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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리셔스 Nov 11. 2023

선생님의 단어장에는 없습니다.

영어 그림책으로 치유받는 교사

갑자기 영어전담교사가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기간제교사때 한 번, 4년차때 한번 영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

그래도 6년 동안 영어와는 담을 쌓고 살다가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심지어 이 학교는 교생선생님이 와서 실습을 하는 교대 부설초등학교이다. 모든 시간 영어로만 수업해야 한다. 내가 정말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배로 커진다.


  '안그래도 요즘 대학생들은 영어회화쯤은 생존 아닌가...' 

드르륵 문을 열고, 영어교사로서의 첫날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Hello, everyone. 

어젯밤 달달 외운 영어를 차근차근 해갔다. 

'그래 좋았어. 이렇게 난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면 돼.'


그렇게 진땀 뺀 하루가 갔다. 안도의 시간도 잠시였다. 나는 내일 또 수업이 가득하다. 내일의 수업을 위해 스크립트를 쓰고 달달 외웠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일주일을 하고나니 안그래도 힘든 3월이 지옥같았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외운 패턴대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았을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당황을 했다. '내 패턴에 어긋나는 질문이잖아. 하지마 하지마.' 

이건 수업이 아니라 연기였고 쇼였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는 진정한 소통이 없었다.   

교과서에 있는 틀대로 수업을 하고 최대한 내가 실수하지 않는 선의 영어를 구사했다.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정형화된 표현만 사용했다. 

결국 나는 내가 하는 수업이 싫어졌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나는 교사로서 이상한 압박감을 갖고 있었나보다.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이 나를 항상 짓눌렀다. 

그날 집에 와서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보았다. 

"틀려도 괜찮아." 갑자기 나를 위해 책은 거기 꽃혀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를 했을때 아이들에게 읽어줬던 책이다.

그림책 한장한장을 넘길때마다 울컥 눈물이 맺혔다.

전전긍긍하며 학교가기 싫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틀려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그림책이 위로했다. 그날밤 난 오랜만에 곯아 떨어졌다. 




다음날 영어도서관으로 갔다.

어젯밤 그림책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나를 이곳으로 가게 만들었다.

나의 심리를 대변하듯 나의 눈에 딱 뜰어오는 그림책이 있었다. 제목은 The dark 였다. 어둠. 지금 나의 캄캄한 불안한 심리가 그책을 책장에서 빼내게 했다. 어린이들이 앉는 푹신한 콩주머니 의자에 앉았다. 

 책을 한장한장 넘겨갔다. 


평소에 어둠을 무서워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Laszlo.

Laszlo는 해가 질녘부터 두려움에 떤다.

옷장이나 혼자 샤워하는 샤워커튼 뒤, 

그 어딘가에 있는 어둠을 두려워한다.


어느날이었다.

Laszlo는 어둠을 만나러 가보기로 했다. 어둠은 지하실쪽에서 그를 부를는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과 Laszlo는 대면을 한다.  


어둠의 실체가 무엇인지 몸소 느껴본다. 막상 만난 어둠은 웃음을 띄는 것 같았다. 그렇게 Laszlo는 더이상 어둠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해가 지는 상황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어둠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어둠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강박이라는 어둠을 갖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나는 어떨때 그 두려움을 느끼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선생님, 양갈래로 떻은 머리를 뭐라고 불러요?"


교과선에는 long straight hair, curly hair 와 같은 예시가 있다. 이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영어로 궁금해한다. 자신있게 응 그건 ~ 이렇게 말하면 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영어로 생각해본적이 없다. 

"선생님도 잘 모르겠네. 같이 검색해볼까. pig tail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것 같네. "

애써 웃음을 짓으며 알려줬지만 난 자신감이 없어진다. 


이렇게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단어는 내 단어장에는 없는 경우가 많았다. 토익 토플공부, 각종 임용공부에서 나오는 어려운 단어들만 달달 외웠다. 어렸을적에도 문제집으로만 영어 공부를 했다. 자연스럽게 외국 아이들이 쓰는 간단한 단어들은 알지 못했고, 알 생각조차 안했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까. 


시험만을 위해 공부한 선생님의 단어장에는 없었던 단어가 그림책에는 있었다. zoooooop 이런 의성어가 아이들 그림책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영어그림책을 공부하기로 했다. 아니, 영어그림책으로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영어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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