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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ug 18. 2024

Epilogue (에필로그)

정원가의 열두 달


마지막 잎새 같은 연재의 끝날이군요.

오래전부터 공들여 쓰던 식물에 대한 글의 가제는 <책상 위 정원을 거닐다>였습니다.

한 회, 한 회 쓰다 보니 정원이라고 하기엔 나의 식물에 대한 상식이 소소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는 식물> 이 되었습니다. 오래 정 들이던 문구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24화의 제목으로 붙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책상 위가 아닌 엄마의 마당만 한 작은 마당이 있어 <나의 정원을 거닐다> 란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식물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화분을 한 개씩 들어 올려 가까이 들여다 보고, 향기를 맡고, 손으로 만져봅니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너무너무 궁금하거든요.

한참 동안 식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름을 부르듯 들여다봅니다.


몬스테라, 버킨, 제라늄과 아이들, 프리지아

엄마의 아몬드 페페, 흰꽃 나도 샤프란,  대엽풍란, 십이지권

장미허브, 하트 다육, 꽃기린, 일일초, 스킨답서스, 스타트 필름,

블루버드와 포인세티아, 칼란테아 진저,

청양, 로벨리아...


매일 들여다보면 식물들은 매일 변화하고 있고, 매일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식물에게 한 톨의 주저도 없이 내어준 나의 작은 책상.

그 위 작은 식물정원에서는 계절이 느껴지고, 곱고 부드러우며 묵직하기도 하고, 까칠하고 가볍기도 한 흙의 기분 좋은 촉감을 알게 됩니다.

손바닥만큼의 흙마당을 갖고 싶지만 요즘 세상은 작은 마당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당은커녕 베란다도 없이 작은 책상 위의 식물들을 키우지만 저는 지친 마음을 힐링하고, 하루를 지낼 힘을 얻습니다.

식물은 소리 없이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며 희망과 삶의 지혜를 알려줍니다.

수천수만 년을 살아와서일까요?

식물은 오랜 친구 같고, 현명한 어른 같습니다.


3000원짜리 화분 두 개를 사면 분명히 하나는 살아남더군요.

지금 나에게 맞는 책상만 한 아니면 화분 한 개의 작은 초록의 정원을 가지세요.

그 작은 하나의 초록 식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집중할 때 자작나무 숲의 피톤치드 향을 느끼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경험을 꼭 하시길 바랍니다.

식물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저처럼요..


마지막으로 식물 키우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나의 식물은 내가 제일 잘 압니다.

각각의 집에 따른 환경이 다르므로 저 사람이 저랬다고 따라 하고, 이 사람이 이렇게 키운다고 따라 해 봐야 오히려 식물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내가 가진 식물들을 매일 수시로 들여다보는 약간의 관심이 식물을 잘 키우기에 대한 해답입니다.

분명히 식물은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몇 곱절로 돌려줍니다.

“제 말을 믿어보세요”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아는 나의 식물을 믿어보세요”


세상엔 알고 싶은 정말 많은 식물들이 있습니다. 저는 꾸준히 아는 식물을 늘려가다가 언젠가 <아는 식물 2>를 연재할 수 있기도 기대합니다. 오래 걸리겠지만..

그때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는 예쁜 꽃처럼 반갑게 맞아주세요.


“식물을 사는데 무슨 돈을 써? “
라고 말하지 마세요.

“식물만 키우면 죽어서 안 키워!”
라고 말하지 마세요.


식물이란 멋진 친구를 곁에 두시길 바랍니다.

오늘 아침의 기대주




연재의 끝에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벨트를 찾다가 의자의 작은 사잇공간을 통해 뒷자리에 앉은 분이 읽는 책이 한 2~3초의 순간 단번에 눈에 들어왔고, 잊을세라 얼른 메모장에 제목을 적었습니다.

정원가의 열두 달!

책상 위의 나의 정원을 아침마다 들여다보고 매일 만지고 걱정하는 미숙한 식집사인 저에게   <정원가의 열두 달> 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제목인지 집으로 돌아와 저자의 정보도 내용도 전혀 모른 채 광속으로 주문을 하고 제 손안에 책이 쥐어졌습니다.


제 손에 들어온 작은 책은

친환경적일 것 같은 표지에 초록잎의 그림이 참 예뻤고, 무엇보다 놀란 건 1929년도에 첫 출판된 책이었어요.

100년 전의 책이라니 얼마나 고루할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한 기대감도 들더군요.

동생인 카렐 차페크의 위트 있으며 철학적인 글과 형인 요제프 차페크의 귀엽고 유머러스한 그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100년 전의 책이라곤 믿을 수 없는 글과 그림의 세련됨이 느껴졌고, 끝까지 순식간에 읽혔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흙을 만지고, 비를 맞으며 정원에 있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번역본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원작자가 직접 선택한 단어는 어떤 것이고, 줄 바꿈 하나까지도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가 저는 늘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정원가의 열두 달>은 훌륭한 번역본 책이었고, 여느 식물 키우기의 정보가 담긴 101 서적은 아님이란 것도 말씀드립니다.

좋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아끼는 책 한 권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저의 <아는 식물>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원가의 열두 달

글. 카렐 차페크 Karel Capek 1890-1938

그림. 요제프 차페크 Josef  Capek 1887-1945

오리지널 판본은 1929년 프라하에서 출판되었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Karel Capek






*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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