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판도라의 상자, 희망은 왜 남아있었을까?

모든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희망은 남아 있었다. - 헤시오도스

by 바나나 슈즈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시려는데 이미 잔은 비어 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빗방울처럼 내 마음속에도 뭔가 차갑고 습한 것이 가라앉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 속 문서는 여전히 새하얗게 비어 있었고,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또 안 되는구나."


마감 기한은 코앞인데, 내 프로젝트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 몇 주째 아이디어를 짜내려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상사의 따가운 시선뿐이었다.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좀 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앞부분은 괜찮은데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져요'...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마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듯했다. 프로젝트는 막히고, 자신감은 바닥나고, 주변 동료들은 문제 없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쳐 있던 순간, 문득 옛날에 읽었던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상자를 열었을 때 모든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남아 있었다는 그 이야기.


모든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남아 있었다.


Hermann Julius Schlösser, Prometheus and Epimetheus before Pandora

판도라, 신들이 만든 아름다운 함정



그 이야기는 이랬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화가 났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자가 신들만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앙심을 품었다. 세상에 인간만큼 제우스의 심기를 건드리는 존재가 없었으니까. 그는 인간에게 가장 완벽해 보이는 선물이자 동시에 가장 무서운 벌을 내리기로 했다.


제우스가 다른 신들에게 명령했다. 흙으로 여자를 만들어라.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줘라. 그녀에게 달콤한 말과 교활한 마음을 심어라. 마치 우리가 상대방에게 선물을 줄 때도 우리의 속내를 감추듯이, 제우스의 선물에도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이렇게 모든 신의 재능을 한 몸에 받은 여자가 태어났다. '모든 선물을 받은 자'라는 뜻의 '판도라'였다(pan 모든, dora 선물). 그녀는 정말 완벽했다. 황금빛 머리카락, 매혹적인 미소, 우아한 몸짓까지. 하지만 제우스는 그녀에게 한 가지를 더했다. 바로 끝없는 호기심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모두가 가진, 때로는 견디기 힘든 그 무언가에 대한 갈망과도 같았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형은 "제우스에게서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동생은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나도 가끔 그런 일이 있다. 뻔히 알면서도 유혹에 빠지는 일. 새벽에 냉장고 문을 열며 내일부터는 꼭 다이어트를 한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것처럼.


판도라는 결혼 선물로 작은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절대, 절대로 그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제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판도라가 그 금기를 어길 것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금지된 것에 끌리는 속성이 있는 게 아닐까.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 앞에서 더 궁금해지는 것처럼.




열려버린 상자, 세상에 퍼진 재앙


며칠 동안 판도라는 그 상자를 바라보며 괴로워했다. 밤에는 상자에서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고, 낮에는 상자가 그녀를 부르는 것 같았다. 호기심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잠도 설치고, 음식도 먹히지 않았다. 그저 그 작은 상자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열어볼까?"


그 생각은 마치 작은 씨앗처럼 그녀의 마음에 심어졌다가, 어느새 전부를 뒤덮는 덩굴나무가 되어버렸다. 결국 판도라는 상자의 뚜껑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 순간, 상자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질병, 고통, 질투, 절망, 증오, 전쟁...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재앙이었다.


판도라는 겁에 질려 상자를 닫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재앙들은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판도라는 울면서 상자를 붙잡았고, 그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풀어주세요."


두려움에 떨면서도 판도라는 다시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부드러운 빛을 내뿜는 작은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은 '엘피스', 즉 '희망'이었다. 마치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서 보이는 작은 빛처럼, 재앙 속에서도 남아 있던 그 무언가.


헤시오도스는 『일과 나날』에서 이렇게 썼다.


"이전까지 인간들은 땅 위에서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나 여인이 커다란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 있던 모든 재앙이 흩어져 인간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오직 희망(엘피스)만이 단단한 집의 테두리 아래 항아리 안에 남았다."


희망은 인간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어떤 고통과 시련이 닥쳐와도, 나는 항상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John William Waterhouse, Pandora, 1896

희망이 남은 이유


왜 희망은 상자 안에 남아 있었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희망이 상자 안에 남은 건 우연이 아니라 신들의 계획이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신들은 인간을 더 괴롭히기 위해 희망을 가둬둔 걸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환상일 뿐이며, 인간을 더 비참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이건 마치 다이어트를 할 때 "이번엔 꼭 성공할 거야"라고 자신을 속이며, 결국 더 큰 실패감에 빠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니체는 희망, 특히 종교적 희망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졌는데 니체에게 희망은 환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며, 끝없는 기대 속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고 보았다. 그는 현실 도피적인 희망이 인간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더 깊은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곧 구해줄게"라고 말하면서 절대 오지 않는 구조대처럼.


