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역사는 누가 쓰는가, 조지 오웰의 1984

모든 것을 지웠다고 진실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by 바나나 슈즈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이었다.


우산을 펴야 하나 망설이게 만드는 빗방울은, 오히려 사람들이 무심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날엔 어쩐지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조차 더 조용하게 읽힌다. 몇 해 전 모두의 기억 속에 깊게 박혔던 사건이 다시 기사로 등장해 있었다. 익숙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달랐다. 분명 그때는 분노와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는데, 이제는 ‘유감스러운 오해’라는 표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록은 그대로인데, 그 기록을 해석하는 말들이 바뀐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본 문장이 떠올랐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고,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언뜻 보면 문장 구조의 반복이 만들어낸 리듬으로만 읽힐 수 있지만, 실은 이보다 무서운 말도 드물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우리의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 문장은, 오웰이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며 발견한 진실에서 나왔다. 과거는 언제나 일어난 그대로 존재할 것 같지만, 그 기억과 해석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것이다.




『1984』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살아가는 윈스턴 스미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는 ‘진리부’에서 일한다. 이름만 들으면 과학이나 통계 분야에서 일할 것 같지만, 실제 업무는 신문과 연설문, 통계 수치를 고쳐 쓰는 일이다. 당이 한 말과 실제 결과가 다르면, 기록을 바꿔 그 말이 항상 옳았던 것처럼 만든다. 초콜릿 배급량이 줄어들었는데 늘어난 것처럼 고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면, 모든 과거 기사에서 그 적을 ‘항상 우호적인 나라’로 바꿔 놓는다. 어색할 틈 없이 완벽하게. 오류는 삭제되고, 진실은 덧칠되며, 기억은 조정된다.


그렇게 고쳐진 모든 것들은 다시 보관되지 않는다. ‘메모리홀’이라는 통로를 거쳐 불에 태워진다. 사라진다. 단 한 줄의 문장도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은 일’이 된다. 믿기 어렵지만, 무서운 건 이것이다.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자신이 잘못 기억했다고 믿는다.


윈스턴은 점점 의심하기 시작한다. 과거는 정말 바뀐 것일까. 아니면 내가 틀린 것일까. 단 한 사람이라도 ‘그건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면, 진실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가 조심스레 꺼내 드는 건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일기장 한 권이다. 자신이 느낀 것, 본 것,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내려간다. 그건 작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체제는 그것을 ‘사상범죄’라 불렀다. 그는 죄인이 된다. 과거를 기억했다는 이유로.


『1984』 속 세계는 사람들의 사고 자체를 통제하기 위해 언어까지 새로 만든다. 이름은 ‘뉴스피크’. 말의 종류와 수를 줄이고, 뜻을 단순화해 결국 복잡한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유’, ‘반대’, ‘책임’ 같은 단어가 사라진다. 단어가 없으면 개념도 없고, 개념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 결국 생각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뉴스피크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아래와 같은 슬로건이 당연한 문장으로 통용된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 문장 자체는 모순되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멀리 있는 이야기 같지만, 익숙하게 들리는 건 왜일까.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불법이라 했고, 누군가는 정의라 했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이 모든 차이가 ‘기억의 구조’와 연결된다는 데 있다. 보는 것, 듣는 것, 믿는 것이 제각각이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말은 대화 속에서 무게를 갖는다. “오웰이 그랬잖아요.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그 말이 너무 딱이예요.” 회의에서 누군가 던진 이 말은 더는 고전 인용이 아니라, 현실의 맥락을 설명하는 열쇠로 들리게 된다.


SNS에선 좀 더 짧고 날카롭게 사용된다. “3년 전과 말이 바뀐 사람들이 이젠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하네. 오웰이 왜 ‘기억이 저항’이라 했는지 알겠다.” 세대 간 대화에서도 써먹을수 있겠다. “역사는 그냥 일어난 일들의 목록이 아니잖아요. 누가, 어떻게, 무엇을 기억하고 말하느냐가 결국 역사를 만든다고요.”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이 개념을 문학적으로 풀었지만, 비슷한 메시지는 다른 작품에도 반복된다.


『동물농장』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문장은 시간이 흐르며 이렇게 바뀐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하지만 동물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처음에 어떻게 쓰여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통제는 폭력이 아니라, 기억에 스스로 의심을 품게 만드는 방식이다.


아무도 그 변화를 제대로 문제 삼지 않는다. 누군가는 기억하지만, 그 기억을 증명할 수 없기에 입을 다문다. 기억은 권력 없는 개인이 가진 가장 오래된 항거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다면 기록하고, 기록할 수 없다면, 잊지 않는 것으로 싸워야 할지도.


동시에 기억은 숫자가 아니라 감각이기도 하다. 그것은 쉽게 비교되지 않으며, 동시에 쉽게 무시당한다. 하지만 누군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할 때, 누군가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진실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개인의 기억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체제를 흔드는 가장 오래된 저항이 된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진실을 기억하는 일, 그 자체가 흔들리는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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