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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Sep 21. 2024

기자가 된 문창과생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시와 문장들을 적어내고 있었다

  기자는 문창과생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루트다. 방송작가, 에디터, 기자 등등 많은 직업들이 있다. 최근에 나는 한 구인구직 광고에서 '연설문 작성요원'이라는 신규 직업을 발견하기도 했다. 취업과 돈을 따라가는 시대에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설 자리가 있다는 것에 괜히 뿌듯해졌다.

   유튜브와 숏폼이 인기 있는 시대지만 아직 글이 사라지려면 멀었다. 글로 전달되는 감성이라는 것이 있다. 요즘 나는 빈티지 캠코더의 매력에 푹 빠져서 아날로그 영상을 찍고 있다. 내 오랜 취미인 다이어리 꾸미기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툴을 이용해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다꾸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스티커로 종이책에 꾸미는 것이 매력적이다. 또 최근에는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자는 취지로 개발된 현금 속지를 샀다. 이렇게 아날로그에 집착하는 나는 글을 쓰는 것 또한 좋아한다. 정말 좋아한 나머지 블로그의 닉네임을 처음엔 '펜'이라고 적었다. 초창기에는 소설을 써서 올렸고 그 소설을 좋아해 준 친구들이 있어 힘이 났다.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블로그를 통해 최근 들어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반장이었던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화번호도 바꾸고 sns도 뚝 끊어버렸다. 고등학교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이런 일은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당시 우리는 투쟁하길 좋아했지만 정작 우리가 다니는 예술고등학교에 대해서는 투쟁할 수 없었다. 그래봤자 헉, 소리 나오는 우리 손해였기 때문이다.


  Q. 뭐? 그래서? 앞으로 글 안 쓸 거라고?

  A. 아니요. 쓰긴 쓸 건데. 지금은 너무 지쳤다고요

  Q. 지칠 게 뭐가 있어? 이제 시작인데.

  A. 매일 글에만 매달려 살았어요. 이제는 인격적으로도 어른이 되고 싶다고요.

  Q. 십 년 가까이 글을 써놓은 게 아쉽지 않니?

  A. 그건 모두 삭제 됐어요! 썼다고도 할 수 없죠.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끝에 터줏대감들은 미래를 점치고 떠나갔다. 마음만 뒤집어 놓고 간 셈이었다.


  기자가 되어 나타난 그 아이는 여전히 블로그에 아름다운 시를 썼다. 또한 정식으로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나는 그가 고등학교 때 자신의 보물상자를 꺼내어 보여준 일화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백일장 예선 통과자가 반에서 우리 둘 밖에 없었던 날이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룻밤 묶기로 했다. 그의 방에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침대에 잠시 걸터앉은 그는 자신의 책상 아래에서 주섬주섬 보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의 시 중에서 좋았던 것들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합평지에는 수정사항도 있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온 칭찬도 있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 네가 쓴 글도 있어."

  나는 내 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마치 한 번도 향유해 본 적 없었던 감정처럼 낯설고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내 글이야 내가 재미있으면 그만이겠지만 소설가의 각오는 그리 낙천적이지만은 않은 길고 긴 수행 과정이었다. 소설가는 꾸며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추억을 가지고 여행하는 아날로그 창작자로서 묵묵히 세상을 관찰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드러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예술이 되지 않았다.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은 아날로그처럼 역사와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만 조급해질 뿐이었다.

  기자가 된 그는 이런 예술적인 감성을 수필로 써서 풀어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예민하고 섬세했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소가 흔들리는 그날의 풍경을 자세하게 담아냈다. 대학교 때 평생 문예창작과 외길 인생을 걷던 교수님이 기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최저 생계수단이라고 짐작하셨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은 지금 문학과 꽤 멀어진 나의 생각은 달랐다.

  소설이 더 생계에 가까웠다. 내가 사랑하는 취미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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