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호색
내가 두리뭉실하다고 느꼈던 건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작은 회의감까지 묻어버렸을 때였다.
또 다른 환경에서 적응을 한다는 건 꽤나 무서웠다.
그들과 다르면서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는 시간들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많고 그들 화 되어가는 내 모습이 나다움을 잊는 데에 한 몫했다. 나의 생활방식, 생각하는 방향, 보수적인 성향까지. 주변의 사람들 영향을 받고 그들처럼 행동하는 것.
회사와 사회가 주는 것들은 분명하게 다가온다.
사회생활은 족히 해봐야 한다는 건 서로 협력, 협동력, 사회성을 기르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며,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 주고 고객과 손님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야 하는 순간이 결국 나답지 못한 상황에 마주하게 해 준다.
사회에서는 꿋꿋한 어른이어야 하는 나는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이구아나와 같음을.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을 띠어야 하고 그 생활에 맞게끔 행동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지만 아직 이 사회에서는 그렇게 막사는 사람들이 흔치 않다.
이구아나는 두리뭉실해서 환경에 맞추어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구아나는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다. 균형 잡힌 먹이와 낮에는 30도 전후 밤에는 25도 전후의 온도를 맞춰야 하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양에 대해 꼼꼼히 신경을 써야 한다. 두리뭉실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예민한 것이었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몸에서부터 반응이 즉각 오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어기제. 세상이 나를 맞춰주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들을 맞추는 게 나으니까.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