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이언니 Nov 18. 2023

EP.2 백혈병을 이겨내도록 해준 존재

집 떠나 병원에 있으면 그리운 것이 많아진다. 가장 먼저 별다를 것 없는 집이 그립다. 또 흔하디 흔한 바람이나 햇빛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진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 와중에 매일 매일 생각나는 존재는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


병원마다 그리고 환자의 병명과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경우는 항암치료 스케줄이 짧으면 3주, 길면 한 달(때때로 두 달)이 걸렸다. 맨 처음 항암치료는 두 달이 걸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항암제 투여는 3일이나, 4일 정도지만 그 뒤로 혈액수치가 바닥을 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리고 다시 자연스럽게 상승할 때까지 기다리는 그 모든 기간이 한 달 또는 두 달인거다. 


첫 치료 때는 항암제 투여 이후에도 혈액수치가 잘 내려가지도 않았고, 한 달이 되어서야 수치가 조금씩 내려갔다. 그러던 중에 열이 났다. 열이 잡히지 않고 39도까지 올랐다. 균 감염으로 인해 열이 오른다는 진단을 받고, 2인실로 격리되었다. 이후 열이 내려가고, 혈액수치가 다시 올라와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이게 두 달 동안 있었던 일이다.


39도까지 열이 펄펄 끓었던 기간의 기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화장실 벽에 희미하게 있는 아무것도 아닌 흔적이 마치 유령처럼 보였던 것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요한게 하나 더 있다. 직접적인 기억은 아니지만 간병 해주던 엄마가 알려준 것. 하루는 내가 허공으로 팔을 뻗어 '밤아, 밤아'하고 중얼거렸다는 거다.


밤이는 우리집 막냉이다(막내보다 막냉이라고 부르는게 더 어울리는 귀여운 강아지다.). 사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처음 항암치료가 끝나고서 강아지와 분리해야 한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경고가 있었다. 특히, 강아지 털로 인해 감염이 될 경우 열이 날 수 있다는 친절하지만 무시무시한 안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이와 함께하기를 택했다. 사실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것에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걸 감수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밤이는 이미 유기된 경험이 있다. 그런 밤이에게 또 다시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 욕심일 수도 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밤이가 잘 있는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밤이 입장에서는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것도 모를거고, 마냥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밤이와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면역력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손 소독도 계속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코로나19 전부터 이미 마스크를 생활화 하고 있었다...!


드디어 퇴원 후 밤이를 두 달만에 보는 날. 주차장에서 밤이를 만났다. 밤이는 나에게 마음이 상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냄새만 맡고 거의 '노룩' 패스를 선사했다. 그리고 집에서 쉬는 동안에도 밤이는 통 내 곁에 오지 않았다. 집에 함께 있어도 멀찍이 떨어져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 밤이가 나를 보면 얼마나 반가워할까? 아니면 원망스러워서 나를 향해 막 짖을까?' 하고 온갖 상상을 했는데... 현실은 그저 바라봄이라니. 


2차 항암을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가는 날, 밤이를 집에 두고 나오면서 펑펑 울었다. 내 이유가 어떻든 밤이에게는 또 다시 이별이기 때문이다. 항암치료를 7차까지 하면서 밤이와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가 힘들 때마다 꿈꾸는 미래가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간절한 미래는 밤이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나가서 밤이와 산책을 다니고, 낮잠을 자며 하루를 함께 보내는 그 평범한 일이 간절했다. 


그렇게 나에게 밤이라는 작은 강아지는 무시무시한 백혈병을 이겨내도록 해준 큰 존재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밤이는 내 옆에서 담요 위에 몸을 누이고 잠을 잔다. 밤이가 자는 모습을 보며 글을 쓰는 이 순간은 온전히 밤이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이면 13살이 되는 우리 막냉이 밤. 우리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자.


(*) 치료 중에는 주치의 선생님 처방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강아지를 향한 걱정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 보다, 함께하기를 택한다면 위생에 조금 더 엄격해져야한다. 항암치료 후에는 면역력이 낮아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다른 가족에게 부탁하는 방법을 고려하길 바란다.


*이 글을 보고,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남깁니다.

급성골수성백혈병 투병기는 매주 토요일 밤마다 작성할 예정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EP.1 내가 백혈구를 신경쓰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