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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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도시락
(*수능 : 대학 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
자식 둘. 딱 두 번의 수능 도시락을 만들었다.
만들어본 수많은 도시락 중 난이도 최상 1위는 수능 도시락이다.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 도시락 순위로도 단연 1위다.
고 3의 시기에 이르러 내가 알던 자식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밥을 해주는 일뿐이다.
스트레스가 만연하자 첫째는 먹는 것에 집착을 했고, 둘째는 무엇을 해주어도 돌을 씹는 것처럼 괴로워했다.
공부하는 기계, 로봇 같은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무던히 지나간 사춘기 때 보다 더 힘들었다.
끝으로 갈수록 비정상적으로 변하는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며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혼자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나 역시 비정상적이 되는 것 같았다.
말은 나눌수록 소통이 안되어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것이 필요했다.
입을 다물고 밥만 해주다가 어느 날 밤엔가 밥상을 차려주고 밖으로 뛰쳐나가 셀 수 없이 아파트를 탑돌이 하듯 걸었다.
엄마의 숨겨두었던 마음은 수능 도시락에 대한 걱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의 시험날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 설레는 마음까지도 드는 것 같았다.
엄마들은 중요한 입시정보처럼 서로 도시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나 맛도 필요도 못 느끼는 공부하는 기계 같은 로봇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기란 매우 어려웠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딱 알맞은 시험날의 도시락을 만드는 건 미션과도 같다.
아이들이 급식의 세대이다 보니 도시락은 엄마와 아이에게 모두 낯선 일이기도 하다.
어떤 도시락통을 사용하고, 무엇을 반찬으로 챙겨야 하는지 심지어 예비 도시락을 만들어 먹여보는 연습까지도 한다고 했다.
수능시험이 12년간의 목적지였던 것처럼 달려온 시간의 끝에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피날레이자 애정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능 도시락을 꼭 엄마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빠, 또 다른 가족, 김밥집 이모님, 편의점의 도시락, 컵라면이어도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여건이 안되어 손수 수능 도시락을 못 만드는 엄마도 의기소침해지거나 미안함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든 엄마는 자신의 살점을 떼어내는 똑같은 양의 산고를 겪었다. 아이를 위해 애간장을 태웠으며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달픈 노력을 해야 했다.
누가 어떤 역할에 비중을 둔 것에 따라 더 잘했고, 못했음을 가릴 수는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잘 컸다면 그것으로 부모의 역할은 충분하며 자식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보이는 표현을 못한다고 해서 자식 사랑을 추호도 의심할 순 없다.
도시락을 싸 줄 여건이 안된다면 든든하고 안전한 아이가 좋아하는 도시락을 사주면 된다.
사랑을 듬뿍 담고, 당당하게!
부모를 알아보고 나를 향하여 방글방글 아이가 웃어주면 누운 소가 벌떡 일어나듯 어디선가 힘이 솟아나는 기적의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부모의 노고에 대한 자식의 보답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취업을 앞둔 아이가 한없이 작아져있을 때 말했다.
“엄마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 넌 이미 백일 때 충분한 기쁨을 내게 줬어. 너를 위한 것을 생각해. “
수능 시험이란 대학을 향한 관문일 뿐이며 끝이 아닌 시작을 의미한다.
수능 이후 대학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조금 못마땅하기도 하고, 대학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한 사람의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다. 첫 돌을 지나 기어 다니기를 끝내고, 홀로 우뚝 서서 걷는 것처럼 감동이며 기적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격려하고, 축복해 주면 된다.
바로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엄마이고, 부모다.
수능 도시락은 보이는 무엇이 들어있음이 중요치 않고, 보이지 않는 마음과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절대로 재수는 안 해!”
“후회 없겠어? “
“아니! 안 해. 재수 공부하기 싫어!”
“그래라..”
이유와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아이들이 각각 한 번씩 두 번의 수능 도시락만 신경을 쓰게 해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학원도 한번 안 다니고, 한 번에 대학에 합격해 준 기특함을 이 기회에 자랑도 한번 해본다.
여자의 출산 이야기, 남자의 군대 이야기처럼 자식의 수능에 대한 기억은 할 말이 많아 서론이 길어졌다.
이제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 수능 도시락 속을 소개해 보자.
* 도시락 준비할 때의 엄마의 유의점. (주관적인 생각)
1. 수능도시락에 대해 아이에게 묻지 말자. (물으면 물릴 수 있음!)
1. 엄마에게 입력된 정보와 모든 촉을 동원하여 내 아이 맞춤 도시락을 챙기자.
1. 보온 도시락은 보온성과 밀폐력이 좋고, (엄마의 존재처럼) 컴팩트하지만 알찬 것으로 준비한다.
1. 콩나물, 미역을 재료로 사용치 말고, 당일 아침에 계란을 깨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계란 요리를 할 경우 전날 깨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1. 수능날 아침의 긴장 상태로 서두르다가 그릇을 깨지 않도록 조심하자.
1. 모든 음식은 너무 뜨거울 때 닫으면 뚜껑이 열리지 않아 짜증이 나고, 너무 힘을 주다가 쏟을 수도 있다. (엄마 탓의 위험이 감지됨!)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겐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에겐 유의할 점은 모두 1 순위다.
누구는 뭘 그런 걸 신경 쓰냐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의 간절함과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천하만신이 돕기를 바라며 근거 없는 미신에 까지 솔깃해진다. (“엄마는 그래.”)
