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모두가 폐허가 되어있는 그곳에서
한 아이가 어엿한 인간으로 자라기까지 배워야 하는 것들이 참 많다.
아기인 둘째 아이를 기르며 그 과정을 복기해보니 하다못해 코가 막힐 때 숨을 쉬는 방법부터 시작해 기고 걷는 일, 사물의 이름을 알고 가리키고 말하는 일, 도구를 사용하는 법 등 매일을 계속해 배워가도 배워갈 것 투성이다. 이제 9개월을 맞는 아이는 그렇게 매일 새롭게 배우는 모든 것에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워 하고 또 내일이 되면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며 자라고 있다.
올해 일곱살이 된 첫째 아이는 이제 제법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난이도를 높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언어, 수학, 미술, 음악, 체육…얼마전에는 부루마블 게임도 배워 세계 여러 나라를 사들이고 통행료를 걷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지폐 오만원권보다도 백원, 오백원 동전을 더 갖고 싶어하던 꼬맹이가 이제는 십만원, 오십만원권을 알고 거스름돈도 계산한다.
새롭게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신비로움, 나아가 경이로움을 느낀다.
내가 지금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 생각하는 것들이 어떻게 배우고 익혀 온 것일지를 생각하면 숱한 시간과 나의 엄마의 얼굴과 수많은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지나간다.
지식이야 여러 교수법과 책, 교재 등을 통해서 습득이 될 수 있었겠지만, 사람으로서 어떤 성품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살아오며 여러 훈육의 시간을 통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나는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 온전한 자식들의 편인 엄마와 아주 작은 실수에도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혼을 내는 다혈질의 아빠 사이에서 자랐다.
아이를 향한 나의 훈육의 모습을 보면 나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둘 다 보여서 어떤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아주 다정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이럴 땐 이렇게를 알려주는 나의 모습과 성질을 못 이겨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심할 땐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나의 모습.
상반된 나의 모습은 나에게도 당황스러운 것이지만, 아이에게도 그러한 것이어서 어떤 때는 실수를 하고 나의 눈치를 보는 아이의 표정에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요즘은 욱하지 않는 아이로, 좋은 성품을 가진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읽어주며 훈육하는 부모 자신은 감정을 배제하고 훈육의 말을 하라고 하는데, 말이 쉽지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더구나 문제 행동이 자주 보이고,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면 아이가 잘못 자라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 더 호되게 훈육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짜증이 더 늘고 그 짜증을 때린다 거나 던지는 행동으로 분출하는 첫째와 대치하는 상황이 많았다.
동생이 생기고 전과는 다르게 관심이 분산되고 함께 하는 시간도 충분하게 충족되지 못해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
그걸 만회하려고 첫째에게 집중하는 시간과 이벤트로 노력을 하는 바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부족한가보다.
마음으로는 너무도 짠하고 안쓰러운데, 문제 행동으로 나오는 상황에서는 화를 주체하기가 어려워 아이와 전쟁을 하게 된다.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할 나이라는 생각에 아이가 울고불고 안아달라고 소리를 치더라도 잘못된 것을 짚고, 교정해야 할 행동과 말을 정확히 주지시키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기까지 훈육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정말 진이 쭉 빠진다.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워 순간 괴물 같이 변하는 나를 본 어떤 날에는 아이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모두가 상처 받는 전쟁 같은 시간.
돌아서면 퉁퉁 부은 눈으로 숨을 꺽꺽 하며 지쳐 잠든 아이가 보이고 그 모습에 또 괴로워서 옆에서 숨죽여 우는데 또 그런 내가 한없이 안쓰럽다.
그렇게 어느 하나 승자 없는 전쟁 후 폐허의 자리.
그 자리를 지나고 나면 아침에 살얼음판을 딛듯 오늘은 제발 그런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훨씬 더 많이, 오래 이런 전쟁 같은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훈육의 시간마저 아름다운 그런 모녀관계는 사실 자신이 없다.
아마도 우리는 또 전쟁을 치르고 폐허가 될 것이다.
다만 이 전쟁을 겪어내면서 꼭 가져야 할 태도를 배우고 있다.
아이가 잘못 자라면 어쩌지 하는 불안 대신, 올바른 말과 행동으로 아이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
나의 불안과 분노가 아이의 변화 기회를 막지 않도록, 일단은 온전하게 아이를 믿음으로 단단히 서야 한다.
지난 전쟁 후, 아이와 평화로운 며칠을 보내고 있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려다 가도 혼자 큰 숨을 내쉬며 잠깐 시간을 달라는 아이를 보면 참으로 기특하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닐지, 마음 한 켠 나에 대한 미움이 생겨난 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 걱정도 미안함도 딛고 믿음을 주려고 한다.
성장하는 아이를 향한 믿음, 그리고 그런 아이를 길러온 나에 대한 믿음.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들이 올바른 것일 수 있도록, 먼저 옆에서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