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홍콩의 마포, 올림픽 지역을 후보지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회사가 있는 구룡역에 집을 구하면 가장 좋겠지만 구룡역의 높고 높은 아파트들은 월세 또한 높고 높아서 도저히 손에 닿지 않았다. 출퇴근이 가깝고 비교적 쾌적하며 이왕이면 한국인 이웃들도 종종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희망 사항을 반영하면 올림픽 지역이 딱 좋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주말마다 부지런히 집 구경을 다녔다. 만티가 부동산 중개인을 소개해 주었으나 영어로 의사소통하기가 어려워 다른 곳을 찾기로 했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중 남편의 예전 회사 동료가 괜찮은 부동산을 소개해 주었고 드디어 집 구하기에 속도가 붙었다. 오 년 전 홍콩 첫 방문의 추억을 되살리며 어떤 집을 만나더라도 - 얼마나 좁든, 얼마나 습하거나 지저분하든, 어떤 벌레를 만나든 - 무덤덤하게 대처하리라고 다짐하고 부동산 관계자들을 만나러 갔다.
대만에서 일자리를 찾아 홍콩으로 왔다는 부동산 중개소의 직원은 삼십 대 후반의 남자였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팀장쯤으로 보이는 그의 상사는 남편이 미리 알려준 예산 범위에 따라 - 오 년 전보다는 다행히 두 배 이상 늘어난 - 우리가 방문할 집을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신축 아파트들은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었다. 입주자와 방문객을 구별하며 보안도 철저했다. 세대별 면적이 좁다 보니 공용 공간인 로비나 커뮤니티 센터 같은 곳에 상당히 투자를 많이 하는 듯했다. 반짝이는 장식은 물론이고 카페, 수영장, 사우나, 헬스장, 도서관, 영화관, 악기연주실, 당구장, 어린이 실내놀이터 등을 방문하는 아파트 단지마다 보유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홍콩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이 엄청나 보였다. 요즘은 서울 신축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도 대단한 것 같다.)
그런데 올림픽 지역의 신축 아파트를 선택하기에 우리의 예산은 부족했다. 홍콩은 비가 잦고 연중 습하다 보니 지하철역에 바로 연결되어 있거나 가까울수록 월세가 높았고, 도로의 소음과 벌레의 공습을 피하고자 고층일수록, 멋진 전망을 위해 바다가 보일수록 숫자가 마구 커졌다. 스무 개가 넘는 집을 돌아본 후 그다음 주에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집 구경을 다니면 다닐수록 홍콩의 말도 안 되는 부동산 가격에 할 말을 잃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 및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홍콩이라는 도시. 그 홍콩의 도시기능을 지원하기 위한 구룡반도 위쪽의 광활한 신계(新界) 지역까지 ‘홍콩’의 면적은 매우 넓지만, 사람들이 ‘살 수 있거나’ ‘살고 싶어 하는’ 땅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했다. 인구 밀도가 높다 보니 집의 면적은 좁아지고 건물은 자꾸만 높아진다고.
집 구경을 하며 심신이 지친 나는 다음 날 만난 만티에게 이런저런 소감을 털어놓았다. 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라는 어마 무시한 별명은 그냥 붙여지는 것이 아니었다며, 어쩜 이렇게 좁은 집들이 이처럼 비쌀 수 있냐고 하소연을 했다. 만티는 본인이 집을 사기까지 거쳐야 했던 고생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려주었다. 남편과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했고 일도 잘 풀린 편이었지만 소득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높은 데다가 그마저도 매년 가파르게 올라서 반드시 내 집을 갖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고. 몇 년간 부동산 구경을 하고 원하는 동네와 집을 정했다고 했다. 이야기 끝에 덧붙이기를 화려한 커뮤니티 센터가 있는 신축 아파트는 ‘쓸데없이’ 비싸니 ‘로컬’들이 많이 사는 오래된 집도 찾아보라고 했다. 남편이 퇴근한 후 만티의 의견을 전했다. 남편은 그런 로컬 동네에 살아 보니 공지사항이 중국어로만 전달되고 관리인들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살면서 아파트 공지가 중요할 일이 그렇게 자주 있겠냐며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나에게 조금 더 좋은 둥지를 지어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외국인들은 보안이 잘 되어있고 소통이 편리한 높은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층수가 다소 낮은 빌라 형태의 건물이 모여있는 지역을 '로컬 동네'라고 불렀다. 어쨌든 홍콩의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빈부격차는 극도의 주거격차로도 이어졌다. 홍콩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집과 세계인들을 경악하게 하는 열악한 집이 ‘모두’ ‘빈번히’ 등장했다. 집이 뭐길래. 일터나 배움터에서 돌아온 가족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히 누워 쉬는 것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고민 끝에 선택된 우리의 첫 홍콩 집은 예산에 맞게 지하철역에서 도보 20분 정도로 멀어졌고 (같은 단지 내에서도 가장 멀리 있는 동으로) 사실상 첫 층인 3층으로, 바다 쪽이 아닌 도로와 건너편 로컬 동네를 마주한 곳이었다. 크기는 13평 남짓 되었다. 작은 부엌과 거실, 변기와 욕조가 살포시 앉아있는 화장실은 깔끔했다.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와 문 두 개짜리 옷장으로 완성된 안방 옆에는 책상과 의자를 하나씩 둔 나의 서재가 있었다. 일인용 소파와 텔레비전, 식탁까지 모두 새로 사지 않아도 되는 곳. 내 마음에는 쏙 들었다. 만티가 월세를 비싸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설명해서 크게 내키지 않았던 커뮤니티 센터도 막상 이용할 수 있는 입주민이 되자 얼마나 좋던지.
