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백년 동안의 고독, 기억과 시간의 미로에서

by 바나나 슈즈

비가 그친 뒤 공기 중에 떠도는 축축한 흙냄새를 맡으며 발코니에 나섰다. 멀리 보이는 산 위로 거대한 회색 구름이 펼쳐진다.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본 한 문장이 떠올랐다. "시간은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지난주에 딸 아이가 내 어릴적 사진을 보고 "엄마랑 오빠랑 너무 닮았다!"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세월이 흐르면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행동 습관까지 닮아간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들려 있었다.


마르케스는 이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서술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 세대의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개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다. 언뜻 보면 철학적 명제처럼 들리지만, 실은 우리 삶의 축소판을 담고 있다. 부모의 실수를 피하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어느새 부모님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이 문장이 들려주는 진실이 가슴에 와닿게 된다.


Death in The Sickroom, Edvard Munch, 1893

『백년 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의 가상 마을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의 7세대에 걸친 이야기다.

마을의 창시자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술라는 사촌 간의 결혼으로 인해 아이에게 돼지 꼬리가 날까 두려워하면서도 새로운 공동체를 세운다. 그들은 다양한 자녀들을 낳고, 각 세대마다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이 반복된다.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운명도 반복된다. 열정적이고 충동적인 아르카디오들, 내성적이고 고립을 추구하는 아우렐리아노들.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 세대의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호세 아르카디오는 끊임없이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내지만 실패하고, 결국 마당의 밤나무에 묶여 미쳐간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32번의 무장 봉기를 이끌고도 모두 실패한다. 레메디오스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녀를 보는 남자들이 죽어가고, 결국 그녀는 하늘로 올라간다. 이런 기적과 비극이 마콘도라는 마을에서 100년 동안 펼쳐진다.


가장 인상적인 건, 마콘도 마을이 겪는 '망각병'이다. 사람들이 모든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사물에 이름표를 붙인다. "이것은 소다. 이것은 테이블." 이름을 잊으면 존재도 잊혀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모든 물건들에는 생명이 있답니다". 이것은 질병이 아니라 역사와 정체성을 잃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책의 마지막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집안의 모든 비밀이 기록된 오래된 양피지 문서를 해독한다. 그 문서에는 가문의 역사와 함께, 그 내용을 읽는 순간 마콘도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도 담겨있다. 그리고 예언대로 마콘도는 파멸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가문은 반복할 운명에 있다"는 결말이다.


어쩌면 이 소설이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 즉 우리는 역사를 반복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엄마, 할머니랑 똑같은 말하고 있네?" 아이와 대화하다가 깜짝 놀란 적 있다. 언젠가 할머니와 함께한 나들이 길. 짧아진 사람들의 옷을 보며 "저런 옷은 부끄러워서 절대 못입겠다" 했던 엄마의 그 말을 내가 딸에게 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당혹스러움. 직장에서 후배에게 "그건 우리 때부터 그랬어"라고 말하는 내 모습. 모두 『백년 동안의 고독』의 한 장면을 살아내는 순간들이다.


모임에서도 이 소설의 결은 대화의 격을 높인다. "요즘 상황이 마치 마콘도 같지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아무도 기억을 못하잖아." 가족 모임에서는 이렇게 아는 척 할수도 있다. "아버지님이 그러셨듯이, 당신도 퇴직하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걸 좋아하게 될 거야. 마르케스가 말했잖아, 우리는 결국 반복된다고."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이 개념을 거대한 서사로 풀어냈지만,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주제는 반복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를 51년 9개월 4일 동안 기다린다. 시간은 흘러도 사랑은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메시지다.




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단순히 과거를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일까? 마르케스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모두 마콘도의 주민들과 다르지 않다. 가족의 역사를 잊어가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때로는 기적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SNS에 올린 엄마와 나의 사진을 비교하며 "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라고 코멘트를 달 때, 우리는 이미 마르케스의 세계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기억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기억함으로써 반복을 깨뜨릴 수 있다. 가족 모임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첩을 정리하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도 마주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마콘도의 운명을 피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 세대의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내용은 절망적으로 들리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을 품고 있다. 우리가 반복의 패턴을 인식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 패턴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먼 산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천천히 지나는 것을 보며, 잠시 발코니에 서서 생각한다. 오늘 나는 어떤 패턴을 깨뜨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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