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우울해질 때 대처법
얼른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할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몇 달은 썩혀 묵은 양파가 들어있었다. 내가 먹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관절염에 퉁퉁 부은 손으로 양파를 건넸다. 나는 양파를 급하게 도마 위로 가져가 올려놓았다. 무척이나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다 못해 손이 덜덜 떨렸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점심을 굶은 것이 사람을 이리도 촉박하게 만들었다. 라면에 넣으려고 양파를 다듬어 썰고 있었다. 그러다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 칼날은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을 찢었다. 손톱이 없었다면 아예 떨어져나갔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데일밴드를 찾았다. 방 안에 있는 동생에게 연고와 데일밴드가 있었다. 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 가족이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주방에 와서 양파를 마저 썰었다. 그러다 나는 입을 떼었다.
"할머니, 오늘 연예인이 죽은 거 알아요?"
"응, 그러게. 죽었더라."
"어린 애가 죽었어요."
"어리다고? 얼마나 어린데?"
"스물 다섯 살이래요."
"젊음이 아깝다."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내 또래 여자 아이의 죽음에 먹먹한 마음이 들어 코를 훌쩍였다. 라면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러 밭에 간다고 하고는 등교 길에 차를 태워다 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뜨거운 여름 감자를 심고 집에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고 억, 하고 탁, 죽었다. 사인은 뇌졸증이었다. 갑자기 벌어진 아버지의 죽음에 우리 가족이 준비 되어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엄마는 그 충격으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십년이 지난 지금 그 죽음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가까운 이의 죽음은 당분간 해결이 되지 않는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 넋을 기린다고 엄마가 무당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일로 인해 가족과 불화가 생겨 지금도 가끔 그 얘기만 나오면 싸움이 붙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하는 것이 맞는 가. 사랑했던 만큼. 그 사후의 운명도 질겼다.
손이 찔린 다음날, 가운데 손가락에 데일밴드를 붙이고 회사에 출근해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손이 아파서 잘 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먼저 옆 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말했다.
"저번에 연예인 20대 A씨가 죽었을 때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많이 울었거든요."
"왜요?"
"그때는 눈이 아팠어요. 라섹 수술을 해서. 앞이 뿌얘가지고 지글지글 아팠어요. 그런데 뉴스 기사를 읽고 싶어가지고. 엄청 울면서 눈을 떴죠."
"사람 목숨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닌데 참 이상해요."
"네. 그러게요. 그때 마치 제가 드라큘라가 된 기분이었어요."
"드라큘라요?"
"네. 햇빛을 보면 타 죽는 드라큘라. 핸드폰에서 나오는 빛도 자극적이니까요."
"하하, 저 그런 얘기 좋아해요. 특별하네요."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일에 집중했다. 지난 시간과 비교해봤을 때 가장 많이 집중한 날이었다. 또 누군가가 죽었고 나는 그럼에도 또 '투, 비, 컨티뉴'로 이어지는 일상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일상은 영화와 다르게 시즌제가 아니라 의미 없는 부분까지도 소소하게 연결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오랜만에 비활성화 계정의 로그인을 눌렀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글을 쓰기 위한 계정이었기 때문에 비활성화 되어 있었는지 비활성화되었기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한 건지 헷갈릴 만큼 그 계정은 오래도록 잊혀져 있었다.
나는 카페로 들어갔다. 나의 글을 읽어줄 동성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문득 지금의 나와 그때의 우리가 얼마나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문동 빵뎅이'라는 닉네임이 보였고 '꿈은 이루어진다 R = VD'라는 글을 클릭했다.
기자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문동 빵뎅이가 말했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별 거 아니다.
첫번째,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이고
두번째, 기자는 월급을 받는 제대로 된 직장이고
세번째, 기자가 되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왈칵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닦아냈다. 어쩌면 너무도 단순하고 솔직했던 그때의 다짐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이라던 곳에 다니는 직장인이 되어보니 정작 나는 얼마나 제대로 서 있는 걸까.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던 꿈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그때의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아마 몰랐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선명하고 단순한 이유들을 글로 남길 수 있었겠지.
나는 천천히 화면을 닫았다. 그리고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추신: 참고로 이문동 빵뎅이는 내가 아니다. 나와 꿈을 같이 했던 친구의 닉네임이다. 또 다른 이름 '이문동 개복치'가 댓글을 남겼다. '짱 멋진 녀석.'
물론 꾸밀 수는 있다. 조금 더 멋지게, 조금 더 감동적으로. 하지만 아무리 치장해도, 그 글을 쓴 사람의 진짜 마음이 없으면 금방 들통난다. 겉으로는 단단한 문장이라도, 읽는 순간 텅 빈 울림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수필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진짜 내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수필은 결국 어색한 모양으로 뒤틀리고 만다.
수필은 거짓말을 못한다. 아니라면, 그건 이미 수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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