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네가 강아지를 입양했다. 너무 작고 소중하고 예뻤다. 아이들의 마음을 뺏기 충분했다. 친구네 강아지를 보고 온 다인이는,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원대했는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를 보며 더욱더 맘에 불이 지펴졌던 거다. 어린 마음에 그저 친구가 부러워서, 고양이가 예뻐서, 무작정 졸라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반려동물을 일단 가족으로 들이면, 정성껏 돌봐주고, 나중에 아프고 병들어도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넌 그럴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고양이 화장실 청소도 매일 해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화장실 청소도 직접 하겠노라고 했다. 5살 터울나는 동생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았던 누나다. 남동생이 문열고 화장실 볼일을 보면 버럭하는 누나다. 동생한테도 그러는데, 과연 고양이 화장실 청소는 군말없이 할 수 있을까?!
동물을 키우는데 비용도 많이 든다, 너에게 그럴 돈이 있냐고 물었더니, 열심히 모으겠다고 했다. 이후, 다인이는 명절이나 친척 어르신들을 만날때마다 받은 용돈을 고양이 봉투를 하나 만들어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호락호락 고양이를 집에 들여줄 엄마가 아니다. 그럼 일단 네가 얼마나 간절한지, 그리고 진짜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보겠다고 했다. 너의 진심을 1년 동안 테스트 해보자고 했다. 하루에 정해진 분량의 숙제와 공부를 밀리지 않고 1년 동안 해내는 걸로, 네가 진짜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그리고 그동안 고양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진짜 네가 혼자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양이에 대해서 공부하자!! 혹여나 그 1년 사이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양이 프로젝트 365' 라는 이름으로 문서까지 작성했다. 마치 계약서 혹은 칭찬스티커 제도와 같은 거다. 잘하면 365일에서 하루씩 지워나가고, 못하면 다시 하루를 늘리는 방법으로 365일을 다 이뤄내면 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속으로, 이게 며칠이나 갈까 했다. 작심삼일이 몇번 반복되다가 말겠지...) 역시나, 며칠 잘 하다가, 못하고, 또 며칠 잘하다가... 또 못하는 걸 반복했다. 그러니 디데이가 줄어들 턱이 있나...
학교 학원 공부는 그럴진데, 고양이 공부만큼은 열심이었다. 수의사가 쓴 고양이 도서 <나는 행복한 고양이 집사> 책을 가지고 다니며 여러 번 정독했고, EBS에서 방영했던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몇번이고 돌려봤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냐옹신(나응식), 미야옹철(김명철) 수의사 선생님이,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 집사님을 찾아가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고양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해 조금씩 공부해 가는 사이, 다인이의 꿈은 수의사가 되었다.
"수의사 되려면 공부 엄~~~~청 잘해야 될걸?"
"......... ;; 그럼 고양이 카페 할래!! "
(...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얘기는 절대 안하지!!)
수의사든, 고양이 카페 주인장이든... 이 아이의 머릿속은 온통 고양이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러, 고양이 365일 프로젝트가 190여일 정도 남은 때였다.
(그렇게 고양이 고양이 거리면서도, 2년 동안, 약속을 지킨 게 며칠 안된다는 뜻... ;;)
원래는 디데이가 100일 정도가 남아있을 때, 입양할 고양이를 천천히 알아보기로 했다. 펫샵의 악순환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에, 우린 사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했다. 네이버에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라는 카페를 2년전, 고양이 365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입하고, 틈틈이 고양이 구조자들의 입양 홍보 글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다인이는 먼치킨, 페르시안, 러시안 블루 등, 누가봐도 어여쁜 품종묘를 키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펫샵에서나 볼 수 있고, 간혹 품종묘인데 유기되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아이들은 예쁜 미모 덕에 입양도 빨리 되는 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데려올 수 있을 때, 마음이 가는, 도움이 필요한, 아기 고양이를 데려오자고 했다. (아기 때부터 커가는 과정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다인이도 세상의 모든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세상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고양이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세상엔 훌륭한 집사님들도 많지만, 생각보다 매정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입양 홍보글에는 고양이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로, 입양 조건들이 세심하고 까다롭게 적혀있곤 했다. 고양이가 있는 곳에서 되도록 가까이 있는 사람이 좋고, 집에 고양이를 위한 물품과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기왕이면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으면 좋고,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신중하게 결정하시라는 조언과 함께, 가족구성원 모두 고양이 알러지 검사를 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조건들 중에서 '어린 아이' 부분에선 우리는 입양이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체 필터링을 하며, 그래도 언젠가는 묘연이 닿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 6월 17일!