하지만 반대로 희망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고통 뒤에는 평온이 있으리라는 믿음. 에밀리 디킨슨은 희망을 이렇게 노래했다. "희망은 깃털 달린 것, 영혼 속에 앉아 멈추지 않고 노래하는 것."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작은 노래처럼 속삭이며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이다. 마치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현대 문학에서도 판도라 신화의 주제는 계속 변주되고 있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에서는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과 그 위험한 결과가 판도라 신화의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서 인류가 초래한 재앙 속에서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남아있음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희망이 남아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을 지펴 숲을 태웠지만, 그 재 속에서도 새싹은 돋아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유명한 그림 『판도라』(1896)에서는 상자를 막 열려는 판도라의 표정이 두려움보다는 경이로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은 호기심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과 함께, 그것이 인간에게 새로운 지식과 성장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양면성을 시사한다. 어쩌면 실수와 실패 없이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위기


몇 년 전 코로나 때 회사가 구조조정 위기에 처했던 때가 떠오른다. 회의실의 긴장된 공기, 동료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은 했지만 무거운 발걸음. 뉴스에는 연일 경제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사무실에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이번 주까지 결과가 나올 겁니다."라는 팀장의 말은 더 큰 불안을 안겨줬다. 그 말은 마치 의사가 검사 결과를 앞두고 환자를 달래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렸다. 매일 누군가의 책상이 비워졌고,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일했지만 모두의 마음속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점심시간에도 웃음소리가 사라졌고,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자는 제안도 없어졌다. 마치 모두가 숨죽여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친 선임이 내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 거야. 어떻게든 버텨내면, 나중에 그 시간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겠지. 지금은 알 수 없어도, 언젠가는 이 경험도 의미가 있을 거야."


그 말이 현실적인 도움이 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희망에 의지했다. 마치 어두운 바다에서 홀로 떠다니는 사람이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에 의지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 희망은 실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그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 덕분에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회사는 살아남았고, 우리 팀은 예상보다 적은 인원만 떠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희망이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버티게 하는 실질적인 힘이라는 것을. 그것은 마치 폭풍우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과도 같았다.




일상에서의 판도라


얼마 전, 친구와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 친구는 결혼에 실패하고 모든 것이 엉망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모든 나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 같아."


내가 물었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게 뭔지 알아?" 그는 고개를 저었다. "희망이야. 모든 재앙이 쏟아져 나와도, 희망만은 남았대. 지금 네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 희망은 여전히 너와 함께 있는 거지."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그 희망이라는 게 사실은 더 큰 저주 아니야? 계속 기대하게 만들어서 더 아프게."

"니체도 그렇게 생각했대. 근데 나는 달라. 희망이 없었다면 난 코로나때 구조조정 시기를 버티지 못했을 거야."


일상의 대화에서 이런 고전적 이야기를 언급하는 건 묘한 매력이 있다. 그냥 "힘내"라고 말하는 것보다, "판도라의 상자에서도 희망은 남았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깊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마치 수천 년의 인류 지혜가 담긴 처방전을 건네는 것처럼.




오늘 밤,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빈 문서를 바라본다. 여전히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가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다. 그래도 문득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구조조정 위기를 겪었을 때도 그랬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


그게 니체가 말한 '가장 나쁜 악'일지, 아니면 디킨슨이 노래한 '깃털 달린 것'일지 모르지만, 그 희망이 있기에 나는 내일 아침 다시 앉아서, 또 다른 접근법을 시도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 막막함 속에서도 언젠가 길이 열릴 거라는 작은 믿음, 그것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 같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조금씩 판도라일지도 모른다. 호기심에 이끌려 상자를 열고, 때로는 원치 않는 결과를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자 속에는 항상 희망이 남아있다. 그것은 마치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 같은 것. 무너진 건물 틈에서 자라는 작은 풀잎 같은 것. 그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이제, 당신도 판도라의 상자를 제대로 써먹을 차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희망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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