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렇게 살아가'라는 말, 이젠 엎어버리고 싶어

100살 인생에서 한 살쯤이라도

by 여기루


아, 스물아홉 살면서 오로지 내 의지대로 살아간 적이 있었나?

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안정과 일에 의지만 하고 있던 것, 그리고 무지한 채 열심히 살았다.


입 꾹 닫고 있으면 좋은 날이 올 줄 알았지.


너 엄마 말 듣고 후회한 적 있었니?

우리의 청소년기의 시절에 부모님과 어른들은 신이다. '어른들 말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착한 우리들은 그저 부모님들의 삶의 공식이 맞다 생각하고 짐을 덜어드리고자 시나리오대로 연극을 한다. 역할은 '나약한 우등생', 주연은 감히 욕심 내서도 안되고 조연이나 카메오로도 만족해야 한다. 남자는 공대, 전문직 여자는 보건, 전문직으로 가야 평생을 먹고 산다는 답 없는 전개, 무조건 취업이 잘 되는 직종을 선호하는 부모님 세대를 바탕으로 하는 희극을 물론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져 알지? 평생 감사하면서 살 거야.

나의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모님의 방향대로 흐르던 어린 스무 살의 나, 얼떨결에 전문직 자격증을 따서 취업을 하고 돌아봤을 땐 얼떨결에 스물아홉이었다. 꿈이란 실존할 수 없는 거라고 얼떨결에 기회가 와도, 자신이 없어 숨어다니다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던 창피한 정체성과 마주하게 된다. 어릴 땐 꿈을 쉽게 말할 수 있어서 이룰 수 없을 꿈까지도 당당히 말했다. 어른인 지금은 내 안에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만큼 현실에 안주하고 있단 걸 잘 알고 있었다. 얼떨결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꿈을 저버리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내 인생에 얼떨결은 후자인 경우다. 내 인생을 얼떨결의 후자 인생으로 정의하고 싶다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



엄마, 어른이 되어보니 똑같아. 아니 그보다 더 도태 중이야.

한 번 사는 인생 군더더기 없이 잘 살고 싶어서 신적인 어른들의 말을 경청했다. 근데 이 불편한 진실은 대한민국의 교육으로는 터득할 수 없는 범위가 확실하다. 틈새시장처럼 잘 살아가다 보면 터득할 수 있는 공략법이라도 누가 만들어줬으면 했다. 세상은 나의 일차원적 생각과는 다르게 무수히 다차원적이었고 빠르게 변화했다. 인생은 주관식이다. 취업 잘하는 전문직종을 가지면 부자가 되고 행복하다는 논문의 진위나 과학적 논거도 없는데 누구의 말을 믿어 온건가. 의심조차 안 하고 어른들의 말은 법일 거라는 억지가 만들어낸 합리화로 해를 자꾸 넘겼다. 나이가 들수록 전문적인 지식과 커리어보다 중요한 요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과정,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평탄한 길을 걷고 싶다며 포기를 택했다. 그래서 무책임한 말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겠다. 도전과는 막다른 길인 도태의 구렁텅이를 선택해버렸다. 생각보다 세상은 육체적인 노동이든 감정 노동자가 되든 감내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제일 나를 미치게 한 건 현실에 안주한 채 꿈에 대해 멀어지는 걸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세상에서만 살면 뭐해. 다차원 세상의 삶은 궁금하지 않니? 그 세계에서만 놀다 보면 도태의 끝을 달릴걸? 언젠간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거야.

그게 나는 바로 지금이었다.


이 세상에 착하고 바르고 안정적인 게 최고라는 말은 내 세상에서의 출구 없는 방어기제였다.
오로지 나만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버렸다.


나는 누군가의 선택과 말로 내 인생을 대신 살아달라고 있었다. 내 의지로 살아왔던 적이 없어서 의사 결정하는 게 확고하지 않고 서투른 20대를 보낸 것이다. 나 자신이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짐이 되기 싫어서 철이 일찍 든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은 정말 어른이 되지 못했던 것, 내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가족, 상대방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럴싸한 직업. 편하고 안정적인 직군에서 그저 무탈하게 이 삶을 살아가는 게 답인 줄 알았던 착한 아이 증후군. 오답인 줄 알았는데도 그냥 답안지를 제출해버리는 사람이었다. 다른 걸 품는 순간 모험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를 순 없으니까. 이대로 살아도 평범하게,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며 안 맞는 옷을 입고 불편한 느낌이 들어도 다들 조금씩은 감추고 살아간다 생각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내 인생엔 내가 없었다. '나는 가슴 뛰는 삶을 한 번이라도 살아봤나?' 이끌리던 삶만 살아왔으니 내 결정은 내 인생에서 중요치 않았다. 대학의 과를 고를 때에도, 안정적인 게 최고라는 어른들 말만 듣고 이게 답이구나 싶었다. 가난과 이어진다면 지분은 있을 것이다. 그저 착한 애, 일찍 취업을 해서 안정적이게 돈도 절반은 저축하면서 착하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애, 그게 나였다.


