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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뒤늦게 기록하는 신혼일기

by 작은별


2022년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인류가 처음 만난 바이러스로 인해 ‘아직도’ 온 세상이 꽁꽁 얼어있다. 지난 두 해 동안 설레는 봄의 연둣빛과 여름의 푸른 바다, 가을 나무의 붉은 잎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비록 꽁꽁 언 겨울이었지만 축제의 불빛도 집집마다 수줍게 반짝였다. 하지만 이 신종 바이러스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일상 회복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199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당시의 다른 친구들처럼 2022년 즈음엔 해저 도시가 건설되고 길거리에는 우주선 모양의 자동차들이 날아다닐 것이라는 그림을 그리곤 했다. 숫자 모양조차도 이질적이어서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2022년. 그런데 나는 고작 삼십 대 중반밖에 안 된 채로 이 낯선 해를 맞이했다. 해저 도시가 아닌 평범하고도 평범한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게다가 전염병을 걱정하며 조심스러운 일상을 근근이 이어가는 중이라니. 역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삶이란.


‘미운 네 살’을 겨우 졸업한 첫째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의 에너지를 스무 평 조금 넘는 집 안에서 해결하기란 쉽지가 않다. 비행기를 타고 한 해의 반을 자유롭게 떠다니던 남편은 일 년이 넘도록 집에 콕 박혀 재택근무를 하다가 마침내 출퇴근을 재개했었으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에너지 또한 남는다. 사랑하는 세 사람을 성실히 수발하고자 노력하던 나의 마음은 초심을 잃고 자꾸만 어디론가 떠난다. 남동생과 둘이 손을 잡고 처음 날았던 시드니로. 출장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다녔던 중남미의 엘살바도르로. 설렘이 가득했던 유럽의 소도시들과 익숙함과 흥미로움을 함께 던져주던 아시아의 여러 도시 등등. 아, 문득 홍콩이 떠오른다. 인류의 바이러스 전쟁으로 각국의 국경이 봉쇄되기 전까지 내가 살았던, 자주 오갔던 바로 그 도시.


홍콩에서의 추억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신이 개발되고 하늘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는 언제 가능할 길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다른 걱정도 떠오른다. 바이러스가 막아버린 사람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 세계 먼 곳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은 우리 동네에서조차도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 또는 편견의 소문이 자꾸만 들린다.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는 설렘,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보게 하는 여유. 그런 설렘과 여유가 가져다주는 한층 더 성숙한 삶의 기회들이 상처받을까 염려가 된다. 때론 시간이 약이니 기다려볼까. 그동안 나는 잊기 전에 홍콩에서의 이야기나 떠올려야겠다.



2021년 겨울에 작성한 글을 브런치북 발간 시기에 맞춰 2022년 봄으로 수정 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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