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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ammeow Sep 16. 2024

소중하지 않은 가족

내가 우울한 사람이 된 이유

“가족이니까”

“남보다는 가족이…”

“그래도 가족인데”



가족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많고, 가족이 소중한 사람들도 많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내 가족도, 남편의 가족들도 다 달갑지가 않다.

내게 가족이란 가스라이팅, 족쇄 같은 존재.

내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자기들 필요할 때만 가족 운운 하는 존재.

과거를 잊어보자, 안 좋은 기억을 잊어보자 싶어 좋은 기억들을 아무리 떠오르려 하지만

10/10 나쁜 기억들만 존재하는 가족들과의 기억.

매일매일 소리 안 내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서 꺼이꺼이 울면서, 스스로 두 팔로 몸을 감아서 토닥이면서 위로하던 날들.


그 문 밖에는 들리는

“저년은 왜 사니?, ”미친년“, ”또라이년“ 온갖 욕설들.

내 이름만 누가 불러도 무서워서 두 다리가 후덜 거리던 나날들.



-

정말 별것도 아닌 걸로 맞던 학창 시절.

공부하다 핸드폰, 공부하다 다른 짓, 학교 끝나고 곧장 집에 안 와서,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피시방 가서.

그런 이유들도 난 다리가 피멍이 들게 맞았고, 뺨을 맞았으며 그런 날 친구들은 위로를 해줬고 같이 분노해줬고, 매번 핸드폰을 뺏어가서 온 메시지를 뒤지고는

어디 감히 가족 욕을 했냐며 또 피멍 들게 맞고,

왜 그랬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 더 맞았고,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줘야나 덜 맞았다.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두 손 싹싹 빌어야 했고, 싹싹 빌어도 맞아야 하는 날들이 천지였다.

양아치도 아니었고, 공부도 곧 잘했었다. 반에서 3등은 했었으니까.

내 친구들 아무도 우리 가족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친구는 그랬다.


“내가 너였으면 이미 자살했을 거야..”



-

어머니는 쌍둥이를 엄청 편애하셨다. 영재고, 늘 전교 1등이고, 학원도 없이 과학고 가서 카이스트를 갔고, 지금도 장학금 국내 국외 다 받아서 전 세계 10위권에 드는 대학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한 번은 쌍둥이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는데, 내가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번 더 물어보니 나한테 화를 내며 내 얼굴에 책을 던졌다.

어머니는 곧장 바로 나를 혼냈다.


“네가 바로 이해를 못 하니 착한 니 쌍둥이가 그렇게 화를 내는 거다, 잘 설명해 줄 때 바로 이해해야지 “


늘 그런 식이였다.

늘 내가 잘못한 사람이고, 늘 내가 못난 사람이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랬다.

욕먹는 사람도 다 나고, 한소리 듣는 것도 다 나다.

쌍둥이는 자기가 더 잘난 이유로 나를 한껏 무시하곤 했다.

둘이 의견이 다르면 과학, 수학 공식을 끄집어내면서 넌 그것도 모르니까 바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소리가 듣기 지겨워서 귀를 막고 듣지를 않으려 했다. 그러더니 그 모습에 열이 받아 의자를 내동댕이 쳤다.

주방 의자가 작살이 났다. 그 의자를 나한테 던지려고 했으니.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네가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착한 애가?”


늘 그랬다.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가족들과 말이 하기 싫어졌다.

말 한마디를 하면 욕 열 마디를 먹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면 나한테 그만 상처 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매일매일 울었다.



-

화장실에 빈 휴지심이 남았다.

난 전혀 몰랐는데 보자마자 또 나한테 화를 내셨다.


 “넌 꼭 왜 쓰고 나면 휴지 새로 안 갖다 놓니? 하는 짓이라곤…”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설명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럼 너 아니면 누구니 이 집에??‘


그러곤 결국 밝혀진 건 내 쌍둥이었던 거다.

까먹었다고 한다.

아무도 사과하는 사람 없이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집에 물건이 사라져도 꼭 나한테 그런다.


“너 아니면 누구니 이 집에?”