예민이 최고조에 이른 후 해소가 되면 낯선 아이가 다시 순한 양 같이 착한 내 아이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건 언제나 신기한 기적과도 같다.
지금까지 잘해온 엄마들이여,
끝까지 폭발하지 말고,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자!
(만일 이다음에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오면 이 시기에 생겼다고 보면 된다.)
* 첫째의 수능 도시락.
특성 : 한식 밥상 좋아함. 나물반찬과 닭고기를 좋아함. 유제품 싫어함. 배고픈 거 싫어함.
밥 : 충분히 잘 불린 흰쌀로 밥을 짓는다. 밥을 담고 한 김 나간 후에 뚜껑을 닫는다.
국 : 배추된장국. 멸치로 육수를 내고, 평소보다 작게 썬 배추가 부드러울 때까지 푹 끓였다. 따뜻 정도로 식었을 때 국통에 반정도만 담는다.
반찬 : 장조림. 메추리알은 목에 걸릴까 싶어 계란으로 하고, 닭가슴살을 사용하여 따로 짜지 않게 장조림을 하여 넉넉히 담는다.
채소 반찬 : 느타리버섯나물과 새우젓으로 간하여 볶은 호박볶음을 한입 정도씩으로 조금 넣어주었다.
김치 : 기름은 적게, 고운 고춧가루도 조금 넣어 볶음김치로 만들어 부담 없고, 개운함을 추가한다.
조미김 한팩. 생수 한 병. 귤 한 개. 간식용 낱개 포장된 초콜릿.
비상용 소화제와 지사제 한알씩.
* 둘째의 수능 도시락.
특성 : 일품요리를 좋아함. 소시지 좋아함. 귀찮은 거 싫어함. 김 싫어함. 채소 별로임.
메뉴상 보온 도시락이 필요 없었고, 작은 죽통 한 개에 국을 담았다.
밥 : 우엉 유부초밥. 전날 우엉을 심심하게 조려 두었다가 밥에 다져 넣고, 시판 유부초밥으로 2인분쯤으로 넉넉히 만들어 넣었다.
국 : 어묵탕. 멸치 육수에 무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다. 어묵은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 잘라 따뜻할 정도로 식었을 때 죽통에 담았다.
반찬 : 쏘야. 비엔나소시지와 양파, 피망을 아주 조금 넣고, 케첩, 굴소스와 핫소스를 조금 넣어 만든다.
(소고기 넣은 볶음 고추장을 만들었으나 고민 끝에 넣지 않았다. 매실 무침도 생략.)
생수 한 병. 귤 한 개. 간식용 낱개 포장된 초콜릿.
비상용 소화제와 지사제 한알씩.
참 다르고, 성향이 확실한 도시락이다.
두 아이는 모두 아침 메뉴로는 맑은 소고기 뭇국에 밥을 먹고 갔다.
복장은 허리춤이 편안한 바지를 챙겨 입었고, 수능을 보는 교실은 더울 정도로 따뜻하다니 벗기 쉬운 옷을 입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문 앞 후배들의 환호는 적당히 긴장을 풀어주며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수능 추위는 심하지 않았으나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나에겐 으슬으슬한 한기가 들었다.
어둑한 시간 진이 빠진 듯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아이가 저 멀리서 보인다.
어둡지만 한눈에 내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오만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마음이 찌릿했다.
“수고했어. 정말. “
집에 돌아와 예상 답안을 맞히고, 저녁밥은 배가 안 고프다며 거의 먹지를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 도시락에 대한 대한 후기는 없으니 도시락 통을 열어본다.
“반 밖에 안 먹었네..” 혼잣말을 한다.
오랜만에 아이 방의 불이 일찍 꺼졌다.
수능시험날이란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이 생생한 날의 기억은 10년도 넘은 일이다.
시험을 마치고도 심장이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학했고,
또다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취업이라는 심장이 쫄깃거리는 시험과정을 거쳐야 했다.
자식의 모든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부분에서 엄마는 언제나 심장과 간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자신의 새끼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어미새가 죽자 배를 열어보니 간이 쪼그라들어 있었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품에서 떠났고, 이젠 생일이란 특별한 날에 집에서 미역국 한 끼를 먹이고 싶지만 쉽지 않다.
“뭐 하루쯤 굶어도 돼!”
“미역국 안 먹어도 돼. 직장인들 다들 그러고 살아. 괜찮아. “
라고 먹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그래...”
그 말에 내색하지 못하지만 섭섭해지고, 애간장이 녹은 마음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모두 그렇게 내리 짝사랑하며 사는 거지..
“엄마! 반찬 해주지 마. 안 가져갈 거야. 힘드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했던 그 말이 효가 아닌 불효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자식을 키우다 보니 이제야 알겠다.
네가 생일 미역국을 못 먹고 다니는 것에 마음이 처량해져.
“엄마는 그래.”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행복해져.
”엄마는 그래. “
내 존재의 의미, 살아있을 이유임이 너여서 기운이 생겨.
“엄마는 그래.”
네가 지금 몰라도 괜찮아. 이다음에 알게 될 거야.
“엄마도 그랬어.”
모든 부모님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올해 수능날에 혹한 없이 날씨가 좋길 바라며 노력만큼의 결과를 얻길 바랍니다.
“수저! 절대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