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일 후에 또 똑같은 것들

자기 객관화

by 여기루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목적 없는 일에 허비하고 있었다. 그다음 날도 물론 변함없이 똑같을 것이다. 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하루의 시작과 끝에 나를 돌아볼 생각이 없다. 퇴근하면 집에 달려가서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속에 불 끄고 누워있으면서 유튜브나 sns 보고 실없는 웃음 짓고 있다. 전형적인 현대판 노예를 풍자하는 말로 위안 삼으며 나는 일주일, 한 달.. 1년 그렇게 스물아홉이 됐다.

출퇴근을 걸어 다녔다. 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는 매일이 똑같다. 오버 좀 보태서 신호등만 없다면 눈 감고 일과 집을 오갈 수 있을 거다. 매일 똑같은 차들은 주차가 되어있고 매일 똑같은 매장들은 상상 속으로도 현실처럼 잘 그려진다. 이 거리와 나와 같은 점은 똑같은 후에도 또 똑같은 것이다.

친구나 직장동료와 일을 끝나면 술 한 잔 기울이면서 하는 말이 있다.

"인생 대충 살자."

"그냥 이렇게 술 먹고 노는 게 낙이지!"

나는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고 했다. 발전 없는 하루들을 살면서 자기 계발은 뒷전이고 술이나 먹으면서 오늘만 살아가는 하루살이. 그게 나였다. 물론 꾸준히 자격증 공부나, 책을 읽고 뿌듯하긴 했다만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심삼일이 준 일회성 성취감이었다. 변화를 위한 꾸준한 행동으로는 안 옮겼다는 소리다. 늘 그 자리, 제자리걸음.


뭐하나 해둔 게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일은 두고 다른 자극에 의지해보고자, 음주가무를 열렬히 즐기던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망나니가 따로 없다.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누구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한발 뒤로 물러서 나를 봤을 때, 자기 객관화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고 자제력 없고 미래 없는 내 인생으로 혼자 점치면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여유가 없을 땐 나를 돌아봐야 했다. 내 가치를 높이자는 생각을 먼저 해야 했다. 그래서 퇴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를 먼저 찾자, 주체적인 내가 되어보자, 내가 지금 여유가 없이 휘둘리고 뭐가 먼저인 지 모를 때면 나를 다시 한번 천천히 다시 찾아보자' 외쳤다. 똑같은 생활에 지치고 누구든지 나 대신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도태의 길로 빠뜨리는 지름길이었다. 미래가 컴컴했다. 확실한 건 나의 지금 위치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유를 찾기 위해서, 꿈만 꾸던 기나긴 여행을 하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다 나와 같이 살아가는지, 아니면 꿈을 좇아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지, 다른 환경을 경험해보고자 나는 떠난다.


당장의 오늘을 즐기면 된다는 말은 내 위치가 마음에 들 때 해야 했던 것들이었다.

당신은 오늘을 열심히 살지 않았고 무언갈 해낼 용기도 없는데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고 무료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나였다. 변화를 주려고 하면 진득하니 하지 못하고 역경이 찾아오면 바로 손절을 친다던가, 흐지부지 되는 일들은 둘러싼 안정감으로 인해 무너지곤 했다. 변하고 싶은 간절함 부족했던 거겠지.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내년에도 똑같은 고민들로 안정에 기댄 채 나 없는 오늘만 살다가 후회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겠고..



나는 안정에 취해 있어서 작은 성취감에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이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서 있다. 뭐가 되었든지 오래전에 느껴봤던 성취감을 깨워 지속적 동기부여를 통해 나를 알아가면 삶의 태도가 바뀌는 걸 안다. 주변 환경의 방해에 만류하고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나의 확신이 찬 순간 나는 다른 도전에도 당차게 나아갈 것을 안다. 그래서 난 퇴사를 결심하고 나에게로 떠나는 긴 여행자가 되어보려 한다.




저자 정문정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읽고

어떤 경우에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우리는 관계하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의 일부가 나의 일부가 된 후에 작별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아무리 친밀하다 하더라도 그 만남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하거나 자극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나는 더는 괴롭히지 않고 떠나보내게 됐다.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화나 헤어짐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됐으니까 지금의 내게 맞지 않는 것을 예전에는 맞았던 사이즈라고 욱여놓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고야 만다.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오늘의 내가 행복해야 살아가는 맛이 있지 않을까?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오늘을 즐기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을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