도 식빵, 단팥빵, 슈크림빵, 땅콩빵이 내 입맛에는 딱이다. 


나를 살려 낸 식빵 한조각과 방울토마토, 계란후라이


건강몸으로 지탱하기는 쉽지는 않다. 우리집의 새천년 인사는 남편의 암 수술과 내 암 수술이 2년여에 걸쳐 진행했다. 암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후 관리가 중요하다. 암 수술하면 방사선 치료 혹은 화학요법치료의 항암치료를 받는다. 드라마를 보면 단골주제로 나온다. 항암치료를 받는 도 중 오심, 구토 , 발열, 두드레기 등. 구토가 가장 힘들다.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온 날은 물 한모금 삼킬 수 없다. 12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나를 살려낸 건 그냥 식빵 한 조각, 방울 토마토, 계란 후라이였다.


물을 삼키면 꼬르르 다 토해 버린다. 약 한 알 삼키기도 너무 어려웠다. 인간의 목숨은 고래 심줄 보다 질기다. 나를 살려 낸 건 식빵 한조각이다. 다른 건 먹을 수 없지만 먹을 수 있는 건 있었다. 바로 큰 아이와 나를 건강하게 출산하고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해 준 식빵 한 조각이다. 그랬다. 임신 중에도 7~8개월의 심한 입덧과 구토로 고생을 했다. 그 때도 식빵 한 조각이 나를 살렸다.항암주사를 맞고 오는 날은 짐승같이 울부짖었다. 오죽하면 나는 헐크로 변하는 시간이라고 말을 했다. 


그랬다. 항암주사1~2회는 거의 비몽사몽간에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제발 이 시간만 넘기게 해 달라고 기도만 했다. 며칠간은 울부짖으며 성난 동물마냥 방안을 뒹굴며 혼자서 죽을 힘을 다해 보이지 않는 놈과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쓰러져 자거나 며칠을 꼼짝달싹도 할 힘이 없다. 그럼 백혈구 수치는 떨어지고 항암치료를 쉬어야 한다. 난 그럴 수 없다. 몸은 지쳐도 내 정신은 살아 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이제는 죽나 보다 하는 순간 내 뇌리에 확 하고 지나가는 생각이 났다. 그래 그거야 '식빵 한 조각' 


난 식빵 한 조각을 먹으며 백혈구 수치도 올라가며 난 12회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잘 마쳤다. 그 이후로 식빵은 나의 생명을 살린 구세주 같다. 식빵은 그냥 식빵이야. 


식빵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난 지금도 후라인팬에 식빵 한 조각을 굽는다. 


그래 이 맛이야. 어쩜 아버지를 생각한다. "정이야~ 많이 먹어, 우유 뜨겁다. 후후 불어가며 마셔라. " 그래도 고맙다. 내 고통을 모르고 가신 아버지가 고맙다. 식빵 맛처럼 달콤 짭짤한 그 맛. 아버지예 걱정 마이소. 건강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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