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에 관심이 많은 우리들
어느 날 회사 동료들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들은 꿈이 뭐예요?"
"꿈? 내 꿈? 유치하게 꿈을 물어본다고요?"
"지금 퇴근하는 거요."
'가슴 콩닥거리는 설렘을 느껴본 지 얼마나 오래되었지?' 병원에서 일을 하는 시간, 쉬는 순간에도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한심함을 자처하고 있다. 마음은 '생산적인 일 좀 해' 하면서도 몸은 휴대폰 만질 궁리만 하고 있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 안심한다. 나와 같아서
'그럼 이게 답인 거지..'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
유튜브가 이끄는 알고리즘, 인스타그램 피드와 릴스가 폐해인 걸 알아도 일할 땐 보다 도피처를 만들어내는 게 K-직장인이다. sns 피드를 보다가 우연찮게 '창업과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 '부업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뷰티 유투버, 월 2억 벌다.'는 먼 세상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진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군' 하며 그저 광고성 글에 못 미친다는 쪽에 한 표를 내 던지고 배아프기 전에 빠르게 넘겨버린다. 사회에 큰 기부를 한 창업자의 후원금을 보면서 '나도 후원받고 싶다. 난 언제쯤 큰돈을 만져볼 수 있을까?' 하며 무의식을 스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큰 무언가를 얻길 바란다.
도대체 사회생활이 뭔데?
영혼 없이 맞장구를 쳐준다던가, 사회성 장착 말투로 "어머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물어보는 게 습관이 됐다. '사회생활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힘들어도 꾹 참고 싫은 소리도 꾹 참고 배워야 한다. 원래 사회가 그래.'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 가면을 쓴다. 물론 사회생활은 해봐야 한다는 말을 나도 서슴없이 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이 오고 가며 나다울 수 없는 모습에 나조차도 어색할 때가 있다. 마치 엄마가 잔소리하다가 누군가에게 전화 오면 목소리를 바꾸며 '여보쎄용~' 하듯,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면을 쓴 게 내 본모습인지, 본래의 내 모습이 누구였는 지 까먹게 된다. 그 사이의 괴리감은 내겐 충돌의 위험이 가끔 있었다. 그럴 땐 '왜 나다울 수 없는 거지!' 하며 반감을 안으면서도 사회생활이니까,. 하며 지고 만다.
남들은 남의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나의 길에 대해 깊게 고찰했을 때부터였을까. 주변 사람들은 남의 일들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공과 사를 분리시키지 않으면 사람들은 점차 나를 잃어가면서 남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연예인 누구랑 누구 사귄다면서요?", "그 찌라시는 분명해."
연예인 이야기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내 인생이 당장 재미없어서 그나마 에피소드가 있는 남의 인생을 엿보며 왈가왈부하고 있다. 지겨웠다. 모든 게 이 상황이, 진취적인 사람이 없었다. 도태 밭이었고 나아갈 생각을 추호도 안 하는 곳이었다. 바람에 의해 살랑살랑 흔들어지는 갈대 같았다. 평화롭기 그지없다. 직장 동료들은 "지긋지긋한 출근이 너무 싫어."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싫다면 그보다 더 높은 곳은 지향하고 발전하던지,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면 그 싫은 소리를 하지 말던지. 발전할 생각조차 안 하면서 왜 그렇게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지 답답했다. 근데 이건 나에게 하는 말과도 같다. 내 위치가 마음에 안 든 채 있던 걸 보면 나도 무지 답답한 애다.
이렇게 살아도 뭐 나쁘진 않으니까.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뭘 하겠어.
BUT,
BUT과 IF절에 나의 이면성이 드러났다.
IF
만약에 안정의 밖의 맛을 볼 기회가 있다면 당신은 그 생을 살아보고 싶습니까? 네
모험을 해보고 싶나요? 네 용기만 있다면요.
누군가에게 나는 나름 전문직 타이틀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 사회 안에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은 안주에 묵인되어 다른 일을 꺼내보는 게 간지럽기까지 하다. 똑같은 일, 똑같은 업무로 n연차 이상 장기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 안정에서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날 생각조차 안 한다. 벌써 스물아홉이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을 안 해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 만약에 결심을 했을지언정 내가 하고 싶은 걸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발전할 생각도 물론 안 한 건 아니다. 다만 이 자격증을 어떻게 더 활용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내 스펙을 꺼내 거기에서 내 길을 맞춰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흐지부지하게 다시 나의 일에 의지를 하는 패턴을 그렸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의 흐름을 나 따위는 직접 경험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 다른 도전을 하는 것에 (부럽다 멋있다)를 내뱉는 쪽이었다.
나의 부족함은 선택과 결정에 취약하다는 것. 매번 흐지부지했고 이룬 경험이 없어서 도전에는 자신이 없던 것. 그러다 정말 의도치 않은 어느 날이었다. 누가 처음부터 잘하나 라는 깡으로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실행하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해보자'였다. 이 마인드가 공과 사를 분리하는 첫 시작이었다. 그래서 산을 가고 싶으면 바로 산을 갔고 한국사 자격증을 따자는 목표를 잡고 바로 실기를 접수했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여수와 목포를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해외가 가고 싶으면 숙소부터 바로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는 상황엔 주저 없이 실행했다. 병원이 내 전부가 되는 게 싫어서 발악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마음이라 써두겠다.
나만의 경험치를 쌓으려고 했다. 나를 위한 기본기를 다지려는 생각을 했다. 도전에도 익숙해졌어야 했구나.
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애구나. 해보고 싶다 하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바로 실행하면 되는 거였네. 더 이상 남의 말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나를 더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작은 것부터 도전하고 실천한다면
비로소 정말 도전해야 할 때 도전을 할 수 있다.
도전의 길이 꼭 원대한 게 아니어도 좋다.
뚱딴지같은 목표여도 된다.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나도 모르게 실행력, 자신감, 성취감의
경험치가 쌓여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