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한의원을 다녀왔다. 여전히 잠에서 깰 때 앞다투어 밀려드는 고통을 잠재우는 일은 어렵다. 버스를 타러 갔더니 정차 없이 가버렸다. 오른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아 속이 뭉개진 기분이었는데 그 위를 버스가 밟고 지나간 것 같았다. 기분 나빠한다면 나만 손해인데도 태연하기가 어렵다.
다른 버스를 찾아서 탔다. 원래 타던 버스보다 걷는 시간이 길지만 그래도 이제 덥진 않으니 괜찮았다. 생리를 해야 몸에 찬 열이 빠져나간다고 말한 게 지난주인데 아직도 앓기만 하는 중이다. 그래도 좋은 소식은 저번달엔 배란기부터 피부가 뒤집어지고 진물이 쏟아졌는데 이번에는 스테로이드 없이도 버텨진다는 거였다. 물론 아프지만…. 그때처럼 두꺼운 피딱지가 생기거나 귀가 다 찢어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뿌듯해야 함이 맞는 상황인데, 내 머릿속은 전체적인 진척보단 그날그날의 고통이 우선시 되는지 얼굴과 발이 아파서 별생각이 안 들었다…….
맥은 이틀 전에 진맥 했을 때보다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아픈데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 건 늘 어리둥절한 일이다. 토요일이나 다음 주 화요일에 진맥 했을 때 지금보다 상태가 더 좋아져 있다면 한약을 더 이상 안 먹어도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죽어있던 위장 기능이 회복되면서 이젠 스스로 음식에서 에너지를 뽑아 쓸 수 있게 됐으니 몸에 기력이 조금만 더 돌아오면 한약보다 밥이 약이라고 했다.
몸도 버텨지고, 한약도 곧… 잘하면 끊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크게 기쁘지 않을까. 좋아지기 직전에 고꾸라진 적이 몇 번 있어서 섣불리 기대하기가 어려워서인가. 기대할수록 마음은 붕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뜰 테고, 고꾸라진다면 붕붕 떠오른 만큼 높이서 추락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얼마든지 커질 수 있고 얼마든지 아프게 박살 날 수가 있다.
앞선 몇 번은 그래도 그 추락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고꾸라지면 정말 못 버틸 것 같다. 마음만 아니라 몸도 산산조각 날지도 모른다. 오른쪽 눈이 떠지지 않아 두려우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한다. 예전보단 좋아졌지만 아직도 옆으로 누워 잘 수는 없는 귀를 감싸고, 오늘은 덜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아무에게나 빌어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타인에게 빌기만 하는 삶이다.
그래도… 누가 듣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