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IN Jan 04. 2023

<바톤핑크>의 연출법

코엔형제의 히치콕 오마주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 1999>는 개봉 당시 본토인 미국이 아닌 프랑스의 칸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받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남우조연상과 촬영상만 받았을 뿐 주요 수상 목록에서는 제외되었다. 이렇게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바톤 핑크>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해당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성기였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담고 있다. 당시 미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전쟁 피해가 적었고,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 산업을 발전시켰다. 이때 스튜디오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양산되었는데, 관습, 도상, 공식 등 일종의 클리셰를 활용한 장르 영화가 발달하였다. 특히 40년대에는 뮤지컬, 스크루볼 코디미 등 할리우드 장르가 절정에 이르렀고, 은유적이고 어려운 예술 영화보다는 직관적이며 쉽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가 대중적으로 소비되었다. <바톤 핑크>는 이러한 장르영화의 특징을 교묘하게 활용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비틀고 있는 영화로 영화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된다. 또 <바톤 핑크>의 감독인 코엔형제도 이 영화는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기존 장르적 관습에 저항하고 있음을 그들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JC: Barton Fink does not belong to any genre, but it does belong to a series, certainly one that Roman Polanski originated.

*(*각주 : https://cinephiliabeyond.org/barton-fink-the-coen-brothers-meta-way-of-dealing-with-writers-block/ )


그러나, 이 영화를 정말 장르 없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은 파격적으로 스릴러의 관습을 비틀었을까? 사실은 할리우드의 스릴러 관습을 철저하게 수용하고 있다. 오히려 스릴러 영화의 거장이 히치콕의 영화 문법을 활용해 오마주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기법은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맥거핀MacGuffin’이다. 세 가지 오브제가 지속적으로 비추어진다. 하나는 모기, 하나는 바다와 여인이 그려진 그림, 마지막 하나는 상자이다.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로 보여주고 소리로도 등장했던 모기의 경우는 오드리의 죽음으로 연결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바다와 여인이 그려진 그림은 핑크가 묵는 방을 담을 때 함께 클로즈업으로 보여주지만, 마지막 장면에 갑작스레 등장할 뿐 영화의 스토리라인 속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찰리는 핑크에게 ‘한 사람에게 중요한 모든 것이자 평생 보관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긴 상자를 건네준다. 이 역시 액자 만큼이나 여러번 비추어주면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만 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끝끝내 알려주지 않고 정말 ‘상자’만 보여주고 영화의 막을 내린다. 다만 관객들에게는 ‘뇌’ ‘머리’ 라는 단어를 간헐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추측의 여지를 남긴다. 스릴러 장르에서 주로 쓰이는 기법인 ‘맥거핀’을 응용해 서사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는 마치 히치콕 <싸이코>의 돈다발 <현기증>의 액자 속 금발 여인 그림 맥거핀과 닮아있다.


 두 번째로 살펴볼 할리우드 기법은 비주얼 매치컷을 활용한 편집 기술이다. 핑크가 존경하는 작가 메이휴의 비서인 오드리와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침대를 보여주던 카메라가 화장실로 이동해 세면대의 구멍으로 이동한다. 오드리의 신음 소리가 보이스 오버 되면서, 세면대 수챗구멍은 어두운 배수 관을 지나 핑크의 얼굴과 오버랩 된다. 이 컷은 <싸이코>의 장면전환 기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미지이다. 욕조의 동그란 수챗구멍은 천천히 카메라 무빙을 하면서 여성의 눈과 오버랩 된다. 이미지와 더불어 사운드도 L컷편집방식을 이용해 배수관의 사운드를 핑크의 얼굴까지 가져간다. 편집 기법에 있어서도 히치콕의 스릴러 연출 기법을 가져왔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이러한 연출법을 통해서 수챗 구멍 자체에는 어떠한 의미가 없으나, 이후 나타난 ‘눈’의 이미지를 보다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코엔형제의 <바톤핑크>에서도 어두운 통로를 통과하는 이미지는 조그맣게 빛이 세어들어오는 동그라미에 도달했을 때 날이 밝았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천천히 어두운 통로를 지나는 연출은 오드리와의 오래도록 관계를 가졌음올 함께 묘사한다.

