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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Dec 05. 2024

울면. 꿈이 이루어질까?

뜨끈한 꿈의 맛.


입이 쓰고 몸이 으슬으슬하면

마음이 쓸쓸해지면

울고 싶으면

나는 울면이 먹고 싶어 진다.             


울면은 걸쭉한 국물이 뜨끈함을 꽁꽁 머금고 있어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하여 몸이 더워진다.

하얗고 쫄깃한 솔방울모양의 갑오징어와 각종의 해산물, 밤색의 목이버섯과 초록의 청경채가 들어있다.

부드러운 계란이 들은 점성이 있는 하얀 국물 속에서 풍성한 재료들이 마치 보석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울면을 잘하는 곳을 찾기 어렵고, 요즘은 울면이 메뉴에 들어있는 중국집도 별로 없다.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어서 그런 걸까?   

하얗고 꾸밈없는 것이 더 만들기 어려운 까닭일까?                 


처음 울면을 먹은 날을 기억한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처음으로 갔던 명동의 미용실이었다. 미용실의 원장님은 이모의 학창 시절 친구였고, 엄마와 이모들의 단골 미용실이었다.    

솜씨 좋은 엄마는 어릴 적 집에서 내 머리를 손수 잘라주었고, 예쁘게 땋아주기도 하고, 그 시절에도 한 세트에 색색별로 다른 동물 모양으로 한쌍씩 들어있는 미국산 구디스 핀을 구해 꽂아주었다. 예민한 사춘기가 되자 내 머리를 엄마의 단골 미용실에 데리고 다니며 잘라주셨다.   

월요일이나 또는 불시에 복장단속 선생님이 자를 들고 맞추어보며 검사를 하는 그깟 귀밑 2Cm란 학교 규정에 맞추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   

어찌 보면 모두 똑같아 보이는 개성 없는 스타일로 단순히 길이를 자르는 일인데 사춘기 딸의 마음을 걱정하셨던 것 같다.

엄마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몽글거리며 뜨끈해진다.


원장님은 엄마가 가면 무척 반가워했다.      

“우리 둘째 언니 왔네. 어떻게 지냈수? “

”언니 머리 신경 써서 잘해드려라”    

많은 미용사들을 배출하는 명동의 대표미용실이었다. 예쁘고 세련된 5번 언니가 내 머리를 잘라주었다. 당시에 수십 명의 미용사 중 앞번호일수록 실력 좋은 미용사였다. 엄마가 펌을 하는 동안이면 원장 아줌마는 먼저 머리를 다 자른 나를 불러 원장실로 데리고 가셨다. 미스코리아도 배출하는 미용실이었는데 나에겐 다른 걸 제안하셨다. (아마 내가 너무 어려서였을거야....)        


“그사이야, 울면 먹어볼래? 진짜 맛있어”

“울면이요?”

이름도 우습고, 모양새도 흥미롭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배달이 왔다.

철가방 속에서 뜨끈뜨끈한 하얀 국물이 넘칠 것처럼 들어있는 그릇이 나왔다.

“앗! 뜨거워!”  

처음 먹어보는 울면은 우동도 아닌 것이 아주 뜨거운 맛으로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꽂혔다. 그렇다고 굳이 생각나거나 찾아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중화요리는 짜장면에 탕수육이 최고지!”




결혼을 한 후 몸이 아플 때. 특히 마음이 아플 때는 더욱 울면이 생각났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마음이 없는 날 근처에 먹을 곳이 없는 걸 알면서도 말을 공중에 던진다.

“울면 먹고 싶다..”

“어디 아프려고 그러나? 칼국수집이라도 갈까?”

30년 만에 아주 가끔은 무심한 남편이 눈치를 탑재한 대답을 한다. 그렇지만 몸 아픈 것만 알지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럭저럭 마음이 상하진 않은 조금의 위로가 된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큰소리를 낼 때 내 마음이 더욱 불편해 짐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나도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서로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어쩌면 남편도 뜨끈한 울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집 정리하고 나서 허리가 아파 한참을 고생했다. 허리가 아프니 팔, 다리에 힘을 줬는지 삭신이 쑤시며 몸살이 났다.

기대가 없지만 어김없이 울면이 생각난다.

“사 먹을 곳도 없는데 오늘은 울면을 만들어 먹을까? “

“꾀병이지? “

“아니야. 아픈 거 맞다고!”

대부분은 이렇게 마음이 오락가락하며 사는 것이 평범한 나의 일상이다.


“드라이브하고, 울면 한 그릇 먹고 오자!”

“응? 뭐라고 했어?”

꿈속의 남편이다. 그럼 그렇지.

30년간 이루어지지 않은 아직도 환상 같은 꿈을 꾸어본다.

꿈은 무엇이든 한껏 호기로워야 제 맛인 거다.


뜨끈한 엄마의 품속에서 처럼
제 멋대로 꿈을 꾸자.

온전한 제 맛대로의 꿈을 꾸자.
원하는 세상이 오는 꿈을..

혹시
울면 꿈이 이루어질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 일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어렵지 않은 아주 약간의 진심을 보여줄 때 큰 위로의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 별거 아닌 마음으로 누군가는 실낱같은 희망을 느끼며 살만한 세상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보통의 사람이 가지는 마음이다.  

때론 본인의 고통을 감내하며 남의 마음을 우선으로 돌보는 일을 자처하는 특별한 사람을 본다.  

자신은 그런 사람임을 자처하고 나서 공표하는 자리에 스스로 들어서는 위대한 사람을 본다.  

사람들은 그 고통의 자리에 스스로 오른 용기 있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어쩌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참아내기 위한 실낱같은 위로를 얻기 위해 모두가 이해해 주는 자리에 오른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의 고귀함을 망가뜨리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며칠간 그 위대한 자리를 이용해 고통이 아닌 쾌락을 누리고, 탐욕을 부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 인간을 본다.  

후안무치로 살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며 마지막 자존심이다.

자만심이 아닌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모습을 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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