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많이 받았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뛰어들면서 정말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자신감과 패기 넘치던 이십대 초반의 나는
코이카 소속이 아닌 다른 민간 업체에서 6개월간 해외봉사를 갔다왔다.
우리 팀은 '망한 팀 중에서도 망한 팀'이었다.
망한 이유는 여러 개 있었다.
1. 현지 음식을 먹지 않는 유일한 팀
2.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유일한 팀
3.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팀
4. 어느 행사에 초대되면 내가 왜 이런 걸 해야되냐고 따지는 팀
5.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팀
왜 이런 팀이 만들어졌는 가하면
첫 번째, 문화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은 자가 선발되었다.
두 번째, 나라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단원들이 극도로 겁을 먹고 조심했다.
세 번째, 국내교육 훈련이 완벽하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네 번째, 단원들끼리 시기 질투하고 경쟁자로 밟고 일어서려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팀에서 떨어져 나와 마지막 한달 동안은 열심히 나만 일하고 봉사했다.
어느 날은 내가 혼자 열심히 아이들에게 행사 음식을 배식하고 있는데
같은 단원들끼리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쉬다가 나만 빼놓고 저녁식사를 하고 왔다.
나는 정말로 개빡쳐서,, 뭐 이런 애들이 다있나 하고 엉엉 울었다.
국제개발협력이나 사회복지를 하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지 않았다.
그런 몇몇 또라이 때문에 내가 마음의 병을 얻어 심각하게 아팠다.
(너무 아파서 운전면허적성검사에서 탈락했을 정도다)
후에 내가 계속 국제개발협력 커리어를 이어가서 취직을 했는데
대리님이 코이카는 다를 거라고 했다.
아무래도 선발되는 사람들이 수준이 다를 거라고.
정말 그럴까?
내가 처음으로 스무살에 일본으로 해외 여행을 가서 반성했던 점을 적어놓은 리스트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 리스트 대로 (부정적으로) 행동했다.
첫 번째, 내가 해외까지 왔는데... 하고 보상 심리 작동
두 번째, 나 한국인이야 이것들아, 하고 갑질 인격 버튼 눌림
세 번째, 각종 우울증 합병증 다 걸려서 타이레놀 필수
나는 파견국에서 마음이 아플 때마다 타이레놀을 먹고 버텼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병원에서 과잉 진료를 받아서라도
우울증 약을 몰래 반입하려고 한다.
진짜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이런 생각까지도 해야된다니깐..
(이지엔 말고 타이레놀이 마음 아픈데는 직빵)
아무튼 나는 이번에 국제개발협력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에 있어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그리고 코이카 단원이 아니라 민간 업체 단원이었기에 커리어적으로 무시를 당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코이카에 다시 지원을 해보려고 한다.
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충 신청을 해보고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신청해보았다.
된다면 후기를 올리도록 하겠다.
내가 계속 국제개발협력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