묘연이 시작됐다.
토요일 저녁, 동네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지인이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여주었다. 어떤 주민 분이 하수구에 빠져있던 아기 고양이를 구조했다고 한다. 구조 당시 사진은 정말 안타깝고 처참했는데, 병원을 다니며 치료 후 사진은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이제 치료 마무리 단계라, 입양자를 구한다는 글이었다.
다인이의 고양이 프로젝트는 190일 넘게 남았지만, 왠지 자꾸 마음이 갔다. 이런 묘연이 언제 또 닿을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남편에게 먼저 보여줬다. 이런 아이가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남편은 예쁘다고 하면서도 선뜻 데려오자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6월 18일. 일요일 아침.
고양이가 마음에 계속 둥둥 떠다니는 아침이었다. 다인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늦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찔러보는 마음으로 "고양이다!!" 장난스레 외쳐봤다.
아무리 깨워도 꼼짝도 하지않던 다인이가, "고양이다" 한마디에 번개같이 벌떡 일어나서 희망에 찬 표정으로 나를 꿈뻑꿈뻑 쳐다봤다.
"크하하하하하. 건너편 아파트에서 구조된 고양이가 있는데, 입양처를 찾고 있대"
"우리가 입양하자"
보지도 않고, 말부터 앞선다.
사진을 보여주니, 두 눈에서 하트가 뿅뿅이다.
"예쁘다~~~ 우리가 데려오자, 응?"
이미, 나도 마음을 빼앗긴 상태에서 다인이에게 물어본 것이기에, 그럼 한번 물어보겠다고 했다.
지인을 통해 구조자 분에게 쪽지를 보냈다. 우리는 고양이 키워본 경험도 없고, 어린 아이도 있는 집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양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한두달정도 "임시보호"를 해봐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지인이 아파트 커뮤니티를 통해 대신 물어봐주었고, 쪽지에 내 번호를 남겨주기로 했다.
그때부터 다인이는 하루종일 "고양이 연락왔어?"를 백번도 넘게 물어보았다. 오전에 쪽지를 보냈는데, 늦은 오후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이미 다른 입양자가 나타난 걸수도 있어,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라고 딸을 다독였다. 아직 쪽지를 확인안하신건가... 우리 묘연은 아닌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터에 쪽지를 보낸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연락왔어요?"
"계속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어... 아직 쪽지 확인을 못하신건가..."
"주신 번호로 전화드리겠다고 바로 답장이 왔었어"
아!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 구조자 분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거나, 오늘 바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 8시를 향해갈 즈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엄마 전화왔어!"
다인이가 내 핸드폰을 쥐고 있었는데,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가져다주었다.
모르는 번호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기대했던 대로, 역시나 구조자 분이셨다. 목소리와 말투에서부터 선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분 아들이 하수구에 빠져있는 고양이를 구조했는데, 10분만 늦었어도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한 아이였다고 한다. 하수구에서 오리 소리 같은 게 들려서, 옷가지를 내려주었는데, 그 옷을 그 자그마한 아기 고양이가 꼭 쥐고 올라왔다고 한다. 내려주신 옷가지가 이 아이의 생명줄이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를 구조해온 아들을 잘했다 칭찬해주시고, 귀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성심성의껏 치료해오신 분이셨다. 스피커폰 너머로 우리가족 모두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분은 임시보호를 두달동안 하면, 그때는 이미 성묘가 되어 다른데 입양보내기가 어려워지니, 2주 정도만 임시보호 하면서 입양할지를 결정해 달라고 하셨다. 감사했다. 한번 데려온 이상,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초보 집사 가족을 고양이가 싫어할 수도... 혹여나 아이들과 고양이가 맞지 않을 경우를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2주 정도 고양이와 아이들 모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겪어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언제 데려올지에 대해 의논을 하는데, 옆에서 애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데리러 나갈 태세였다.
"제가 밖에 나와있어서 밤 10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내일 저녁 때..." 라고 말하려는데, 딸이 수화기 너머로 들리게 큰소리로 말했다.
"10시도 좋아! 10시에 데려오자!!"
(우리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 이분도 고양이랑 인사할 시간은 필요하잖아...ㅠㅠ)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다음 날 아이들과 같이 맞이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해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이소 문닫는 시간이 밤 10시 임을 확인하고, 고양이 맞이 용품을 사기 위해, 다이소에 다녀왔다.
다인이는 츄루와 고양이 장난감과 스크래처를 샀다. (구조자 분이 고양이가 사용하던 모래와 사료는 주시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고양이를 위한 용품 준비와 마음의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