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태엽 Nov 03.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25

나는 언제 재가… | 10월 13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나는 나빠진다고 느끼고 있지만 맥은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뿌리까지 상해 있던 나무의 뿌리가 살아나고 줄기까지 기력이 좀 돌아온 상태라는 설명도 들었다. 싱싱한 잎까지 돋게 하는 게 목표인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거라 버텨야 한다고도 했다.


예전이라면 그래도 나는 체감이 안되지만 많이 좋아졌구나, 혹은 한구석 좋아지는 곳은 있구나 했을 텐데 지금은 별 감동이 없다. 붙었던 손가락의 살갗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큰 지진이 일어날 거라고 예고하듯 간지러움과 따끔함이 반복된다. 살짝만 건드려도, 아니 건들지 않아도 쩍 벌어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살이 벌어진다. 진물이 나고 안쪽의 시뻘건 속이 보인다. 나는 제3자가 된 것처럼 그걸 본다. 어떤 감정을 표출하기에는 절망과 폭력성과 무기력함과 피곤함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마구잡이로 머리를 내민다. 극단적으로 살고 싶다가도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잘 살고 싶어서 죽고 싶다.


밤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 여기저기 따갑고 가려워 숨이 안 쉬어졌다. 미래에 나아진다는 말은 이제 나에게 위로가 못 된다. 나는 내일 아프지 않고 싶다. 나는 지금 아프지 않고 싶다. 나는 당장 홀가분해지고 싶다. 당장 나의 몸에 애착을 갖고 싶다. 고통스러운 귀를 찢어버리고 싶고 살을 도려내고 싶은 자해 충동이 아니라… 건강한 내 몸을 보고 싶다.


비참했다. 엄마는 스테로이드를 먹자고 하셨다. 그 또한 비참했다. 누구보다 먹고 싶은 건 나였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안 좋다고 해서 참았다. 한의원 치료를 멈춘다거나 의사와의 상의 없이 스테로이드를 먹는다거나… 그런 선택지들은 내게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 같았다.

내가 엉뚱한 고집을 부리는 걸까. 주변에서는 다른 곳을 가보는 건 어떤지, 지금 그렇게 상태가 안 좋은데 과연 그 한의원 약이 네게 효과가 있는 건 맞는지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겠다. 네 병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앓고 있는지 찾아보기는 하냐는 물음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보기 싫었다. 안 궁금했다. 나는 나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간절하지 않은 건가? 그래서 찾아보고 싶지 않은 건가?

그럼 나는 병이 낫고 싶을 정도로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고 노력 없이 병을 낫고 싶어 하는 불량 환자인가? 아니면 내가 체감하지 못한다고 치료 효과를 의심해서 벌을 받는 건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조절해야 할까. 명상과 심호흡, 감정을 소화하려는 노력을 해봐도 모르겠다. 긁지 말라는 소리를 듣거나 내가 긁고 있을 때 말리느라 팔을 붙잡는 손길이 닿을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난다. 그렇게 분노가 치솟아서 목구멍이 바짝 타버린다. 그래서 엉엉 울음이 나오나 보다. 불을 끄려고 눈물이 마구 나는데 그건 눈에서 나와 뺨을 타고 사라지는 거라서 속의 불을 끄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속은 바짝바짝 타버리고 얼굴은 눈물에 지저분해진 병자일 뿐이다.


그렇게 젖어버린 눈은 또 따갑고 가렵다. 참다가 얼굴을 때리고 긁고 또 울고 속은 불타고 나는 언제 재가 될 수 있나…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몸 수선하기 0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