세 번째로 히치콕이 시도해 온 파격적인 방식의 스릴러 영화 촬영 기법이 담겨있다. 예컨대, 핑크가 얼 호텔에 들어와 호실 내부를 찬찬히 그의 시점으로 둘러보는 장면은 히치콕 감독의 <이창>을 떠올리게 한다. 주관적 관찰자인 시점샷(P.O.V)을 활용해 방을 둘러보며 앞서 맥거핀으로 설명되었던 오브제를 보여준다. 스테디 쇼트, 트랙 쇼트,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 직부감(High Angle or Over Head Shot) 처럼 다소 극단적인 쇼트를 사용해 긴장감을 만든다. <바톤핑크>에서는 핑크의 눈을 트랙인으로 들어가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로 잡는다. <현기증>, <싸이코>에서도 화면 가득하게 신체 부위를 채우는 익스트림 클로즈업(Extreme Close Up)을 사용하여 신체 뒤의 배경이 보이지 않도록 의도해 우리가 기존에 인식하고 있는 신체 부위도 관객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준다. 이들은 샷 사이즈만 파격적으로 활용한 게 아니라 카메라에 무빙도 롱테이크, 스테디캠을 이용해 컷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주로 시점샷에서 롱테이크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는데, 작가 핑크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그 인물에 감정을 이입시킨다. 캐릭터와 관객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컷을 자주 드러낸다는 건 이후 ‘살인’과 같은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그들은 스타일리시한 카메라 기법으로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고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어서 영화 <바톤핑크>가 사운드 사용에 있어서도 비디제시스적 사운드를 절제해 사용하는데, 이 사운드 연출 방식조차도 히치콕의 사운드 연출과 유사하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음악의 사용을 절제하고, 앰비언스/효과음을 통해 극적인 장치를 부여한다.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시퀀스에서 주인공과 비행기의 추격전에서 비행기의 소리와 옥수수밭의 앰비언스 소리만 존재한다.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긴장감을 유도하는 오프스크린의 사운드를 사용하는 대신 장면 안의 소리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쫓고 쫓기는 장면 자체에 몰입시켜 박진감을 선사한다. 문트(찰리)의 방화 시퀀스에서, 문트는 호텔에 불을 지르고 핑크를 추궁하는 경찰들을 총 쏴 죽인다. 이 장면에서 멜로디 있는 음악을 사용하는 대신, ‘총 소리’ ‘불타는 소리’ 등 생생하게 현장감을 전달하는 사운드를 지향하며 장면의 흐름에 관객이 빠져들게 한다.


촬영, 편집과 같은 기법 이외에 서사 전개에서도 히치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는 이야기의 발전을 위한 섹스토이로만 활용된다.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를 살펴보면, 미모의 금발의 여성 캐릭터는 ‘쾌락의 대상’으로 사용되거나 ‘피해자’로 활용된다. 이후 할리우드 스릴러 장르에서는 범죄의 피해자가 항상 여성이었으며, 이는 클리셰처럼 사용되어왔다. 마찬가지로 <바톤 핑크>는 피해자인 여성의 몸을 훼손하는 행위도 보여주면서 스릴러 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남성 주인공 핑크와 하룻밤을 보낸 이후 살해된다. 즉, 여성을 쾌락의 대상으로만 활용하고 있으며, 이후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따르고 있다. <바톤 핑크>가 기존 스릴러 장르의 남성 중심적 서사를 가져가고 있다는 점은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적 습성을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핑크가 쓰는 시나리오도 남성 중심적인 스포츠인 레슬링에 관한 이야기이며, 파티 시퀀스에서도 제복을 입은 남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여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코엔형제가 범죄자를 처벌하는 양상(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도 <이창>과 흡사하다. 죄를 지은 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처벌된다. <이창>에서 아내를 살해한 쏜월드는 살해 사실이 들통나 체포된다. 타인을 몰래 훔쳐보던 제프리도 집에서 떨어지는 일종의 ‘처벌’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바톤 핑크>에서 오드리를 살해한 문트는 경찰에 의한 직접적인 처벌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화로 불이 들끓는 호텔 객실에 들어가는 행위를 보여줘 ‘자살’을 암시한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문트는 핑크의 또 다른 인격으로 표현되는데, 핑크에 대한 처벌도 드러난다. 핑크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케피탈 사장에게  대차게 퇴짜 맞고 쫓겨나며 제프리가 받는 받았던 정도의 가벼운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자기 반영적’ 영화라는 점이다.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에서 감독 자신을 투영하고, 코엔 형제도 영화 속 캐릭터에 자신들을 투영한 자기 반영적 영화의 모습을 띄고 있다. 감독 본인의 물리적 등장을 통해서 혹은 정신적 반영을 통해서 감독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감독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들은 ‘영화’에 관한 질문을 남기곤 한다. 이 영화 역시 영화 시나리오 작가 핑크를 감독의 대리인으로 등장시켜 기존의 클리셰를 답습하기 바빴던 1940년대 영화 산업, 즉 예술이 아닌 상업화된 영화를 비판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개봉되었던 1990년대는 메이저 스튜디오가 새롭게 개편된 시기이다. 독립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넘나들며 명성을 떨치던 코엔 형제는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만 만들어내는 영화계에도, 장르적 관습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시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일침을 날린다.


정리하자면, 히치콕의 서스펜스 구축 방식과 코엔형제가 긴장감을 만드는 연출법은 형식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닮아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핵심 서사는 할리우드 산업에 대한 비판이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그 누구보다 적극 활용 한 히치콕의 방식을 차용한다는 점에서는 모순점을 갖는다. 할리우드 스릴러 관습을 만든 ‘히치콕’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않고 있으나, 할리우드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스릴러의 관습의 창조자라고 볼 수 있는 ‘히치콕’. 과연 그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Barton Fink does not belong to any genre”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밝힌 대로 어떠한 장르에도 ‘belong’ 되지 않은 것이 맞는 걸까? 물론 <바톤핑크>의 주요 담론은 할리우드 산업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오히려 코엔형제가 얼마나 할리우드에 관심이 많고, 히치콕의 스릴러 연출 기법의 차용과 오마주를 통해서 할리우드를 얼마나 애정 하는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뤽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에서 파격적인 촬영 편집 기법을 시작했던 것처럼 히치콕의 그늘을 피해 기발하고 획기적인 영화 문법을 시도했다면, 그들의 냉소적인 메시지가 더 강조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코엔형제 #영화 #영화연출법 #바톤핑크 #히치콕 #히치콕오마주 #오마주

작가의 이전글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