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강물에게 배우다, 싯다르타

by 바나나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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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벚꽃이 진 자리에 철쭉이 한창이다. 촉촉한 봄비를 머금은 꽃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상냥한 봄 향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든다. 산책을 하며 지난주 내린 봄비로 불어난 개울물이 이제 제 길을 찾아 잔잔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본다. 살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기다림'인데, 강물은 참 대단하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맑아지는 법을 알고 있으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처음 읽은 건 남편과 큰 다툼을 한 다음날이었다. 서로의 커리어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끝내 문을 쾅 닫고 밤중에 나가버린 남편. 그날따라 책장에서 튀어나온 책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밤새 눈물로 부어오른 눈으로 읽은 책의 중간쯤, 이런 구절이 내 마음을 콕 찔렀다.


강물에서 배운 것은 물은 항상 목표를 향해 흐르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낮은 곳으로 자신을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인가.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와 남편, 둘 다 굳어진 고집이 있었다. 내 고집이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면, 그날 밤 남편과 그토록 서로 상처 줄 말을 하진 않았을 텐데.




『싯다르타』이야기


싯다르타는 기원전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혼의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잘생기고 똑똑한 브라만 아들로,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낀다. 있는 것도 많고 알고 있는 것도 많은데 마음이 공허하다니, 요즘 말로 하면 '부잣집 도련님의 실존적 위기'라고 할까?


그는 결국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마나(수행자) 그룹에 합류한다. 오늘날로 치면 갑자기 회사를 때려치우고 히말라야 수행 공동체에 들어간 셈이다. 거기서 명상하고 단식하고 고행하면서 3년을 보내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싯다르타는 부처(고타마)의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러 간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석가모니를 소설에 등장시키는 헤세의 대담함! 하지만 흥미롭게도 싯다르타는 부처의 가르침이 논리적으로 완벽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인의 가르침으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으로 치면 세계적인 구루의 강연을 듣고 "음...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전 제 방식대로 할게요"라고 말하고 나온 격이다.


그런 싯다르타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놀랍게도 도시의 화려한 삶이다. 그는 미모의 고급 기생 카말라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상인 카마스와미 밑에서 일하며 부를 쌓는다. 수행자에서 갑자기 사업가로 180도 변신! 오늘날로 치면 명상센터에서 수련하던 사람이 갑자기 증권가에 뛰어든 것과 같다. 싯다르타는 거기서 20년을 보낸다. 맛있는 음식, 비싼 옷, 도박, 술... 세속적 즐거움을 모두 맛보지만 결국 그것도 공허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모든 것이 지겨워져 자살까지 생각하며 도시를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강가에 이르러 자신을 구했던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난다. 바수데바는 싯다르타에게 강물로부터 배우라고 조언한다. 여기서부터가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싯다르타는 바수데바와 함께 강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며 강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던 어느 날, 카말라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그를 찾아오다가 뱀에 물려 죽고, 싯다르타는 자신의 아들을 돌보게 된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들은 강가의 단순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찾아 나서려 하지만, 바수데바는 그를 말린다. "네가 고집을 부리고 집을 나온 것처럼, 네 아들도 자기 길을 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라는 영원한 테마까지 다루는 소설이다!


결국 싯다르타는 강물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 강물이 항상 흐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이, 시간은 흐르지만 모든 순간은 영원하다는 것. 과거, 현재, 미래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자신의 모든 경험-브라만으로서의 삶, 사마나로서의 수행, 사업가로서의 부귀영화, 심지어 아들과의 이별까지도-모두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인생에서 낭비된 시간은 없었다.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결국 바다에 이르듯, 싯다르타도 자신의 모든 경험을 통합하여 마침내 평화에 도달한다. 결국 그의 오랜 친구 고빈다가 찾아왔을 때, 싯다르타의 얼굴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평온함이 빛난다.




아파트 헬스장에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타다가 만난 김 언니가 자식 자랑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아이 이야기로 한 수 위를 노리곤 했다. 벚꽃이 제 때가 되면 피었다가 흩날리듯, 이런 경쟁은 얼마나 덧없었는지. 그 때의 상황이 떠오를때면 문득 이 구절이 교차한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했어야했는데, 꼭 이겨야만 했을까? 때로는 그저 흘러가는 게 삶의 지혜가 아닐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옆자리 팀장이 내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양 회의 때 발표했을 때, 난 입술을 깨물었다. 십 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런 순간이 오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항의해야 옳을까, 회의 끝나고 따로 부를까, 참아야 할까 고민하다 문득 강물을 떠올렸다. 목표를 향해 흐른다는 건, 때론 바위를 만나 돌아가는 법도 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때론 우회로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건 헤세가 이 소설을 쓴 시기다. 『싯다르타』는 1922년,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물질문명의 위기와 실존적 공허함이 팽배하던 시기에 출간됐다. 헤세 자신도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심리치료를 받았고, 동양 사상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이라는 문제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퇴근 후 일부러 천변 길로 돌아 걸어오며 생각한다. 마흔을 지나 오십 가까이에 접어든 내 인생도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것을. 빠르게 지나간 청춘의 봄, 치열했던 삼십 대의 여름, 그리고 이제 찾아온 중년의 가을. 저 강물을 보라. 이 넓은 강물도 처음엔 작은 물줄기였을 텐데, 자신보다 큰 물줄기를 만나면 합쳐지고,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그러다 결국 바다에 닿는다.


나도 그렇게 살면 어떨까.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화내지 말고, 조금은 낮은 자리에서 흐름을 타는 지혜. 사십 대의 내게 찾아온 봄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지혜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내가 좋아하는 말버릇이 생겼다. 사춘기가 시작된 딸이 친구와의 우정 문제로 눈물을 훔칠 때, 고등학교 진학을 앞 둔 아들이 공부에 짜증을 낼 때, 남편이 승진에서 또 밀렸다며 한숨 쉴 때, "강물처럼 흘러가자"고 말한다. 때론 짧게, 때론 긴 설명과 함께. 그러면 가족들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나만 알고 있다. 이 한 문장이 내게 준 단단한 위로와 지혜를.


매년 돌아오는 봄처럼, 인생의 시련도 결국 지나간다. 인생은 강물과 같아서, 때로는 거센 흐름에 휩쓸리고, 때로는 웅덩이에 갇혀 있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맡기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꽃은 피고 지는 순리를 알고, 강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을 안다. 허세 가득하고 오만했던 내가 조금씩 익어가며 비로소 깨달은 이 지혜, 그것이 내가 싯다르타에게서 배운, 봄날의 강물처럼 내 삶을 새롭게 흘러가게 하는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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