그렇게만 살아와서 '변화'라는 건 나와 별개의 단어였다. 혼자 중대한 결정을 해본 적이 없어서 좀 더 많이 이 세상을 산 엄마에게 또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기 바빴다. 내 인생의 답을 내려달라고 상대방의 말에 길을 애써 트고 있던 것이다. 훗날에 잘못될 때면 책임을 전가해서 탓하려고 하려던 이기적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최고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게 제일 좋은 삶이야.'


엄마는 잊을만하면 말을 했다. 나는 그렇게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일을 하게 됐다. 이게 답이라면 하루빨리 일을 하고 싶었다. 가난이 싫은 사람, 하루빨리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사람, 그럴싸한 명함을 내밀고 월급을 받을 수 있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 아닌 돈 버는 수단. 이게 살아가는 정의라면 착하게 바르게 이 순리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물아홉이 되어 뒤를 돌아보니 나는 이룬 게 없다. 이대로 내 인생이 정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 허탈하다. A4 한 장에 내 인생을 나열하면 한 장도 채 안될 것 같은 내 삶이 허무했다.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 쉬움이 이젠 부끄러웠다.


내년에 서른이라니! 20대를 이렇게 안정된 길로만,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해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을 하고 이룬 적이 있을까?' 나의 온전한 의지로 살았던 부분이 없었다는 걸 인지한 순간 내가 바라고자 하는 게 뭔지, 이 공허함이 무엇인 지, 마지막 즈음엔 발악을 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는 것으로 인지하는 건 나의 100퍼센트의 의지가 아니다.


많은 걸 포기하고 부끄럼 없이 살아왔는데 후엔 분노의 감정도 생겼다. 나눠보자면 내가 살아온 1막이 부정당한 느낌이 컸다.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세상은 꽤나 냉철했다. 이젠 결코 젊은 나이도 아닌데도 누가 툭 하고 건드리면 울먹거리는 유리 멘털의 소유자, 대표적인 쫄보,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게 되는데 평탄하기만 했던 인생에 작은 굴곡이 생겨도 휘청거리기 바쁘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한순간 무너지는 나약함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나'. '다 겪는 일들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왜 그래. 세상 살면 더 한 일도 겪어.' 어른들은 중간이 없었다. 내가 없던 내 인생에서 작은 일들은 크게 다가왔고 심지어 더한 일도 겪을 거라는 건 내겐 너무 무방비하고 무책임한 말이었다.


잘못 살아온 거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이젠 잘 살아왔다고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직감을 느낀 순간부터 무너짐의 작은 부스러기조차 아래로 흐르는 인정이었음을.


'다 이렇게 살아가.'라는 말은 이제 다 엎어버리고 싶다.

발버둥 쳐봤자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안다. 방법을 모르면 부딪혀봐야 안다.


그냥 미치면 바보가 되지만 꿈에 미치면 신화가 된다. 처음 이 책을 집는 순간 내게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샀다. 내가 한층, 한 발 더 내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매일 아침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려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한다.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자랑스럽고 기쁘기 때문이라는데, 그런 사람들은 표정에서 사랑스러움이 나타난다고 한다. 나는 따분한 일상적인 일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데 다른 누구는 한 가지에 열심히 꿈을 이루고 꿈을 펼치고 하루하루 설레며 살고 있다는 것에 내가 되게 무능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고리 따분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나는 지금 그냥 현실에 안주한 채 꿈에서 멀어지려 하는 것 같다. 내가 진짜 하고 싶던 일을 생각도, 도전도 하지 않고 마냥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게 난 이 책을 읽고 반성을 한다. 어쩌면 진정한 쫄보는 바로 나였을 지도 모른다. 나에게 자문자답해 보자.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고자 하는 건 정작 무엇인가? 도전을 왜 안 하는가? 지금이라도 나를 믿고 실천해 보자.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 - 가슴 뛰는 삶(강헌구, 2008)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