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돌
지하철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불빛들이 흘러갔다. 퇴근길은 언제나 길고 지루하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데, 그 하루가 일주일 몫인 것만 같다. 오늘도 이사님은 내 보고서를 두 번이나 되돌려 보냈다. 말로는 수정하라고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콕 집어 말해주진 않는다. 애매한 지시와 눈치 싸움에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결국 야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피곤했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건 오히려 마음 쪽이었다. 마치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다 보면 다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삶.
문득 대학 시절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떠올랐다. 끝없이 무거운 돌을 밀어 올리던 시지프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La lutte elle-même vers les sommets suffit à remplir un cœur d'homme;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시지프스 이야기를 들여다볼까.
시지프스(시지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영리하고 교활한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쇠사슬로 묶어버려 세상에서 죽음을 없앤 일화는 유명하다. 죽음이 사라지자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신들은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시지프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여 지상으로 돌아왔다. 끝없는 속임수와 교만. 결국 신들은 그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형벌은 단순했지만 잔인했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되, 바위는 정상에 다다를 때마다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산꼭대기가 뾰족해서 돌을 올려놓을 수가 없다). 시지프스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바위를 붙잡고, 또다시 산을 올랐다. 이 끝없는 반복.
신들은 이 무의미한 노동이야말로 최고의 형벌이라 생각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면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카뮈는 그 형벌에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발견했다.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에서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모습. 카뮈는 그 반복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았다. 중요한 건 돌을 정상까지 올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올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와 존재의 의미였다. 카뮈에게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위대한 존재였다. 그는 자신의 돌보다 강했다.
나는 어머니가 평생 빨래판에 옷을 문지르던 모습을 떠올린다. 빨간 다라이에 비누를 풀고, 오래된 나무 등걸처럼 쩍쩍 갈라진 나무 빨래판을 반쯤 담가 빨래를 비빈다. 비누 거품이 손등을 적시고, 손가락 관절이 붉게 부풀어 오르던 모습. 매일같이 반복되는 집안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수레바퀴.
어제 빨았던 옷이 오늘 또 빨래통에 쌓이고, 어제 닦았던 바닥이 오늘 다시 더러워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묘한 평화를 찾은 듯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라고 웃던 어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단단해 보였다.
어쩌면 어머니도 시지프스였을지 모른다. 끝없이 쌓이는 집안일을 하나하나 해내는 그 순간에, 어머니는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직장에서 써먹기
야근이 길어지며 동료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진다.
“카뮈가 말했잖아. 돌을 밀어 올리는 게 힘들어도 그 순간에 의미가 있다고. 우리도 결국 이 일을 하면서 뭔가를 찾고 있는 거겠지.”
회의 중, 프로젝트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을 때 한마디 툭 던져보자.
“우리의 업무가 시지프스의 돌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카뮈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만의 의미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SNS에서 써먹기
“오늘도 내 돌을 밀어 올린다. 의미를 찾는 건 내 몫이다. #카뮈 #시지프스의돌”
또는 이렇게 적어볼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해 보여도, 내가 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부조리한세상 #시지프스처럼”
친구를 위로할 때
친구가 지쳐 고개를 떨구고 있다.
“네가 밀어 올리는 돌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 근데 카뮈는 그 돌을 밀어 올리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네가 살아 있는 순간이라고 했어. 힘내.”
내일도 똑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면 이제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카뮈의 말처럼,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채워질 수 있으니까. 우리는 시지프스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 그 돌이 우리의 것이라면, 그 무게를 느끼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온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도 카뮈의 ‘시지프스의 돌’을 제대로 써먹을 차례다.
※ 편의상 시지프스와 시지프(프랑스어 발음)를 혼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