내가 그렇게 싫으면, 나를 굳이 키우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어느 날 처음으로 화장실에서 울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그렇게 미워?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하는 거야”


그랬더니 기가 찬 모습을 하시면서

“네가 미운 짓만 골라하는데 어떻게 안 미워하니???” 그러셨다.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가 무슨 미운짓만 했는데?? 그럴 거면 왜 날 키우는 거야?‘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나지만 또 온갖 욕을 먹었을 거다.

또 어머니는 조르르 큰오빠에게 달려가서 내가 그딴 말을 했다며 훈육을 시키라고 했을 거다.

늘 큰오빠는 그럼 나를 그렇게 때리고, 어머니는 옆에서 “저 미친년 기가 찬다” 그러시면서 앉아계셨다.



-

나는 유학을 택했다.


제일 큰 이유는 가족한테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은 이해를 못 하겠지, 자기들 눈에는 내가 제일 이상한 사람이니까.

내가 왜 그렇게 상처받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제일 이상한 사람일 뿐.

유학을 다녀오니 좀 잔잔해해 졌다. 이제는 언제든 핸드폰을 해도 되고, 언제는 친구를 만나러 가도 되는 나이가 돼서 그런지.

차차 잊힐 때쯤, 또 다른 사건이 생겼다.


어머니랑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각자가 큰 캐리어 하나씩 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중간중간에 서있는데

어머니는 자리에 앉고 싶어 하셔서 앉았고 나는 좀 떨어진 거리에 서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입으로나 전달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렸는데 어머니가 없어졌다.

놀래서 두리번거리니 건너편에 어머니가 계셨다.

그 역에서만 양쪽 문이 열리는 지하철이었던 거다.


어머니의 놀란 마음도 알지만 내리자마자 온갖 욕을 퍼부으시면서


“애초에 니년이랑 온 게 잘못이다 쌍둥이랑 갔었으면…”


온갖 욕을 듣는 거까진 괜찮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화가 끝까지 났다.

그 한 달 여행을 위해 엄청나게 열심히 계획을 짜고, 계획표를 어플로도 만들고 혹시 핸드폰 소매치기 당할 수도 있으니

a4용지로 모든 걸 다 프린트해왔고, 그랬던 모든 정성들이 그냥 무너져버렸다.

그 간 괜찮았던 사이도 무너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럼 한국 가자, 나도 그렇게 까지 말 듣고 싶지 않고 이런 일 있을까 봐 유심칩 꼭 하자고 그런 거 말 안 들은 것도 엄마야”


그러고 한국에 돌아오는 날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와서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다.

난 이미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늘 내 인생 똑같은 레퍼토리, 어머니는 오빠한테 조르르 가 모든 걸 말하고, 모든 걸 온전히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나를 미친놈 미친년으로 다들 취급하겠지.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내 할 말을 해야겠다. 나도 내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내 입장을 말하면, 또 때릴 거라는 걸. 이번에 때리면 난 나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찰을 부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엄연한 학대니까.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말이다.


오빠는 결국 나를 불렀고, 내 입장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너 엄마한테 그게 뭐야?‘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빨리 가서 사과하라며, 네가 곧장 사람들 나가는 대로 엄마한테 가서 엄마 챙겼어야지, 엄마 잃어버리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난 말했다.


”근데 그건 엄마 이야기만 들은 거잖아. 나도 내 입장이 있어 한쪽만 듣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엄마가 그렇게 놀란 건 이해를 해.

나도 깜짝 놀라서 당황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욕하는 거 까지 이해를 하는데, 그 정거장에서만 두쪽 양쪽문이  열릴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


애초에 지하철 역 문 앞에 같이 들어가려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옆쪽 문으로 휙 가버린 것도 엄마라

그래서 같이 있을 수가 없었고 중간에 유모차도 있고 사람들이 있고, 지나가기엔 내 캐리어는 크고.


혹시 모를 일 대비해서 유심칩 해야 된다는 것도 돈 아깝다고 싫다고 그런 것도 엄마였어 “


그랬더니 그럼 그렇지.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대역죄인입니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찌검이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말했다.

“만약에 지금 나 때리면 나 정말 경찰 부를 거야”


바로 내 머리를 휘 갈겨버렸다.


너무 얼얼해서 눈이 휘둥그레진 거 같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일어나는 순간 거의 목을 조르듯이 벽에 나를 내 팽개쳐버렸다.


