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뒷산에서 한라산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싫어하던 산에서도 나의 방향을 배운다.

by 여기루


창문 없는 지하에서 6년, 일주일에 6일 근무하는 병원에 다녔다. 출근할 때마다 지하로 내려갈 때 지하 특유의 쿰쿰한 냄새를 맡고 나면 아침부터 기분이 다운이 된다. 지하 특유의 빛이 없는 어두움으로 기분이 좋아질 여력이 없다. '햇빛을 보면서 일해야지. 이렇게 어떻게 살아 쯧' 하며 연신 혀를 차신 환자분들도 많았다. 아침부터 기분이 다운될 명백한 이유가 있어도 나의 감정엔 무관심했다. 6년 동안 다녀왔던 내 직장이니까, 다들 이렇게 살아가니까, 벗어날 생각조 차를 안 하는 안정 마약에 심취한 사람이 나다.


항상 내 친구들에게 밖의 날씨를 물어보곤 했다. 매일 날씨를 물어보니 친구는 나를 휴대폰에 '나만의 지하세계'로 저장하고 나는 친구를 '나만의 기상청'이라고 저장했다.


나는 산을 정말 싫어했다. 산을 왜 타는지 이해가 안 갔다.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몰랐다. 심장 벌렁 뛰게 하는 건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억지로 장기 마라톤을 시켰을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산을 타기 시작했던 건 계절이 그리워졌을 때였다. 무심히 지나는 계절을 오래 느껴보고자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말마다 집 근처의 무등산 국립공원을 갔다.


즐거운 산행 되세요!

산행을 시작할 때 하산하는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한마디를 건넨다.

'누군가 내게 아침마다 이런 긍정적인 말을 해준 적이 있었나?' 산을 올라타다 보니 복잡했던 일들이 정리된다. 심지어 한걸음을 내딛으면서 긍정의 메시지를 꺼내고 있는 내 모습도 마주한다.

"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야." 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는

절경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곤 "우리가 이뤘다. 목적을 해낼 수 있네?"

산은 힘들만하면 내리막길을 내어주고 더울만하면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내어주고 위를 보면 푸릇한 잎들과 하늘이 어울려 파랗고 초록한 편한 기운을 선사해준다. 이게 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산행을 하고 난 후에 먹는 음식은 더 맛있고 공기 좋은 곳에서 크게 한숨 내쉬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처음에는 첫 번째 도착지인 중머리재(해발 617m), 그다음은 중간 지점의 장불재(919m), 다음은 장불재와 막다른 길의 중봉(938m), 정상인 서석대(1187m)까지 산행을 주말마다 다녔다.




병원 근무는 주 6일이었다. 나에게 유일하게 늦잠 잘 수 있는 날은 일요일 단 하루뿐이다. 6시에 일어나 산행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봤다. 불토를 보내고 늦잠을 자는 것보다 산행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 내게 그리운 날씨를 주말에는 장시간 같이 있을 수 있기에, 더더욱 산을 타고 사랑하게 됐다.

산을 올라가 본 사람들은 안다. 산행은 진한 교훈을 가져다준다. 산의 세계를 보고 있을 때 평일엔 쉽사리 보지 못하는 낮의 하늘과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된다. 시간 지날수록 산행이 좋아져 스틱을 사고, 등산화를 사고, 자외선 차단해주는 토시와 등산 장비를 갖추게 됐다. 그때 나는 욕심이 생겼다.


우리 한라산 도전할래?

'무려 해발 1950m 한라산을 우리가?' 나는 무등산을 주말마다 갔던 그 성취감에 무작정 제주도로 가는 티켓을 친구와 그 자리에서 항공권을 예매했다.





한라산을 다녀와서 쓴 일기


경치가 더 좋다는 말에 무작정 어려운 관음사 코스를 골라 버렸는데 후회는 없었다. 12시 반쯤 정상에 오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항상 위를 보면 보이는 구름들이 아래를 봐야 보인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희한했다.

평소엔 그렇게 그리웠던 마른하늘이 이날은 내 앞에 얼굴을 서로 들이미는 구름들과 지나치게 마주해서 한동안은 밝은 하늘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다. 오목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웅장한 백록담이 자칫하면 차가워 보이는 가을 하늘 아래에 형용할 수 없는 따뜻한 색들로 퍼져 있던 그 드리워진 풍경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점심 먼저 챙기라는 몸의 신호에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과 김밥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오는 도중 식어 버린 뜨거운 물이 미지근한 걸 보고 한낱 짐 덩어리밖에 안 되어준 텀블러가 야속했다. 정상에 온 내가 기특한 게 더 커서 많이 시무룩하진 않았다. 그러는 도중 아주머니 두 분이 조심스레 오셔서 내 아쉬운 말을 들었는지 뜨거운 물이 남아서 주고 싶다며 물을 따라 주셨다. 다시 한번 나는 따뜻한 생각을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수많은 변수에도 꿋꿋이 나아가면 답은 나오겠지.' 작은 도전을 큰 도전으로 만들 수 있는 강한 마음 한 자락이 또 피어난다.




매일 하늘이 그리웠으면서 안정에 취해서 오늘의 계절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안정에 취해서 나의 감정을 챙기지 못했다.



만약에 주말마다 한 번 가보자는 무등산을 안 갔더라면 한라산에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조그마한 도전들은 큰 도전을 부르는 게 확실하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 미소 뗘지게 하는 것들을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