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었다.
봄이 시작되었음에도 매섭던 찬바람, 겨울의 끝자락 바람이 4월이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점심시간, 건물 뒤편 골목을 걷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전봇대 옆 담벼락 틈에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기억에도 없는 이름, 손톱만 한 꽃잎이 어설프게 열린 채, 제자리에서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저 작고 연약한 것이... 한꼬집도 안 되는 흙을 움켜쥐고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그걸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피어나는 것이 있다는 게, 괜히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그때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연금술사』가 떠올랐다.
"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흔한 명언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코엘료의 이 문장은 살아본 사람만 이해하는 구석이 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뜻밖에 다시 떠오르는 문장이기도 하다.
산티아고는 양치기 소년이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는 반복되는 꿈을 꾼다. 이집트 피라미드 근처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꿈. 그저 꿈이라고 넘기려던 그는, 예언자와 늙은 왕 멜키세덱을 만난다. 멜키세덱은 그에게 인생의 가장 큰 비밀을 들려준다.
- "그건 너의 '소명(Legende personnelle)'이야. 그걸 따르는 것이 네가 살아 있는 이유지."
소명, 곧 '마음이 이끄는 방향'. 산티아고는 그 말을 믿고 가진 걸 모두 정리해 배를 타고 낯선 땅, 아프리카로 떠난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가진 걸 도둑맞고, 외국어조차 통하지 않는 도시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그는 유리 가게 점원이 되어 살기 시작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때 그를 다시 일으킨 건 꿈이 아니라, 그 꿈을 꿨던 자기 마음이었다.
책 속에서 코엘료는 이렇게 독자에게 속삭인다.
- "진짜 유혹은 포기하라고 손짓하는 고난이 아니라, 머물라고 속삭이는 안락함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은 어떤 면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산티아고가 양치기로 머물렀다면, 그는 평생 아쉬움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간절함은 때로 그 안락함을 뒤로하고 낯선 길로 들어서게 하는 용기다.
그 후로도 산티아고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그는 운명의 여인 파티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 함께 머무르는 삶도 행복할 테지만, 그의 가슴 한편에는 여전히 그 꿈이 자리하고 있었다. 파티마는 그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사막의 여인들은 기다릴 줄 알아. 너는 언젠가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나는 네 마음속에 살 거야."
아름답고 쓸쓸한 약속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간절함'의 본질이 담겨 있다. 진정한 간절함은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아시스에서 산티아고는 전쟁의 위험을 감지해 부족민을 구하고, 부족의 현자가 된다. 그러나 그 역시 그가 가야 할 길의 한 정거장일 뿐이었다. 사막을 건너며 그는 모래바람 속에서 '영혼의 언어'를 배운다. 자연과 대화하고,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연금술사가 산티아고에게 건넨 가르침이다.
우주가 응답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향해 걸어갈 때, 세상은 더 이상 독립된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반응한다. 우리가 주의 깊게 바라보면, 모든 순간이 신호가 되고, 모든 만남이 이정표가 된다.
사막의 한복판에서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자기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권한다.
"네 보물이 어디 있든, 네 온 마음이 거기 있다면, 그 보물도 네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 말은 위로라기 보다 코엘료가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비밀이다. 마음이 닿는 곳에 몸도 결국 따라간다는 것. 그것이 우주의 언어다. 그 모든 여정을 거쳐 마침내 피라미드에 도착한 산티아고. 하지만 그곳엔 보물이 없었다. 대신 강도들에게 붙잡혀 매를 맞던 중, 한 도적이 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나도 반복되는 꿈을 꿨어. 스페인의 어느 폐허가 된 교회 아래 보물이 묻혀 있다는 꿈이었지. 하지만 난 그런 바보 같은 꿈을 믿고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할 만큼 어리석지 않아."
그 순간 산티아고는 깨닫는다. 그 교회는 바로 자신이 양을 치며 잠들곤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는 다시 긴 여정을 거쳐 처음 자신이 떠났던 그 교회 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의 뽕나무 아래를 파헤쳐 마침내 진짜 보물을 발견한다.
코엘료는 이 대목에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보물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너는,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티아고는 집 앞마당에 있던 보물을 찾기 위해 세상을 돌아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자신의 영혼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도 내 삶을 돌아보았다. 준비한 대로 풀리지 않는 일 앞에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잠시 주저앉기도 했다. 마흔 즈음, 십여 년간 다닌 직장에서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갈 때였다. 어느 날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젊은 시절 써둔 메모를 발견했다. '언젠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소망이었다.
그때마다 마음 한쪽에서 조용히 메아리치는 목소리가 있었다. "마음이 있는 방향이라면, 돌아가도 괜찮다. 천천히 걸어도, 언젠가는 닿게 된다."
이것이 간절함의 힘이다. 그것은 마법도 아니고, 초자연적인 현상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우리의 행동도, 선택도, 기회도 자연스럽게 모여든다는 진실이다.
『연금술사』는 파랑새를 찾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현대판 모험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지탱해주는 작은 확신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 확신은 깊은 밤 별을 보며 느끼는 경외감처럼 우리 안에 잠들어 있다가, 문득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이 된다.
간절함이 우주를 움직인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 내면의 힘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그 한 문장이 등대처럼 빛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고, 그것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니 아직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지금이라도,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 길에 당신의 마음이 있다면, 이미 당신은 도착하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하루하루가 변한 것 없이 똑같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날들. 서류 한 장으로 거절당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밤. 햇살 좋은 날, 창가에 앉아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지 고민하는 순간. 커피숍에서 술잔 앞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뜻밖의 위로를 건네는 순간. 아니면 달라진 것 없는 일상에서도 작은 시작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순간.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문득 담벼락 사이로 피어난 작은 꽃을 발견하듯, 우리는 간절함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그 순간에 서서, 코엘료의 말을 떠올리자.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도 코엘료의 '간절함은 우주를 움직인다'를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