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 (1)
달이 지나 2월이 되었다. 우리는 문화과학궁전을 보기위해 바르샤바로 향하였다. 바르샤바는 우리 과의 2명이 살다온 곳이었다. 나중에 바르샤바 이야기를 해주니 이들은 매우 반가워하였다. 바르샤바 역에서 내리자마자 문화과학궁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화과학궁전은 스탈린이 폴-쏘 우호를 기념하여 30만의 인부를 파견해 지어준 건물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모방하였다는 이 건물은 인민궁전과는 다른 독특한 풍취를 지니고 있었다. 진한 공산주의 풍취를 풍기고 있었다.
바르샤바에서야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한국인은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더럽게 추웠지만 한국인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만족했다. 한국인은 커녕 여행자도 없는 듯 했다. 호스텔에 여행자는 우리 두 사람이 다였다. 부쿠레슈티에도 한국인이 거의 없었으나 안타깝게도 인민궁전에서 한국인 여대생 3명을 만났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살을 에는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장을 풀자 마자 바르샤바 구시가지와 문화과학궁전을 구경하였다. 문화과학궁전 근처에는 스케이트장이 있었다.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스케이트장이 생각났다. 바르샤바는 2차 세계대전당시 건물의 85%가 박살이 난 아픔이 있는 도시다. 폴란드 자체가 독일, 소련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어 여러차례 분할과 점령을 당했던 나란데,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아픔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현재 바르샤바는 서울 뺨치는 대도시로 거듭났다. 바르샤바 역사 주변은 메리어트호텔을 비롯한 마천루로 가득 차있고, 신세계거리는 정말 신세계였다. 폭탄으로 산산이 부서졌던 구시가지도 다 복구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세계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곳에서는 연주자가 피아노 연주도 직접 하였다. 한국에서는 김밥천국정도의 음식점을 주로 갔던 나인 터라, 드라마에서만 보던 레스토랑의 피아노 연주는 당혹스러웠다. 음식도 맛있었고, 맥주도 훌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