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위대한 개츠비

by 바나나 슈즈

봄이 깊어가는 저녁, 아이와 함께 디저트를 먹으러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가 창가에 앉아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처럼 제각기 다른 속도로, 다른 길을 만들어가는 물방울들. 어떤 방울은 다른 것들과 만나 더 커지고, 어떤 것은 중간에 멈춰 사라진다. 문득 내 인생도 이런 빗방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빠르게 가고 싶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내 길은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어느 밤 잠 안 오는 새벽에 읽은 『위대한 개츠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나아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에 맞서면서.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문장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만, 사실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몸짓. 그래,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는 듯하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것이.

나이 오십을 향해 달려가는 내게 이 구절은 왜 이리 강하게 다가오는지. 내 안의 스물셋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거울 속에는 어느새 주름이 생겨난 중년의 얼굴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늘 과거의 그리움을 품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2013)

『위대한 개츠비』이야기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에 발표했다. 이 소설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환상과 그 실패를 파티와 술, 거창한 저택으로 가득 찬 화려한 뉴욕의 풍경 속에서 그려낸다.


이야기는 닉 캐러웨이라는 평범한 채권 중개인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부자들이 사는 웨스트 에그 지역에 작은 집을 얻어 이사한다. 그리고 옆집에 사는 수수께끼 같은 억만장자 제이 개츠비를 만나게 된다. 현대로 치면 주택가에 새로 이사 갔더니, 옆집에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고 유명인들이 드나드는 미스터리한 재벌이 산다고 생각해 보자.


개츠비는 매주 토요일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열지만,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제대로 모르고, 그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어떤 이는 그가 독일의 스파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SNS에서 갑자기 떠오른 인플루언서인데,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고 온갖 카더라 통신만 떠도는 상황 같다.


그런데 닉은 곧 개츠비가 이 모든 화려한 파티를 여는 이유가 단 하나, 닉의 사촌인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전쟁에 나갔을 때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했다. 그래서 개츠비는 5년 동안 오직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부를 축적했고, 우연히 그녀가 사는 곳 맞은편에 집을 샀다. 그의 저택 부두에서는 데이지의 집에 있는 초록색 불빛이 보인다. 그 빛을 바라보며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과거를 그리워한다.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재회를 주선하고, 둘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톰이 개츠비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개츠비의 부는 사실 불법 주류 밀매와 기타 범죄 행위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일련의 사건들이 급속도로 전개되면서 미스터리한 죽음과 배신, 진실과 거짓이 복잡하게 얽혀든다.


결국 데이지는 개츠비와의 사랑을 포기하고 안전한 부와 지위를 제공하는 남편 톰에게 돌아간다. 개츠비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의 누명을 쓰고 자신의 수영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그의 장례식에 오지 않는다. 오직 닉과 개츠비의 아버지,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기억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닉은 개츠비가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며 꿈꾸었던 것처럼, 우리도 모두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과거의 무언가를 잡으려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소설의 가장 유명한 마지막 구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나아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에 맞서면서."


이 소설은 겉보기에는 사랑과 비극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아래에는 미국적 성공 신화의 허구성과 물질주의의 공허함, 그리고 과거에 대한 향수와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지난달 대학 동창회에 다녀왔다. 25년 여 만에 모인 친구들. 하나같이 변해 있었고, 또 하나같이 변하지 않았다. 반장이었던 친구는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늘 미술실에서 그림만 그리던 친구는 지금은 지방의 한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 밤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유난히 학창 시절 추억에 잠겼다. 옛날에 붙였던 별명을 부르고, 까맣게 잊었던 사건들을 끄집어내며 웃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문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모두들 자랑스러운 성공과 행복한 가정을 이야기했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드러난 건 현실의 불만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중소기업 임원이 된 친구는 "그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들어갔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고, 지방 대학 교수가 된 친구는 "화가의 꿈을 좀 더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말을 흘렸다. 모두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마음은 놓치고 온 과거의 가능성들에 머물러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스물셋에 품었던 작가의 꿈을 떠올린다. 그때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안정적인 직장 대신 불안정해도 열정적인 삶을 선택했다면 지금쯤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위대한 개츠비』의 그 구절이 떠오른다. 여기 이렇게 앉아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로 거슬러 나아가는 배 같은 내 모습.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쓴 192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가 번영하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와 투기로 부를 쌓았고, 재즈와 술, 화려한 파티가 넘쳐났다. 요즘으로 치면 2010년대 후반의 가상화폐 붐과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사진들 같은 시대랄까.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공허함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고, 결국 1929년 대공황으로 거품은 꺼져버렸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시대의 공허함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개츠비의 화려한 저택과 파티는 결국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데이지와의 사랑, 혹은 젊은 시절의 순수한 꿈-을 얻지 못했다. 물질적 성공이 정서적 충만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진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SNS를 보면 화려한 여행지, 고급 식당, 명품 가방 사진들이 넘쳐난다. 그 뒤에 숨겨진 대출과 불안은 보이지 않는다. 개츠비처럼 우리도 종종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진짜 원하는 것은 잊어버리곤 한다. 그건 역시 과거로 거슬러 나아가면서도 현재에 맞서는 또 다른 방식 아닐까 싶다.




어쩌다 함께 외출하는 날이면 차 안에서 가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를 향해 노 젓는 배일지도 몰라." 중학생 아들은 무슨 소리냐며 웃고, 초등학생 딸은 "엄마 또 시작이네"라고 눈을 굴린다. 하지만 가끔은 "어떤 의미야?"라고 물어본다. 그럴 때 나는 개츠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만들려고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했던 꿈을 이야기하고, 딸은 4학년 때 피아노 대회에서 떨어진 후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배를 타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놓치고 온 과거의 가능성들을 함께 끌고 가는 배 말이다.


출근길. 지하철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는 순간 마주치는 강물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강물은 늘 앞으로 흐르지만, 그 안에는 이미 지나온 산과 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내일을 향해 흘러가면서도, 어제의 기억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주름진 얼굴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스물셋 청춘의 꿈과 열정이 살아 있다. 그것이 내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배운, 봄날의 강물처럼 내 삶을 새롭게 흘러가게 하는 한 문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나아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에 맞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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