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는 살 안 쪄요.
떡볶이
나는 떡볶이를 싫어한다.
들큰한 고추장물에 담긴 떡의 맛이 이상하다.
어릴 적엔 길거리 음식이 흔치 않았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돈을 주고 무언가 사 먹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떡볶이에 대한 시기별 단상은 다음과 같다.
친구 희정이는 떡볶이를 거의 매일 사 먹었다.
국민학교 앞 문방구 문 앞쪽엔 크고 넓은 떡볶이 판이 있었다. 문방구는 떡볶이 맛집이다.
아침에 검은색이었던 빈 주물 떡볶이 판은 하교시간이 되면 빨간 국물과 떡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10원어치 주세요.”
하면 문방구 아주머니가 나와 커다란 떡볶이 판에서 넓적한 뒤집게로 쓰윽하고 다섯 가닥을 친구 앞으로 밀어줬다.
아줌마가 기분 좋은 날은 떡볶이의 개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개당 2원 꼴인 떡은 낭창하게 휘어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1원짜리 동전은 아이들의 돼지 저금통을 채우는 소중한 화폐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희정이는 작은 포크로 콕콕 찍어 참 맛나게도 먹었고, 친구가 떡볶이를 다 먹을 때까지 나는 그냥 옆에 서있었다.
한겨울 스케이트장에서 몇 가닥의 떡볶이를 먹어 봤을 뿐 떡볶이의 맛을 모른 채 국민학교 시절을 끝냈다.
떡볶이는 희정이가 먹는 간식. 그뿐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짝꿍을 하게 된 민이의 집은 신당동이었다.
어느 날 민이의 집을 놀러 갔을 때 즉석 떡볶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납작한 냄비에 수북하게 담긴 각종의 생생한 재료들이 눈앞에서 보글보글 끓어 자작해지면 불을 줄이고,
꼬들한 라면을 먼저 먹고 난 후 다른 것들을 먹는 거라고 했다.
민이는 익숙한 듯 떡볶이를 맛있게 만드는 유려한 손목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빨간 국물 속의 쫄깃한 쫄면과 야끼만두 사리는 신세계와 같았다.
오호! 이런 신기한 떡볶이라니 지금으로 치자면 고급스러운 철판 요리 같은 느낌이었다.
즉석 떡볶이는 마음에 들었지만 여전히 들큰한 국물의 매력을 모르는 그저 재밌는 이벤트성 음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떡볶이는 특이했다.
신설된 학교 주변엔 주택가일 뿐 분식점이 없었다.
떡볶이란 유리창의 글씨를 보고 들어간 음식점은 밥집이거나 저녁엔 술도 파는 식당이었던 것 같다.
그 가게의 떡볶이는 지금 생각해 보면 볶아낸 바특한 기름 떡볶이였던 것 같다.
맵기보단 짭짤했고, 고춧가루가 붙어있었으며 많이 들어있던 양배추가 아주 달콤했다.
통깨가 솔솔 뿌려져서 타원형의 접시에 담아 나왔다. (사실 나는 이 특이한 떡볶이도 몇 개 먹지 않았다.)
꽤 젊은 아저씨가 주인이었는데 그 아저씨는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미안하게도 열창하는 노래와 상관없이 우리는 떡볶이 접시를 앞에 두고 수다 삼매경이었다.
그 당시 우린 4 총사였다. 베카와 나 그리고 숙과 영.
지금은 머리가 허예진 베카와 나만 남아 떡볶이를 먹으러 다닌다.
숙과 영도 어딘가에서 떡볶이를 먹고 다닐 것만 같다.
내게 학창 시절의 떡볶이는 먹는 음식이라기 보단 친구와의 추억이다.
대학시절에 만난 남자 친구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남자 친구의 집에 놀러 가니 어머니는 납작한 전골냄비에 채소와 비엔나소시지를 넣은 떡볶이를 한가득 만들어 주셨다.
남의 집에서 음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것은 아니었으니 떡볶이가 싫지만 참고 먹었다.
참고 먹은 덕분이었는지 몇 년 후 남자 친구와 어머니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되었다.
그때 떡볶이에 비엔나소시지가 들어있었다고 말하면 남편은 아니라며 이상하다고 한다. 당시에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비엔나소시지가 들어있는 떡볶이의 비주얼이 무척 인상적이었으니 내 기억이 분명히 맞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의 여자 친구가 오니 더 화려하게 또는 내게 더 잘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라 믿는다.
결혼 후 언제나 남편의 퇴근은 늦었다. 그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그때의 나는 좋아하고 맛있는 걸 해주고 싶었고, 그것은 떡볶이였다.
그런데 나는 떡볶이를 만들 줄도 무슨 맛을 내야 하는 줄도 몰랐다.
핫한 마음으로 만든 나의 떡볶이는 언제나 한강처럼 물이 많은 니맛도 내 맛도 아닌 떡볶이였다. 그래도 계속 만들고, 그는 맛있다고 해줬다.
“싱거워? 짜? 달아? 안 달아?”
“양배추 넣을까? 양파 넣을까?”
“만두는 그냥 넣을까? 구워 넣을까?”
“삶은 계란은 넣을까? 말까?”
“면은? 라면? 쫄면?”
모든 것이 완전히 그의 입맛에 딱 맞는 원 앤 온리 커스텀(맞춤) 떡볶이를 매일 함께 만들어 먹었다.
헤어질 걱정 없이 좋은 사람과 둘만의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떡볶이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늦은 밤의 데이트가 좋았다.
나는 서른 살이 다 되어서 그가 좋아하는 떡볶이가 좋아졌고, 어느새 그를 위한 떡볶이 만들기의 달인이 되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나는 늦게 배운 떡볶이가 너무 맛있었다.
(부작용 : 떡볶이도 남편도 살이 안 쪘다. 살은 나만 찐다.)
영양 과잉이 되고, 건강을 위한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탄수화물의 집약체라는 오명을 쓴 떡볶이지만 여전히 건재한다.
떡볶이는 매콤 달콤한 사랑이고, 추억이기 때문일 것 같다.
둘이 먹는 저녁밥은 가끔 떡볶이가 메뉴가 된다.
베카의 엄마가 담가서 주신 빨갛고 예쁜 고추장을 풀고, 유부를 넣은 떡볶이를 만들었다.
“역시 떡볶이는 고추장이 중요해!”
참을 수 없다. 떡볶이에 소주도 한잔 거든다.
각종 맛있는 떡볶이 집이 너무 많고, 배달이 되지만 남편이 말한다.
“네가 만든 떡볶이가 제일 맛있어”
구시렁구시렁...
“마누라도 늙었어. 웬만하면 사 먹자고~”
흰머리를 맞대고 앉은 영감에 대한 핫한 마음은 미적지근해졌지만 온기가 남아있다.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핫한 떡볶이를 좋아한다.
순수한 빠알간 떡볶이
가무잡잡 짜장 떡볶이
깻잎과 양배추를 듬뿍 넣은 채소 떡볶이
산이 평야가 되는 즉석 떡볶이
오징어와 새우를 넣어 해물 떡볶이
로제 소스로 만든 로제 떡볶이
무엇을 품어도 떡볶이는 핫한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