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육아의 일상이며 육아의 독

by 솔직킴

첫아이를 낳고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의 사자성어를 정해보자 했을 때 정확하게 ‘일희일비’로 떨어지는 시간이었다는 걸 확인했다. 아이가 자라며 하나하나 늘어가는 재롱에 웃고 아프고 다치고 심술을 부리는 순간에 울고, 아이의 일상은 나의 희비가 되어 있었다.


그 해만 그럴 줄 알았다. 처음이니까. 아이에게 온 세상이 되었던 시간이고 아이가 온 세상이었던 시간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해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며 일희일비의 나날들은 더 많아졌다. 아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수록 더 큰 희와 비가 찾아왔다. 마치 그 순간이 끝인 것처럼 행복했고 슬펐던 때가 잦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희비가 오갔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같은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을 때면 세상의 행복이 다 내 것 같았다. 잠시 후 나갈 준비를 하며 옷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머리를 묶다가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부리는 아이를 보면 그 행복을 그새 잊었다. 회사에 늦을까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에게 괴물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같이 소리를 지르고 겨우 등원을 마치고 나 차에 타면 한숨을 푹 쉬다 울면서 원에 들어간 아이 얼굴을 떠올리며 울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스럽게 맞아주는 아이에게 웃다가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 땡깡을 부리는 아이에게 또다시 괴물. 하루를 보내고 나서 오늘은 좀 잘했다 싶으면 웃고, 잘 못했다 싶으면 죄책감에 웃고 그렇게 일희일비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나니 희비조차 희미할 정도로 혼란한 시간을 보내며 일희일비의 날들을 반추해본다.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참 소중한 감정이지만, 하나하나 다 제대로 희의 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에 막상 희의 순간 자체를 즐기지 못했던 날들이 후회되었다. 특히 둘째를 낳고나니 그런 강박 조차 잊을 정도로 당장의 일들에 치여 지내며, 오히려 희의 순간이 더 분명해지는 것을 본다. 예전에 둘째를 낳은 엄마들이 둘째는 우는 것도 귀엽다고 한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청각에 예민한 나로서는 아이의 우는 소리는 괴롭지만 마침내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아이의 모든 순간이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순간을 온전히 기쁨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첫 아이와의 시간들이 미안함으로 남는다.


요즘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특히 첫째 아이를 더 꼭 안아주려고 해본다. 아이의 일곱 살, 아이의 오늘, 아이의 지금이 아이에게도 내게도 모두 처음인 것을 상기한다. 새롭게 가족이 된 둘째에 대한 짐을 아이에게 지우지 않기, 아이에게 너의 이 시절 역시 사랑으로 가득 찼었음을 더 자주 말해주기로 한다. 매일을 희비로 나누어 곱씹었던 날들을 지나 순간을 좀 더 충실히 살아가자는 다짐을 또 새롭게 해본다.


일희일비 하는 것이 육아의 삶이겠지만은 모든 일에 일희일비 하다가는 쉬이 지쳐버리고 쉬이 육아를 비관해 버릴 것이기에, 일상의 희비를 곱씹기보다 매 순간의 희비에 집중하며 그저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희희낙락 하기를 다짐해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