계약 당일 인사드리게 된 집주인 부부는 부모님 연배 정도로 보이는 인상 좋은 홍콩 분들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집을 깨끗하게 사용한다며 주인아저씨는 흡족해했고 남편 직장 정보를 유독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통역을 담당하던 부동산 직원은 월세를 꼬박꼬박 낼 능력이 있는지가 궁금해서 자꾸 물어본다며 민망해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법적 장치야 있겠지만 이 외국인들이 돈 떼먹고 사라져 버리면 주인은 여러모로 곤란할 테니까. 홍콩에서 월세 계약은 보통 2년 단위로 하지만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집주인은 월세 인상을 요구할 수 있고 세입자는 다른 집을 찾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보증금은 두 달 치 월세였다. 부동산에서는 월세의 반을 수수료로 요구했다.
집주인 부부는 우리가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집주인의 딸 가족도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며, 자신들이 손녀를 돌보아주고 있으므로 아마도 종종 마주칠 것이라 했다. 불편한 점이 있거든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집주인을 자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음이 든든했다. 부동산 중개소의 팀장은 나에게 침대 위에 올리는 매트리스 토퍼 정도만 새로 사면 잠자리가 조금 더 쾌적할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이때 산 토퍼를 이고 지고 서울까지 가져와서 요즘도 아이들 잠자는 방 한편에 깔아주고 있다) 집주인 부부는 집에 있는 모든 가구를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고 처분해도 좋다고 계약서에 남겨주었다. 나에게 한국어를 한 마디씩 건네던 그 대만인 직원은 우리 집 맞은편 로컬 동네에 맛집이 많다며 몇 군데 적어주었다.
모든 계약 절차가 끝난 후, 남편과 나는 그가 추천해 준 식당 가운데 ‘운남식 쌀국수’를 판다는 어느 체인점에 들어갔다. 쌀국수 주문하기가 문제 풀기만큼이나 어려웠다. 다행히 영어로 된 선택지가 있었지만 매운 정도와 면의 종류부터 원하는 토핑까지 고르는 것은 신중해야 했다. 도대체 어떤 국수가 나올 것인지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나에게 ‘홍콩댁’의 삶답게 바다가 보이는 높고 반짝이는 집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며 미안해했다. 갑자기 오 년 전 햄버거만 먹고 있던 안쓰러운 청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뭐가 미안하냐며 이게 미안할 일이냐고 다그칠까, 아니면 그런 마음이 참 고맙다고 말할까. 그래! 나도 '홍콩댁' 답게 화려하게 살고 싶었다고! 하며 마음을 긁어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잠시 하다가 그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서로의 유일한 아군이었다.
레지던스 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날, 그새 정이 많이 든 만티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만티에게는 한글로 쪽지도 남겼다. 마지막 날의 짐은 여행용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집주인이 배려해 준 덕분에 우리는 일주일 전부터 차곡차곡 이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청소를 하고 페인트칠도 새로 했다.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것만으로도 새집처럼 깔끔하게 만드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침대보와 이불도 새로 사서 깔아 두었다. 남편은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바퀴벌레약과 제습제를 곳곳에 배치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방충망도 꼼꼼히 확인했다. 홍콩에서는 에어컨이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업체를 소개받아 에어컨 청소도 했다. 세상에, 시커먼 물이 얼마나 줄줄 흘러나오는지. 저 먼지를 다 마시며 살 뻔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빌트인 세탁기도 분해해서 청소하고 싶었지만 돈이 꽤 많이 드는 것 같아서 보이는 곳만 청소했다. 냉장고도 한 번 닦았다.
홍콩의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아파트보다 층고가 높아서 평수는 좁아도 답답한 느낌이 덜했다. 층간소음은 비슷한 정도. 새집에서의 첫날밤, 나는 예전에 우리가 홍콩에서 경험했던 그런 집을 생각하며 홍콩에 왔었다고 말을 꺼냈다. 남편에게 이처럼 쾌적하고 예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전하며 잠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남편에게는 침대가 작아서 그는 발을 침대 밖으로 내놓고 잠들었고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침대 끝에 붙어 있었지만)
이사 후 며칠 동안은 비가 내렸다. 창밖의 로컬 동네를 보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홍콩의 건물은 우리나라의 건물과는 달리 색이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초록색, 분홍색, 보라색…. 우리나라에서는 외벽에 흔히 칠하지 않는 색을 입혀 두었는데 참 괜찮아 보였다. 홍콩은 색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넨 어느 저녁, 남편은 오히려 홍콩에는 거울 색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거울 색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들어 보니 홍콩의 초고층 아파트나 사무공간은 온통 유리로 되어있어서 도시가 꼭 거울 색 같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주로 초고층의 사무실에 앉아서 비슷한 건물로 가득 찬 홍콩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홍콩에서는 사는 곳과 일하는 곳에 따라 색도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문득, 아직 이 사회 속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한 나는 무엇을 보아도 결국 나의 생각과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는 거울 빛의 도시 - 남편의 거울과는 다른 의미의 - 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