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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코믹 May 26. 2022

제도의 중요성

무엇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가 (2)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앞서 <지리가 문명을 결정한다> 글에 따르면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 균, 쇠>라는 책을 통해 국가와 지역별 발전의 수준이 지리적 특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신석기 혁명 후 농경사회 정도를 설명할 수 있을 뿐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와 현재 국가들의 소득 격차를 이처럼 지리적 특징을 통해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금 아메리카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는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서 높은 문명을 이루었던 잉카와 마야가 있던 중남미의 페루나 멕시코가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이다. 또 산업혁명을 일구어 낸 영국은 13세기 전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뒤떨어진 국가 중 하나였다. <역사는 점진적이지 않았다> 글을 통해 산업혁명 이전의 삶은 비슷하게 가난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스페인이 잉카 문명을 파괴했을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소득은 잉카 사람들보다 많아야 2배 정도나 높았을 것이다. 스페인이 잉카를 식민지로 만들고 후에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 시절에 자연스럽게 세계 곳곳으로는 동식물 종들이 퍼져 나갔을 것이며 유라시아에만 있었던 기술들이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잉카 제국이 있었던 페루와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의 국민소득은 유럽을 빠르게 따라잡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국가들 간의 차이는 오히려 점점 커졌다. 오늘날 에스파냐의 국민소득은 페루보다 4~5배가량 높다. 또한 오늘날에는 남한과 북한처럼 국경을 가운데 두고 소득이 몇 배나 차이나는 경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의 차이는 동식물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뜨거운 경제학자 중 한 분이신 MIT 대학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와 시카고 대학교 정치학자이신 제임스 로빈슨 교수님은 제도(institution)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두 분의 책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 amazon.com, yes24.com>




 저자들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마주 보고 있는 노갈레스(Nogales) 시의 사례로 시작한다. 미국의 애리조나 주에 있는 노갈레스 시와 멕시코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 시는 시의 이름도 같다. 두 도시의 주민들은 인종이나 배경도 비슷하다. 문화도 비슷하며 지리나 기후도 비슷하고 그곳에서 유행하는 질병들까지 같다. 하지만 이 두 도시의 모습은 사이에 담장 하나를 두고 너무나도 다르다. 먼저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노갈레스 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멕시코의 노갈레스 시보다 3배 정도 소득이 높다.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훌륭하다. 청소년들은 거의 모두 학교에서 공부하고 대부분의 성인들은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다. 그곳에서는 정부로부터 치안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날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두려움에 빠져서 살지 않는다. 지방 정부의 정치인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바꿀 수 있고 그들이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느낀다. 반면 담장 건너편 멕시코의 노갈레스에서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도 나쁠뿐더러 부패한 법과 정치인들 때문에 범죄가 끊이질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사업을 위해 허가를 받으려면 뒷돈을 주어야 하고 돈을 모았더라도 강도를 당할 위험이 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믿기는 힘들어 보인다.


 경제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축적되어야 하고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자본이 축적되기 위해서는 내가 모은 재산이 누군가에게 몰수되거나 도둑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 내가 모험을 하고 발명을 했을 때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중요하다.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을 했는데 누군가 내가 일군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누가 나서서 도전을 할까. 또 사업을 위해 약속을 하고 계약을 했지만 마음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선뜻 투자를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들의 재산을 인정하고 지켜주며 계약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여기에 저자들은 포용적(inclusive) 경제 제도를 강조한다.




포용적(inclusive) 정치 제도는 포용적(inclusive) 경제 제도를 만든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치는 착취적이었다.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나머지 다수를 착취했으며 그들의 사유 재산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다. 귀족과 평민들 그리고 노비들이 존재했고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하고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시민의 모두를 포함하는 포용적 정치 제도가 아닌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착취하는 착취적 정치 제도는 착취적인 경제 제도를 낳았다. 인구의 대다수 혹은 일부는 세금을 전부 부담해야 했고 일손이 필요하다면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훌륭한 능력이 있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꿈을 펼칠 수 없다.

