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퇴사역입니다.

영원한 안정의 불멸 티켓 '자격증'

by 여기루



'또 흔하고 뻔한 퇴사 이야기야?' 하지만 누구에게나 퇴사 자체는 흔할 수 없고 뻔할 수 없다. 첫 직장에서 6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스물아홉이다. 20대에 남은 게 없는 공허함은 나를 미치게 했다. 나의 전문직 자격증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겐 꿈을 가로막는 양날의 검, 달콤한 무기였다. 영화 한 편의 조연으로 끝날 내 인생에 주연 맡을 기회조차 주지 않을 싱거운 안정 기차, 그건 전문직의 타이틀이었다.


지정 좌석이 뚜렷했고
순탄한 인생역으로 가는 기차에서
이제 종착지가 아닌 하차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이번역은 퇴사역입니다.

사실 나는 세상의 광활함을 겪어보고도 다시 이 길을 가고자 하면 가면 된다. 이건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유일하게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준 쫄보의 황금티켓이었다. '돌아갈 때가 있잖아. 자격증 있으니까 좋겠다.' 이 말들이 어쩌면 나를 지금까지 더 쫄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말하지만 다신 안 돌아갈 각오로 퇴사를 결심했다.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던 것일 뿐, 지금 일은 천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게 앞자리가 바뀐다는 소리는 내 의지에 찬 열정적이었던 적이 없는 20대를 보낸 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상대방에게 나를 소개할 때 직업과 커리어가 있다는 건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누군가가 주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6년 동안 정기적금, 펀드, 주택청약도 들면서 알뜰하게 모았고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던 나였다. '나약한 우등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누군가의 가족, 딸, 친구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아침부터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의 주삿바늘이 빠져서 피가 넘치는 걸 보고 상황을 수습하다가 찡그린 채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는 피를 잘 못 보는 사람인데 아침부터 피를 볼 수 있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이 시초였다.


코로나로 인해 비닐장갑을 끼고 치료를 해줄 때도 "너무하시네요, 제가 그렇게 더러운 존재입니까?" 하며 자리 박차고 나가는 환자를 보고 황당한 적이 있었다. 최선을 다 해서 환자의 회복을 위해 힘쓰는 내게 힘 빠지는 다양한 소리를 하는 환자들도 많았다.


사지 멀쩡한 환자들이 "아가씨 여기 물 좀 갖다 줘"

아가씨부터 기분이 안 좋은데 물을 갖다 달라는 것도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다.


"향이 너무 좋네요." 하는 노총각 아저씨에게 내가 참아야 하는 부분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일부러 낙상을 일으켜서 "이거 어제 물리치료받다가 멍든 곳인데 이거 어떡할 거야? 병원 측에 고소해야겠어."


나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 선생님은 내 눈앞에서 안 보이게 해"라는 환자들에게 어디까지 공적인 영역으로 대해야 하는 걸까.


7번이면 8번, 정해진 시간을 안 지키던 입원환자와 환자의 보호자와의 다툰 적이 있다.

오전 11시와 오후 4시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는 단 한 번도 정해진 시간에 오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컴플레인이 두려워서 시간을 어떻게든 내서 치료를 해 줬다.


"어머님, 오늘만 해드리는 겁니다."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괜히 있는 소리가 아니다.

그 후에도 단 한 번을 시간 맞춰서 오질 않았고 틈만 나면 외부 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은 11시에 못 갈 것 같네요. 11시 50분에 가면 안 되나요?"


"11시 반이 마지막 타임이에요. 어머님 곧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그냥 오후에 오시거나, 오늘 오전은 치료를 못.."


"50분에 갈게요!" 뚜뚜뚜..


자기 할 말만 하고 끊고 해 놓고 기다리면 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12시가 넘어서 밥 먹는 시간에 온 적도 있었다. 이 정도면 일부러 시간을 안 지키는 것처럼 정말 단 한 번도 시간을 지킨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참고 참아서 괜히 트러블 생기는 걸 원치 않아서 받아주었다. 오로지 환자한테 맞춰야 된다는 병원의 지침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직원들이 감당해야 할 범위의 선은 어디까지인지 헷갈렸다.



어느 날은 다섯 시 퇴근하는 날이었다.


"여보세요 물리치료실입니다."


"나 그 4시 환자 보호잔데요. 아빠가 점심을 못 먹고 방금 악지르고 난리가 나서 4시 45분에 가도 됩니까?"


"어머님, 매번 이렇게 오신다는 시간에 안 오시면 다른 환자들도 치료를 못 받습니다. 오늘은 5시에 퇴근하게 되어 네시 반까지 못 오시면 치료 못 해드립니다."


"아니 일부러 못 가는 것도 아니고 너무하네 정말로, 가족들 아파본 적 있어요? 45분에 갈게요." 뚜뚜뚜..


오늘 역시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고선 4시 56분에 왔다.

