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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Mar 22. 2024

비누의 애착 물통  

오해와 사건의 전말


“어머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1호에겐 애착 노란 담요, 2호에게 애착 코끼리 베개..

올겨울 우리 3호 비누에겐 애착 온수물통이 있었다.


비누의 방은 거실이다.

아파트지만 올해처럼 북극한파가 찾아온 거실은 밤사이 커튼을 치고 보일러가 돌아가도 싸늘했다.

올해 겨울의 비누는 유난히 추위를 탔다.

하지만 침대에 올려주면 밤새 히융히융 울며 불편해했다.

걱정 많은 비누는 집 가까운 곳에 마실 물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했다.

눈이 잘 안 보여서 더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전기담요도 마땅치 않았고, 고민 끝에 뜨거운 물통을 넣어주었더니 안성맞춤이었다.

Fashy 보온 물통은 몇 년째 사용하지만 안전하게 잠금이 잘 되었다.

걱정이 되어 면으로 된 얇은 이불로 한 번 더 돌돌 감싸서 넣어주면 적당하게 따뜻함을 유지하고 밤새 훈훈하게 해 주었다.

봄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용 중이며 물론 가끔 확인을 한다.

비누는 물통을 다루는 발기술이 점점 늘어 물통이 놓인 자리가 따뜻해지면 현란한 발기술로 획 한 번에 뒤집고 따뜻해진 쪽에 누워서 잠을 잔다.

아무튼 똑똑하긴...

올 겨우내 우리는 할무니 비누의 집에 온수보일러를 놓아주었다.

비누의 애착 물통

어느 날,

아침이 되어 온수를 갈아주려고 들어내는데 감싸두었던 면이불이 온통 축축했다.

물통의 뚜껑은 꽉 잠겨 빈틈이 없었다. 방석도 축축해서 들어내니 집의 바닥이 흥건했다.

밤을 지난 배변패드가 깨끗한 것을 보자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확인을 하지 않고, 확신을 해버렸다.

비누를 씻기고, 방석과 이불, 집을 깨끗이 빨고 물통도 새 커버로 갈아주었다.

 ‘어쩌다 그럴 수 있지...’

낮시간동안 배변 패드를 잘 사용할 때마다 아기 때처럼 오버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잘했어~~!”


이틀 뒤 아침, 또다시 같은 현상이 생겼다.

예민한 후각을 자랑하는 내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는데 소변냄새 같지 않았다.

남편은 그 냄새가 맞다며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니 나도 불안해져서 이틀 만에 두 번째이니 애견 기저귀를 검색했다.

‘설마 비누가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설마..’

거실소파에서 밤잠을 자며 지켜보았으나 이상해 보이는 행동이 없었다.

무엇보다 깔끔쟁이인 비누가 냄새나고 축축한 소변 위에서 계속 자고 있었다는 것이 의심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5일이 지난 아침 비누의 방석이 또 축축해졌다.

‘이젠 정말 기저귀를 사야겠다’

심란한 마음으로 집을 치워주고 있는데 남편이 소리를 친다.


“물통이 샌다!!!!!”


꽉 누르니 아주 작은 구멍에서 찍 하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뻗쳐 나왔다.

우린 멋진 분수의 물줄기를 보듯 기뻐 박수를 치며 웃었다.

비누가 이리저리 굴리다가 작은 구멍이 났고, 아마도 구멍 난 면이 아래로 향한 날에 물방울이 새어 나왔던 것 같다.

새로운 물통으로 갈아주었고, 지금까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백내장으로 시작된 비누에 대한 과잉 걱정이 그만 비누를 오해해 버린 것이었다.

“거봐! 내가 이상하다고 했지!”

“언제?”

“휴, 정말 다행이야 “


선입견, 편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비누야, 정말 미안하다~“


저절로 튀어나온 말을 외치고 보니 선거철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다.

모든 이가 조롱을 했던 그때 그 사람도 어쩌면 딸에게 미안했던 진심이 어딘가에 들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두둔하는건 아니다.

‘범인은 물통이었는데 엄만 바보! 비뚤어질테야!  흑흑...’
“억울했다고요!!!”  항의해야하는데 따끈한 물통을 껴안고 있으니 자꾸 눈이 감겨요~


신기하게도 우리 집 자식인 1호, 2호, 3호가 비슷한 성향을 갖었다.

몸에 치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1호와 2호는 엄마 품을 일찍 벗어나 따로 잠을 잤는데 3호 비누도 마찬가지였다.

비누가 어릴 적엔 가끔 큰 아이가 데리고 잠을 자기도 했지만 주로 혼자서 집에서 자는 걸 좋아했다.

침대나 소파에 올려주면 사람 곁에 붙지 않고, 발 밑으로 가거나 떨어져 누웠다.

사람에게 폭 안겨있는 걸 좋아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웠다.  

어쩌면 내 성미를 닮은 깍쟁이 같은 녀석들..   


작년부터 비누는 불안해 보이거나 산책 중 힘들어 보일 때 안아주면 가만히 몸을 맡긴다.  

개모차를 사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미루기로 했다.   

비누를 안고 있는 느낌이 좋아서 이 느낌을 즐겨보려 한다.

안고 걸으면 비누의 심장소리가 차분해진다.

나의 심장소리도 차분해진다.


우리 3호, 막내 비누야

어릴 때 못해준 만큼 많이 안아줄게

오랫동안 안겨있어 주라



* 반려생활의 에티켓을 지킵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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