“이년 미친년 아니야? 뭐? 경찰을 불러?? 그게 가족한테 할 소리냐? “


나는 속으로 기가 찼다.

그럼 나한테 한 모든 폭언들은 가족한테 해야 하는 언행들이었을까? 언행불일치에 기가 찼다.


“어 나 진짜 부를 거야”


하는 순간 어머니도 뛰쳐나오더니


“이년이 미쳤나? 너 돌아도 제대로 돌았구나? 네가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말대꾸는”


그럼 그렇지. 언제나 모든 상황은 100퍼센트 내 과실이 여야 한다.

아, 20대 중반인데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 아니, 그날이 되기 전 이미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한 거 같다. 가족들과 아예 연을 끊을 준비.

그래서 짐을 싸서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집을 나왔다.


그러고 연을 끊고 살던 몇 개월 후 오빠 생일 즈음에 어머니한테 연락이 왔다.

내용은 그냥 내가 먼저 손 내밀어서 사과하라는 내용.

그 메시지를 읽고 엉엉 울었다. 감동받아서? 아니.. 어이가 없어서

결국 그냥 내가 손을 먼저 내밀었고, 최대한 과거를 떠올리지 않으며 가족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



가족들은 이상하게도 나한테 정을 준 적 없고, 따뜻했던 적 한 번도 없으면서

살뜰히 자기들을 챙겨주길 바란다.

난 그래서 가족이 싫다. 자식은 부모를 고를 수가 없다. 부모도 그렇다. 그렇지만 부모는 자식을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 부모가 가족의 따뜻함을 자식에게 가르치지 못했다면, 가족으로써 뭔가 해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모들은 그저 자식 밥 먹이고 재워주는 최소한의 책임을 진 부모 정도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도 그럼 독립할 때가 되면 자식으로서 최소한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들 마음이 내키는 정도로만. 왜냐, 그런 가족의 정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받은 정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조카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런 정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그래서 난 결혼도 도움 없이 했다.

도움을 받는 게 또 다른 족쇄 같았다. 이걸 빌미로 “가족이니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아무런 도움을 받고 있지 않다. 나한테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면 해서.



-

부모님과 큰 오빠가 같이 운영하던 학원이 있었는데

핸드폰 하다 걸려서 핸드폰을 압수당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집안 인터넷을 다 막아놓고 컴퓨터도 잠그고 집전화도 비밀번호를 걸어버렸다.


이게 감옥이 아닌가?

집에 도착해선 쌍둥이에게 집에 도착했다고 보고를 하면 쌍둥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집에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내가 양아치였나? 집에 잘 안 들어오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전혀 아니고…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거나 떡볶이 먹거나 그런 거 조차도 안 되는 집이었다.

그냥 학교 끝나면 집. 그렇게 살아라. 공부하는 학생이 핸드폰도 필요 없다며 핸드폰도 가져가셨다.

친구들이 날 너무 안쓰러워해서 공기계를 챙겨줬다. 그걸 하다 걸렸는데

학원복도 한 복판에서 날 걷어차버렸다. 큰오빠가, 모두 앞에서

거기 있는 학원생들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학원생 중 한 명이 나한테 다가왔는데, 친해지게 되었다.

그 언니는 원장님, 부원장님이 나한테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너는 근데 정말 너희 가족과 다른 거 같다고 그랬다.

그 말에 위안을 받았고, 그 이유가 내가 죽지 않고 버티는 이유였다.


가족들과는 다른, 더 좋은 사람으로서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나는 저렇게 안 살아야지,

나는 저 사람들처럼 안 살 거야.

내가 죽고싶은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내 삶이 너무 힘든거면 그건 내가 잘못한게 아니야..

그렇게 죽는 삶은 내가 너무나도 억울할 거야.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면 너무나도 억울할 거야.

내가 꼭 성공해서 돈 벌고 독립하면 난 가족들과 연을 끊을 거야.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당당하게 말할 거야…‘



온갖 이유들이 내가 열심히 살고 버티게 하는 이유였다.




난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좋았던 기억들을 열심히 끄집어 내려해도 가족이란 존재 자체가 지옥과 같다.

지옥이 좋았던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지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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