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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의 개척자 Jun 17. 2022

06. 이 책이 쫌 그런데 괜찮겠니?

책의 산을 넘어보자

어릴 적부터 책을 읽던 학생도 몇 번의 산을 넘어야 지속적인 독서생활이 가능하다. 


혼자 읽어야 하는 산, 그림책에서 글밥 책으로 넘어가야 하는 산, 동화에서 청소년 소설로 넘어가야 하는 산, 소설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넘어가야 하는 산도 있다. 그중에 가장 힘든 산은 청소년 소설에서 일반 소설로 넘어가는 산이다. 


이 산을 넘기만 하면 이제 스스로 책을 고르고, 자기 취향을 찾아가고, 작가에 관심도 갖고, 다양한 분야의 에세이로 넘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청소년 소설을 넘어갈 수 있을까? 정말 조심스럽다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빌려가는 책을 관찰하다가 청소년 소설에서 넘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견되면 유심히 지켜보면서 때를 기다린다. 중학교 3학년쯤 되면 은밀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한마디 던진다


"이 책이 쫌 그런데 읽을 수 있으려나?'

"무슨 책인데요"


"아니다. 이게 약간 야한 장면이 나와서 니가 읽기에는 그렇다"

"어? 그래요."


"너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줘 보세요"


"너 평소에 청소년 소설만 읽어서, 이 책이 어렵지 않을까?"

"한번 읽어볼게요"


"그래, 그런데 이거 부모님이 보셔도 괜찮으려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자 숨길게요"


"그러면 읽고 꼭 나랑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자"

"네"


첩보극 한 편을 찍고 이제 학생이 오기를 기다린다. 

혹시 부모님에게 항의받아 본 적이 없냐고? 없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부모님은 모른다. 


그러면 첩보극으로 넘어간 책의 이름은 무엇일까? 

내 첩보극에 넘어가는 책은 늘 3권이다.


학생이 너무 충격받으면 진짜 부모님께 불려 갈 수 있으니까? 약한 책부터 시작한다.


첫 번째 책은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강제로 시골에 내려간 두 명의 도시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읽고 온 녀석의 표정은 어벙 벙하다. 



"선생님, 전 바보 같아요. 그 바보"

"그 바보 같은 녀석이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너 발자크 한번 읽어볼래?"


그렇게 중학생이 발자크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두 번째 접선을 한다. 

"그런데 그 책 말고 또 쫌 그런 책이 있긴 한데 그것도 읽어 볼래?"

"무슨 책인데요"


"두꺼운데 책은 진짜 재미있어?"




두 번째로 추천해 주는 책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다.

"선생님 인간은 정말 인간이 어떤 동물인 거죠?"

"너는 어찌 생각하냐?"

"모르겠어요."


"너는 지금 보이는 사람이니, 안 보이는 사람이니?"

"모르겠어요"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더 행복한 거 아닐까?"

"그래도 보면서 살고 싶어요. 지난번 중국 소녀처럼 바보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진짜, 이번에는 쫌 심한 책인데 읽어볼래?"

"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주는 책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다. 



"선생님 이 책은 진짜 처음에 너무 야하잖아요. 변태적이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읽다가 미쳐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것이었을까? 부끄러운 게 더 무섭나? 무식은 부끄러운가?... 아 정말 모르겠어요"


"너 이 책에 나오는 책들로 독서목록 만들어 볼래? 그리고 그 법정의 느낌이 살아있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도 있는데?"


여기까지 가면 이제 완전히 책의 덫에 물린 거다.

그 이후에는 알아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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