 반면 시민 구성원 모두를 포함하는 포용적인 정치 제도는 포용적인 경제 제도를 만들어냈다. 정치권력이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자 자연스럽게 점점 많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포용적인 경제 제도 아래에서는 누구나 능력이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세상에서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다. 가령 와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인정받고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에디슨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차별받지 않고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다. 시리아 난민의 아들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신분이나 출신의 제한을 받지 않고 아이폰을 내놓을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 착취적인 정치, 경제 제도 하에서 살았더라면 이러한 위대한 발명품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아는 발명가는 존재하지 않고 그들은 누군가를 위해 농사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포용적인 경제 제도의 힘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유와 자율성, 무수한 도전과 실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더 일하라고 명령할 수 있고 제한적이지만 조금 더 열심히 생산적이게 일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창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창의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창의는 명령이나 강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자율성이 주어지고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왜 영국인가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싹트게 되었다. 왜 하필 중국이나 이집트가 아니라 영국이었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그 이유는 시민 혁명 등을 통해 영국이 거의 가장 먼저 정치적으로 포용적인 제도를 만들어 냈고 포용적인 경제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7~18세기 보다 앞서 16세기에 명예혁명이 일어나 정치적으로 권력이 분산되고 안정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영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다시 우연적인 요소가 많았다. 과거 유럽은 봉건 사회였다. 봉건제도는 다수의 소작농으로부터 극소수 영주의 배를 불리는 지극히 착취적인 제도였다. 그런데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인구의 상당수가 사망해 버리자 노동력이 부족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주인들이 곤란해지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이를 틈타서 높은 임금 상승을 요구하며 의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점차 봉건제가 붕괴하기 시작했고 포용적인 노동시장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면 동시에 흑사병이 발생했던 동유럽의 상황은 사뭇 달랐다. 비슷하게 인구가 줄어들어 노동력이 귀해졌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오히려 서유럽보다 넓은 땅을 가졌던 동유럽의 영주들은 자신의 땅을 확대해 나가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 짜냈다. 14세기 전만 해도 거의 비슷한 모습을 지녔던 두 지역은 17세기에 와서는 너무나도 달라졌다. 서유럽 국가 사람들은 자유로웠지만 동유럽 사람들은 더욱 강화된 봉건제도 하에서 살게 되었다. 고작 차이라고는 과거 동유럽의 소작농들의 결집이 서유럽보다 조금 약했다는 거 정도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연을 거듭하면서 이 작은 차이는 역사에서 걷잡을 수 없게 커져버렸다.

결국 국가의 운명은 수많은 우연과 사건들의 결합으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포용적 경제 제도는 포용적 정치 제도를 강화하는 선의 순환을 이끌고 착취적 경제 제도는 다시 착취적 정치 제도를 견고히 하는 악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낸다.


포용적인 경제 제도가 이루어져 사회의 구성원들이 경제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면 이들로부터 다시 권력을 빼앗아 오기는 힘들어진다. 그리고 사회에 골고루 퍼지게 된 권력은 이처럼 포용적인 정치 제도를 강화하고 이는 다시 포용적인 경제 제도가 착취적으로 바뀌게 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한번 포용적이 시작한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성들과 흑인들에게까지 권력이 점점 확대되기 시작했다. 포용적인 정치 제도 하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포용적인 경제, 정치 제도를 위협하는 일들을 널리 대중들에게 퍼다 날랐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소수의 자본가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담합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위협했는데 언론들이 이를 조명하고 권력을 가진 시민들의 요구로 셔먼 반독점법이 제정되면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이러한 강도적인 경제 트러스트들을 공격하고 포용적인 제도를 지켜냈다.

 반면 한번 착취적인 제도가 뿌리 박히면 이를 뿌리 뽑기는 대단히 어렵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착취적인 정치 제도하에 만들어진 착취적 경제 제도는 다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킨다. 그렇게 다시 착취적인 정치 제도를 견고화한다.  




착취적인 경제제도는 어떻게 기술의 수용을 막는가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 기술은 발명하고 창조할 수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빈곤 국가들로 눈을 돌려 본다면 산업화의 물결이 닿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착취적인 제도를 가진 국가들은 기술의 수용을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 사회의 권력가들이 기술이 수용되고 사람들의 경제력에 변화가 생긴다면 권력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들은 기술의 전파를 막는다. 과거 명나라의 황실은 외국과의 무역과 탐험이 권력에 변화를 일으킬까 두려워 1433년 마지막 항해를 끝으로 해외무역을 금지시켰다. 이것은 1567년까지 이어졌다.

혁명과 혁신의 확산을 두려워했던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는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에 하나였던 증기 기관 철도의 건설을 반대했다. 그는 기존의 착취적인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했다. 증기 기관 철도를 건설하려고 하자 "혁명이 우리나라에 까지 번지려면 어쩔라고 그래, 절대로 안돼"라고 했다고 한다. 증기 기관 철도의 건설이 금지되었기에 그곳에서 처음 만들어진 철도는 그 위에서 마차를 달리게 했다. 또 혹여나 후에 증기 기관차가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철도를 경사와 모퉁이가 많게 건설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까지도 철 생산을 효율성이 한참 떨어지는 목탄에 절반 이상을 의존하는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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