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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Apr 06. 2024

정물 속에서 흐르다

Polaris [Home]

베이스 소리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음악을 접해오며 듣기 스킬이 상승했다는 기분을 느꼈던 때는 잘 인식하지 못했던 베이스 라인이 물결처럼 다가왔을 때였다. 재즈 공연장에서 베이스가 시시각각 변화시키는 색채에 전율을 느낄 때면 내가 얼마나 베이스 소리를 좋아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이건 성향 같은 거다. 바이올린보다 첼로 소리에 좀 더 마음이 간다던지, 절창 고음보다 김민기 아저씨의 저음에 감동을 느낀다던지 말이다. 굳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를 꼭 읽어봐야 할 것 같고,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 해 (We Ride)>를 베이스 라인이 즐거워 반하게 되는 것처럼.


베이스는 독특한 악기이다.

리듬 악기면서 화성 악기이다. 이 두 가지 얼굴로 조합하는 상상력은 다른 악기보다 매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이스가 없는 상태에서 기타나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면 얼마나 음악이 깽깽이가 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주변의 공기를 바꾼다고 해야 할까? 베이스가 어떤 선율로 리듬을 타느냐에 따라 미술관을 거닐며 새로운 작품을 마주하듯 음악은 전혀 다른 색채로 돌변한다.


오늘 베이스로 새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Polaris 폴라리스의 음악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바늘과 실 같은 건가 보다. 일전 Fishmans 피쉬만즈를 얘기하며 사토 신지의 죽음 이후 남아 있는 멤버들의 음악 활동을 언급하였는데, 그중 Polaris는 Fishmans 피시만즈의 팬이라면 반드시 거쳐갈 수밖에 없는 정류장과도 같다. https://brunch.co.kr/@b27cead8c8964f0/1 물론 과거 이름값의 등에 타고 있는 음악은 절대 아니다. 카시와바라 유즈루의 베이스는 이들의 영광스런 과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기폭제 역할도 하지만, Polaris라는 자화상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아이덴티티일 뿐이다.


음악은 밤하늘에서 수줍게 반짝이는 아름다움 같은 드림 팝을 지향한다. 화려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편안함은 이들의 음악을 잊은 듯 찾게 되는 매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오오야 유스케의 착한 목소리도 한몫을 하지만, 카시와바라 유즈루의 베이스가 공기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베이스가 중심에 있지 않으면서도 중심에 위치한 밴드. 베이스를 편애하는 내게는 수줍은 고백이라도 하고 싶을 만치 매력적이지 않겠나. 마치 '빛과 그림자'와도 같은 양면성이다. 유화로 그린 여러 귀여운 동물들의 앨범 아트는 음악을 설명해 주는 안정감을 더해준다.


카시와바라 유즈루는 여기에서도 으레 그 만의 독특한 그루브를 선보인다. 언급했듯이 아주 살짝 느린 엇박을 그는 구사하는데, 참 어떻게 이렇게 연주를 할 생각을 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왜냐 하면 베이스는 리듬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리듬 악기가 리듬을 맞추지 않는다? 이게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살짝 느린 그루브가 없다면 이들의 맛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Polaris는 바로 그의 시계추에 맞춘 감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하는 풍경 속으로 말이다…. 그 플로우 속에 한껏 부유하고 싶은 내가 존재한다.

흐른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물 속에서 흐른다.


이들이 만들어 주었던 여러 예쁜 그루브 중에서 첫 번째 출사표를 우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입에 도토리를 잔뜩 물고 있는 다람쥐는 착하게 너 하나, 나 하나 싸우지 말고 나눠먹으라고 기꺼이 자신의 저장고를 내어줄 것만 같다. Fishmans의 팬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반가운, 단지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나즈막히 속삭이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베이스를 귀담아듣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해도 괜찮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베이스는 항상 거기 뒤에서 서 있다. 단단한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서서히 덥혀 준다.

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눈시울을 줘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느슨한 뼈대가 잡아주는 견고함이 항상 은밀히 나를 흐르게 했음을.



 Polaris [Home]  2002년 光と影(Hikari to Kage 빛과 그림자)

https://youtu.be/SpqbMN8cQyc?si=BfeWXkVTiHbG9y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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