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의 깊이를 판단하기 위해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다.
아이돌은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해나가야 한다. 멋진 퍼포먼스로 빛나는 아이돌이 있는 한편, 소수의 팬들에게만 이름이 기억되는 아이돌도 있다. 오늘은 아이돌이 된 문예창작과 학생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관심받는 것과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짧은 시간 지하 아이돌로 생활했다. 지금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그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작고 어두운 무대 위, 핀 조명이 비추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했다. 한 편의 시가 전하는 감정과 그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이 세계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다른 것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일상 속에서 순간의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겼다. 아름다운 시는 힘든 순간마다 그를 지탱해 주었다.
그는 예술고등학교 내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휩쓸었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기대가 높았다. 그는 우리 학교의 슈퍼스타였다. 그리고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 A는 어느 날 노트를 꺼내 반 아이들을 모았다. A가 말했다.
“우리, 팬클럽을 만들자.”
몇몇 친구들은 책상을 두들기며 웃었다. A가 노트를 돌렸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서명을 했다. 그렇게 다섯 명 정도가 모였다. 훗날 그가 정말 데뷔 무대를 하게 되었을 때 찾아간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정말 데뷔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스물한 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공연의 기획서를 기획사에 제출했다. 열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따뜻한 감성이 녹아 있는 그 기획서는 마치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듯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팀을 이루어 활동하면서 자작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데뷔 무대에서 그는 로리타 패션을 입고
중간중간 요술봉을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청량했으나
언제 삑사리가 날지 모르는
위험한 곡조를 따라가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과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무대로 올라가 그에게 한 송이 장미를 건넸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실수를 정말 많이 했는데, 네가 보러 와 주었다고?”
그 공연 이후 그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왜 그토록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을 잊어버렸을까? 왜 긴장을 이겨내지 못했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는 이런 감정들을 SNS에 토로했다. 그 당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콘텐츠가 유행이었다. 익명으로 한 댓글이 달렸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악플이 달렸다.
‘듣기 싫어. 너의 하소연을 내가 왜 읽어야 돼?’
그가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그 댓글을 쓴 이가 밝혀졌다. 놀랍게도 1호 팬클럽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친구이자 그와 가장 많은 추억을 나누던 친구 A가 쓴 댓글이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다고 했다. 연습도 하지 못하고 발악하며 울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직접 A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A가 말했다.
“걔가 좀 컨셉 질을 해. 이럴 줄 알았으면 무대 보러 갈걸. 조롱이라도 하게.”
혹자는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오랜 꿈을 접어버릴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할 것이다. 많은 부분이 축소되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의 사건도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였다. 결국 그는 아이돌 생활을 접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아이돌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대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찾아왔다. 아마 어딘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모든 순간이 귀중한 배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마주친 첫 번째 실패였을 뿐이고 그 과정은 우리가 글을 쓰듯이 아직 지치지 말아야 할 과정이었다. 삶은 길지 않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글을 쓰면서 유튜브에 올라와 있던 그의 무대가 흔적도 없이 삭제된 것을 알았다.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