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의 추억
충무김밥 이야기
부모님은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냇가와 바닷가로 길고 짧은 여행을 데리고 다니셨다.
그중 충무와 설악해수욕장에 대한 기억은 매우 생생하다. 둘 다 비슷한 1,2년 상간의 여행이다.
무척 즐거웠고, 해맑게 행복했던 기억의 끝자락에 놓여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큰 밀짚모자를 쓴 행복한 엄마가 웃고 있었고, 아버지는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고추장을 풀어 찌개를 끓이셨다. 스틸컷처럼 떠오르는 장면은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다.
엄마의 모자 아래 그늘에 대한 것도 아버지의 부글부글 끓던 찌개 속사정도 모른 채 나는 두 여행을 생각하면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것만 같다.
아홉 살의 여름. 충무라고 불리던 시절에 통영을 처음 갔었다.
큰고모가 사시는 충무는 참 멀고도 멀었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낯선 큰 고모부, 초록빛 바닷물 색을 가진 남해 바다와 충무김밥이다.
경상도 분이라곤 믿기지 않는 순하고 조용한 말소리를 가지셨고, 선하게 웃는 인상이셨던 큰 고모부는 충무분이셨고, 경찰관이셨다.
기억되는 날은 우리가 한산도를 가려고 했는지 비진도를 가려했는지 행선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배가 출발하기 전 사람들이 모두 타기를 기다리는데 선장아저씨가 여길 보라며 잔멸치를 바다에 확 뿌리니 반짝거리는 멸치 떼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엄마는 무척 놀라시며 내게 귓속말을 했다. “멸치에게 멸치를 뿌리다니 너무 잔인한 것 같아. “
한바탕 멸치쇼를 보여주더니 잠시 후 어디론가 가는 페리호 배가 출발했다.
배가 안정적인 상태가 되자 고모부가 종이로 둘둘만 무언가를 꺼내셨다.
“충무에서 배를 타면 이걸 무봐야지”
종이를 펼치니 맨밥을 말아놓은 작은 김밥과 빨간 오징어와 무김치가 들어 있었다. 이쑤시개와 함께..
아주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모습의 김밥은 맛없어 보였다.
“이래 하는기다. 함 보래이“
콕콕콕 김밥과 오징어, 무김치를 찍어 한입에 넣어주셨다.
싫단 말을 할 사이도 없이 한가득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으니 할 수 없이 우물우물 씹었다. 세상에나 꿀맛!!
분명 한 보따리를 사 오셨는데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비진도였는지 한산도였는지 장소가 전혀 기억이 안나는 건 아마도 충무 김밥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 분명하다.
그날 밤엔 숙소에서도 내가 수상한 김밥만 먹겠다고 했고, 큰 고모부께서 밤중에 더 사다 주셨다고 했다. (그 밤의 일은 내 기억엔 없다.)
다음 날 집으로 출발하려니 고모부께서 또 김밥 뭉치를 차에 밀어 넣으셨다. 큰 고모부의 그 선한 웃는 모습이 생각난다.
“희한하네. 야야 서울애기가 그기 그렇게 맛있드나?”
김밥은 뱃사람들이 바다로 일을 나갈 때 가져가는 싸구려 요깃거리라고 했다. 부둣가에서 아줌마들이 빨간 다라이에 담아 팔고 있었다.
그때는 명칭 없는 그냥 김밥이었고, 내겐 충무에서만 파는 김밥이었다.
언젠가부터 서울 명동에 가면 충무김밥을 팔고 있는 것이 신기했으나 내가 아는 그 맛과는 천지차이였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팔고, 충무(통영)로부터 전국배달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몇 년 전 통영과 거제를 가면서 사 먹어보니 명동의 맛보다는 그런대로 맛이 있었지만 역시 기억 속의 맛은 아니었다.
출렁출렁 흔들리는 충무의 배를 타고 먹어야 그 맛일까?
아, 생각 난 그날의 또 한 가지 별미가 있었다.
충무김밥과 함께 은행꼬지처럼 열개쯤 쪼르륵 끼운 말린 홍합 꼬지가 있었다. 적당히 간이 맞고, 고소한 맛이 아주 맛이 좋았다. 홍합꼬지는 이후 어디에서도 먹는 것은 고사하고 본 적도 없다.
얼마 전 마트에서 말린 홍합을 사서 입에 넣어 보았다.
그 여행 이후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처럼 비릿하고 딱딱하기만 했다.
긴 긴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난 큰 고모부는 여전히 낯설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이상했던 30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큰 고모부와 고모는 삼 남매를 훌륭하게 키우셨다고 한다.
여전히 꼿꼿한 모습이었고, 세월이 묻은 희끗한 머리에 어떻게 사셨는지 알 것 같은 선한 웃음을 갖고 계셨다.
신기한 서울애기였던 내 모습을 기억하실까?
그분께도 고운 추억의 날이었을까?
나에게 그날의 기억과 맛이 아주 훌륭하고 선명하다.
훅 들어온 충무김밥의 짜릿한 맛과 다정했던 큰 고모부의 모습이 어제의 일처럼 선하게 그려진다.
무언가 체에 거르면 쭉정이들이 사라지고 고운 것만 남는다.
지지고 볶는 삶을 살다 보면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돌덩이도 생기고, 지저분한 부스러기도 붙이며 시간이 흐른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시간이 흐르는 것은 체에 거르는 일과도 같다. 인생의 시계가 오래 흐를수록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해진 몸에서 붙은 검불들이 떨어지고 고운 추억만 남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년 뒤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부모님과의 추억 속에는 거친 것이 많이 들어있었다. 30년 전의 부모님의 이혼이 가져온 먼지 쌓인 감정이 드러나며 고통스러웠던 두 번의 장례식이 지나고, 이제 내가 사는 세상에 부모님이 안 계신다. 혼자 남은 세상은 나쁜 것들로 가득 찼고, 급기야는 나를 해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격렬한 체질과도 같았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엄마가 차려준 마지막 밥상이 떠오르고, 아버지와 단둘이 먹었던 단 한 번의 밥상이 떠오르며 순수한 고운 감정이 떠올랐다.
’ 이제 고운 것만 남았나 보네..‘
지금도 내 인생은 체질이 계속되고 있다. 마음속에 오래 묵은 것부터 차례로 고운 것들이 남고 있다.
좋은 맛은 고운 추억과 함께 하여 더 향긋한 일품요리가 된다.
이제 다시 충무김밥의 맛이 살아나고 있다.
* 충무 (忠武)
지명. 경상남도에 있던 시. 1995년 1월 행정 구역 개편 때에 통영군과 통합하여 통영시가 신설되면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