이 날은 정말 화가 많이 났다.


"네시 반까지 오라고 했잖아요. 다섯 시에 퇴근하는데 다섯 시에 오는 건 무슨 심보인가요?"


"내가 정할 수가 없는 범위예요. 시간대로 올 수가 없는데 왜 이해를 못 해주나요?"


보호자 말로 자신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이런 거 안 가르쳐줬겠지만 가족들 안 아파봤죠? 어려서 모르나 본데 우리를 이해해줘야 해요."


'스물여덟에 학교 얘기??' 최대한 이성적이고 싶었으나 퇴사를 결심했던 후여서 그런지 조금의 용기가 생겼다.


"어머님 전화할 때 왜 자꾸 자기 할 만만하고 끊으세요? 그리고 아버님만 환자가 아니에요. 어머님 때문에 다른 환자를 치료를 못하고 있는데 너무 이기적이신 거 아니에요?"


"선생님 이름이 너무 예쁘다 생각했는데 눈을 이렇게 부라리면서 어린애가 어른한테 따박따박 대드네. 당황스럽네요." 이름 예쁜 게 갑자기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였다.


"저도 당황스럽네요 제가 직장 6년을 다녔는데 이렇게 시간 약속 안 지키신 분 없었어요. 이게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치료실의 룰이 시간 예약제인 거 아시잖아요. 7번 올 동안 한 번도 시간을 지킨 적이 없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간 예약을 하면 다른 환자는 그 시간에 치료를 못 받아요. 그런 어머님이 더 이기적인 겁니다. 저도 치료를 해드리고 싶은데 다 맞춰 드릴 수 없어요. 그리고 어린애가 아니라 치료사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5시에 퇴근인데 5시 7분이 지나고 있던 터라 그 7분의 소중한 개인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여기서 더 퇴사를 결심했던 건 융통성 없던 주변의 환경이었다. 이건 치료를 못해서가 아닌 문제였다. 엄연히 시간 약속, 사적인 인간적 도리와 공적인 애매한 부분이었는데 어디까지나 쉬쉬하라는 선배님들, 환자에게 다 맞춰달라는 동료들, 나의 감정과 뜻은 고립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잘잘못은 다 직원에게 있고 나의 힘을 펼칠 수 없는 벽을 알고 나서의 허탈함, 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순간에 나는 퇴사를 더욱이 결심하게 됐다.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최선을 다 해서 환자의 회복을 위해 힘썼다.

물론 좋았던 기억도 많지만 소수라고 할 수 없는 진상들에게 최선과 진심을 보여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렴 긍정적인 사람이었던 내게 병원은 지극히 아프고 예민한 환자들의 감정을 받아주는 노동자였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예민한 환자들은 소리지르기 바빴고 우린 '네네 죄송합니다.'를 외쳐야만 하는 을이었다. 컴플레인으로 위에서부터 실장님과 직원들을 나무라 해도 우리의 이야기엔 관심이 없던 갑에게, 직원의 권위는 생각을 안 하는 병원에 불만은 아끼지 않겠다.


비교적 일도 편하고 야근은 없지만 도태되는 느낌을 받아 항상 퇴사를 갈망했다.

안정만을 추구하는 좁은 시야의 세상이 재미가 없고 성장할 수 없는 주변 환경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일이 하기 싫어서 이것저것 핑계 대는 어린 마음일까?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써 왔던 독후감을 우연히 펼쳐보게 되었다. 그리곤 내일 아침에 당장 사직서를 제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내 인생은 원인론에만 목적을 두고 살아왔었다. 앞으로 더 나아갈 생각을 한 것이 아닌 이 문제의 원인을 먼저 생각하고 탓하기 바빴다. 과거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만들어 낸 원인론적의 악순환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경험에서 비롯된 충격에서 멈추지 않고 그 경험에 부여된 의미에 따라 나 자신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에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는 불만이 있더라도 편한 지금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모순이라면 모순이지만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난 생활양식을 바꿔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크나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지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2014)를 읽고


25살에 썼던 독후감을 보고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답은 주변 누군가 찾아주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찾는 거구나.' 하고자 했던 건 4년 전에도 변함없었다는 마음을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것 같아 내게 작은 위로도 건넸다. 나에게 그럴듯한 회사 간판보다는 어디에 내놔도 먹고살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사직서를 작성하진 않았다. 큰 틀을 정했다. 여행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보자. 욕심은 버리고 열심히만 하자고, 1년을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보자는 계획을. 그리고 30살을 맞이하기 하루 전에 이번 해를 잘 살았다고 당당히 외치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사직서를 냈다. 나는 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자신감은 오로지 내가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들을 차단하고 앞으로 나가자는 계획만 세웠다.


지금 당장 나가서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지만 지금까지 흘러가는 대로 남의 기대에 살아왔다면, 내가 해보고 싶은 일에 시간과 도전을 투자를 해보자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