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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즈음에

무명시절을 벗어나고 싶어 -옷이 사람이다. 나도 글로벌 스타

-30살 즈음에


엄마는 참 좋다. 하소연을 해도 되고 무조건 투정을 부려도 되는 존재다.  그녀에게도 30대는 있었다.

요즈음 아이들 유행어처럼 '안 물'이다. 내 30살이 너무나 암울한데 엄마라의 마음인들 헤아릴 겨들은 1도 없다.  옛말은 한 마디도 틀리지 않는다. "너거 자식새끼 키워봐야 말짱 황이다." 아예 지금부터 신경끊어라."


부모들이 좋아하는 직업이 그들의 자녀에게는 지옥일 수 있고, 나 역시 내 적성에는 영 아니었다. 우리집 형편은 내가 벌어야 하는 상황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음메 하며 매일 사투를 벌이며 축 늘어진 어깨로 은행문을 밀고 들어갔다. 드디어 나에게도 볕이 든다. 나도 결혼을 한다. 그 당시 28세는 노처녀로 직장이 없다면 선 조차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좋은 직장 덕분에 결혼에 골인을 했다. 이제 해방이다. 난 자유다.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미치면 콩깍지가 씌인 다고 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은행에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이제 안녕. 난 집에서 놀거야, 그게 내 꿈이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끝내고 집안어른들에게 신고식도 마치고 대충 정리가를 하며 이제 남편에게 말하자. 내 꿈은 ' 현모양처'라고 집에서 아이 키우고 남편 퇴근 후 된장찌개 보글 보글 끓여서 함께 먹는 거라고 말 하자. 난 말 도 못했다.


남편은 나 보다 더 비장하게 각오를 한 것 같다.  " 여기 한번 앉아 볼래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코 앞에 내빈 자신의 '월급봉투' 와 함께 지출목록을 보여준다. 난 놀라고 말았다. 지출목록에는 0원만 남았다.

그 당시 대기업 팀장의 월급은 쥐꼬리 정도였다.  월급은 각자가 알아서 챙기고 필요에 따라서 반 반 부담하자.  이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합시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의 월급은 나 보다 적었다. 그 당시 은행의 보너스는 1500퍼센트.  그래도 한 마디는 하고 싶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난 현모양처가 꿈이에요.


남편은 일언지하 칼로 무우 베듯 아이는 두 집에서 키워 주고 반찬은 시 어머니가 다 만들어준다.

그냥 일을 하라고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 이후 일본 주재원 생활을 위해 직장을 통쾌하게 그만 두었다.  

은행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아 일본주재원기간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한국에 들어오면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무명시절을 벗어나고 싶은 30살 즈음에-옷이 사람이다.

세상은 호락 호락하지가 않다. 이력서와 강의계획서를 들고 동냥 하듯  나 한번만 강의 하고 싶어요. 현대백화점 평생교육 담당자를 만났다. "무료 강의도 좋아요. 그냥 한번만이라도 강의 시켜주세요." 담당자는 말한다. "강사님 무료 강의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예요." 유명 연예인, 스타강사들을 홍보하며 백화점 매출신장을 위해 전단지 작업에 쓸 수 강사들이란다. 나를 누가 문화센터에 세워 주겠는가?  

난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며 울면서 돌아다녔다. 대한민국 부산 땅 내 하나 강의 할 곳이 없다. 강사료는 강의 하는 거 보고 달라고 하는데 아예, 얼씬도 하지마란다.


20년전의 무명시절 옷은 사람이다

무슨 용기와 베짱으로 그런 옷을 구입했나 모르겠다. 20년전에 난 무명시절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 서면 지하철에 내려 옷이라도 한벌 사 볼까? 기분 전환이라도 하자며. 그냥 어떤 옷 가게를 들어갔다.

어떤 옷을 찾으세요. 나도 모르게 "멋지게 보이는 옷이요, 그리고 무대에서 화려하게 보이고 싶어요." 

가격은 좀 세지만 후회는 안 할거예요. 20년전 투피스의 가격이 500,000원이란다. 

이 옷은 두고 두고 입을거예요. 이 옷을 입고 무대에서 강의를 헤보세요. 살짝 할인은 해드릴게요. 우리는 손해보고 파는 거예요.

어제 '오겜'으로 에이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이정재 배우가 나와 비스무리한 옷을 입고 나왔다.

난 '오겜'을 보지 않았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짤만 10분짜리를 보고 말았다.

이런걸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하나?  무명시절의 설움을 달래고 싶었다. 일단 1회성 강의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연예인 같은 옷을 사서 입었다. 나에게 안 맞는 옷이라도 난 입고 싶었다. 그 옷을 입고 신분 세탁을 하듯 나도 멋지고 화려하고 싶었다.


꼭 이옷을 입었다고 강의를 잘 하고 내가 멋지게 보였겠는가. 옷빨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난 너무 절절했다.

너무 속상했다. 오죽하면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엄마 사람들은 왜 나에 대해 알려고도 안 할까? 나 좀 알아주면 안될까? 처음부터 강의를 잘 하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엄마 아는 사람들에게 강의 한번만 하게 해달라고 말을 해 봐.

엄마는 말한다. " 물건이라면 사달라고, 팔아달라고 하겠는데. 강의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글로벌 스타를 꿈꾼 30대는 대단히 잘 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김치하고 나물하고 밥 먹는데 지장은 없다.  글로벌 스타는 시상식에 저 옷을 입었는데 나는 동네 아줌마들과 브런치 타임을 하자고 해야 하나.


30대 친구들이여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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