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여행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간순서로 쓰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아직 여행 첫날의 기록은 쓰지도 못하고, 여행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떠나가는 과정에 대한 글을 장황하게도 쓰다보니, 첫 여행지인 런던에 도착하기까지만 3편이 되어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에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고들 하던데, 이 비루한 3편으로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날까? 작가 신청을 했다 취소했다를 자꾸만 반복하다 그냥 한번 신청 해보고 안되면 말자!라는 마음으로 신청을 해보았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가도, 이런 기록들은 나만 보고 싶다가도, 하루에도 마음이 계속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한다.
(feat. 다음 날 바로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이 왔다! 맘 먹은 김에 서랍속 글들 다 발행~~!!)
암튼 그렇게 3편의 글을 작가의 서랍에 저장하고, 오타는 없는지 핸드폰으로 보다가 옆에 누운 다인이에게 "엄마가 우리 여행일기를 이제야 쓰고 있어, 한번 볼래?"하며 슬쩍 내밀었다. 자려고 옆에 누운 딸은 내 핸드폰으로 눈을 옮겼다. (우리가 함께했던 여행... 너한테는 남 이야기는 아니니 관심이 있겠지?) 여행의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딸은 집중해서 꽤 진지하게 읽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무슨뜻이냐고 물어도 보고, 어느 부분(특히 자기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깔깔대며 웃다가, 또 어떤 부분(자기가 몰랐던 비하인드)에서는 왜 그랬냐며 씩씩대면서 아주 솔직한 반응들을 보여주었다. 다인이의 그런 리액션 덕분에 뿌듯했고, 계속 써봐야겠다는 힘이 생겼다. 즐겁게 읽어준 나의 첫 독자, 다인아, 고마워-
남편이 1년 동안 체코에 다시 나가기로 결정하면서, 1년간 맡아하던 영화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 작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게 된 건, 딱히 남편의 거취 때문만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인내심이 바닥이긴 했다. 일의 특성상,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영화보고 그 영화를 소개하는 대본을 쓰는 일이므로, 나같은 주부가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병행하기 아주 딱 좋은 일자리였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 챙겨서 학교보내고 어린이집 보내고, 집안을 정돈한 다음에, 일을 하다가, 차례로 하교, 하원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챙기면서 머릿속은 일에 가있는 날들이 반복되니,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쩔 땐 엄마를 찾으며 방문을 두드리는 민찬이를 밖에 두고 문을 걸어잠그고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 하는 일들도 반복됐다. 양쪽에 꽤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다.
무언가 하나를 놓으면 숨통이 트일까! 아이들 케어도 잘하고 싶고, 집안일 따위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도 않았고, 일도 내 성에 찰때까지 보고 또 보아야 했다. 몇년전만해도늘 중심을 잡아주고 의지할 수 있는 선배 언니들이 있었는데, 내가 1년 전에 맡았던 프로그램은 처음으로 내가 뽑은 후배 2명을 데리고 이끌어가야하는 위치였다. 모두 다 잘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 어느것도 잘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비슷하게 아이를 (심지어 쌍둥이 남매를!!) 키우면서 일도 여러개를 동시에 멋지게 해내는 친한 선배언니는 어떻게 이걸 다 해낼까? 궁금해졌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랑 꽤 많은 프로그램을 같이 했는데, 힘들고 지쳐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극에 달할 때마다, 단단한 모습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잡아준 언니었다.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다 잘해내고 있어요?" 라는 질문에, 모든 것에 해탈한 듯한 언니의 대답은 "육아도 일도 그냥 다 대충해~"였다. 내가 아는 언니는 이 모든 걸, 절대 대충할 리 없는 언니였다. 다 잘해야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뜻이었다. 한방에 내 마음을 정리해준 언니의 말이 고맙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개편을 맞이하면서 여러 상황들이 바뀌게 되었고, 모든 게 바뀌는 이 시점이 그만둘 타이밍이었다. 때마침 내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소울>이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를 소개했는데, 그 영화가 내 마음에 더 불을 지폈다. '너무 아둥바둥 살지말고 쉬어가도 괜찮아' 라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이렇게 내 삶에 적용해버렸다. 일을 그만두면서 결심했다. 이젠 정말 내 글을 써보자고... 그런데...!! "일을 그만뒀는데도, 왜 계속 바쁘지?" 분명 시간이 남을 텐데, 내 글 한줄 쓸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내주지 못했다. SNS에 내 일상 한줄 올리는 것도 못하는 바보 멍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으론 뭐든 써야지 하면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허송세월하듯 지나버렸고, 이젠 뭐든 써야지를 실천해야 될 때가 왔다.
미루고 미루던 여행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은지도 한참 됐다. 여행은 8월에 했고, 지금은 10월의 끝자락이니 말이다. 5살 민찬이는 몇년이 지나면 이번 여행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거란 걸 안다. 다인이가 5세에 다녔던 여행들을 하나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걸 보면 백퍼다. 기억을 하지 못하더라도, 저 깊숙한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서,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좋은 밑거름 정도는 되줄거라 믿는다.
나마저도 여행 중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까먹기 전에 빨리 기록해둬야겠다. 지금도 중간 중간 기억이 안나는 부분들이 꽤 있는것 같은데, 멈추지 말고 일단 기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