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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ug 09. 2024

명목이 없지만 나는 꽃을 산다

꽃을 주고받는 향기로운 마음


< 꽃 이야기 1 >


나는 꽃을 받는 것도 꽃을 선물로 주는 것도 좋아한다.


좋은 날에 선물하려고 꽃을 사러 갈 때 무척 설렌다. 선물하기 위해선 값을 아끼지 않고, 예쁜 꽃을 마음껏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히 예쁘기만한 꽃을 들고, 받을 사람을 향해 가는 동안 꽃을 받고 좋아할 모습을 기대하며 향기로운 상상을 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꽃을 주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꽃을 선물하는 모든 과정이 참 행복하다.


젊은 나는 철이 없어 꽃을 선물 받는 일을 너무 좋아했다.

남자친구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이유가 있어도 없어도 시도 때도 없이 꽃을 안겨주었다.

한송이.. 한 다발..

내 방엔 항상 그의 꽃이 있었다.

(그가 차비가 없어 걸어서 집에 돌아갔다는 사실을 안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시절의 우린 길 위에서 만났다.

“종로서적 앞에서 만나자” “학교 정문에서 만나자”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만나자 “

그렇게 약속을 정했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므로 한번 약속을 정하면 한 시간도 두 시간도 길 위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어딘가의 문 앞에 꽃을 든 남자가 서있었고,

어딘가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여자 앞으로 멀대처럼 키 큰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헐레벌떡 뛰며 나타나기도 했다.

비 오는 수요일엔 어김없이 빨간 장미 한 송이를 품에 넣고 왔다.

부끄럼을 참으며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의 꽃다발을 안겨주던 그 청년은 어디로 갔을까?


꽃다발 청년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라고 불려도 될 나이의 아저씨가 되어 옆에서 잔소리다발을 던진다.

세월이 흐름을 여기저기에서 느끼고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선물로 준 꽃의 덕을 보며 살고 있다.(내 생각)

그때, 우린 꽃을 주고받으며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40년전을 추억한다.


‘나는 내 아이들이 꽃을 주고받는 기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때의 우리처럼..


미국의 마트 입구엔 꽃을 파는 코너가 있어 언제나 꽃구경을 실컷 하고, 기분 좋게 장보기를 시작했다.

마트의 꽃은 언제나 예쁘고 싱싱했으며 한국의 꽃값보다 훨씬 저렴했지만 꽃을 사는건 사치였으므로 꽃을 눈요기만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화려한 포장재를 이용한 세련된 한국의 꽃다발과는 다름이 있었다.

다양한 꽃의 종류와 색을 맞추지 않은 듯 알록달록하게 배합하여 투명한 화병에 물꽂이 상태로 판매하거나 신문지에 둘둘 감싸서 주는데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언제였던가?

우린 금방이라도 부서질 바싹 마른 꽃잎처럼 메마르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장을 보러간 마트에서 예쁜 꽃을 보고 서있었다.

‘남편이 꽃을 참 많이 사주었지. 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내게 꽃을 계속 사주었을까?‘

문득 내가 한 번도 남편에게 꽃을 사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쑥 입에서 영어가 튀어 나왔다.

“Good mornig Mam, give me a rose. Could you gift-wrap it?”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내 영어가 틀렸나? 뭐가 이상한가?’

‘안산다고 할까?’

어쨌든 벌어진 일이었고, 안산다기엔 더 복잡한 말을 해야 하니 그냥 두었다.

장미 한 송이를 포장하는데 시간이 십여분이 걸렸다.

‘앗차! 여긴 한국이 아니지. 내가 왜 한송이를 굳이 선물포장을 해 달랬을까?’

아주머니의 노고가 들어간 장미 한 송이를 건네니 바스락바스락 건조한 남편이 깜짝 놀라며 스쳐 지나가듯 찰나의 미소를 지었다.

그날, 남편은 왜 이런데 돈을 썼냐고 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위해 처음 산 꽃 한 송이를 음료병에 꽂아 책상 모퉁이에 놓아주었다.

‘꽃을 받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지금도 겨울인 내 생일이면 남편은 “겨울 꽃 값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렇게 자부하지만 요즘은 남편대신 아이들과 친구들이 내게 꽃을 선물해 준다.

큰아이는 이직하는 동료에게, 퇴직하는 상사에게 작은 선물과 함께 꽃을 선물한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대학의 기타 동아리에서 공연을 할 때 꽃을 준비한다고 한다.

두 아이들이 이성의 친구에게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쁨의 의미를 알고 있으니 미루어 짐작은 한다.

“너희들 이다음에 배우자감 인사 시킬 때 홍삼 그런 거 말고, 꽃다발 선물하면 엄만 끝난다 “ 고 말했다. 진심이다.


꽃을 받으면 쑥스러워 하지만 그(녀)는 좋아한다.

꽃을 선물할 때 받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마음은 그 보다 더 행복해진다.

혹시 소중한 사람이 나에게 꽃을 선물한다면

“난 꽃 싫어해. 치울 때 귀찮고 돈 아깝더라 “ 보다는 “와! 정말 예쁘다. 너무 좋아”라고 말해주자.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백배는 더 행복해진다.


‘나의 바람대로 내 아이들이 꽃을 주고받는 기쁨을 느끼며 말랑한 삶을 살아감에 대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좋아. 고마워~”
“쑤&써니언니. 언제나 고마워요”

< 꽃 이야기 2 >


대부분의 꽃은 좋은 날과 함께 하지만..

나는 절에서 지낸 엄마의 49제 동안 매주 꽃을 준비해 엄마의 사진 옆에 놓았다.

엄마의 사진은 영정 사진으로 찍은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의 사진에서 골라 확대를 했었다.

장례식장의 단상위엔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도 올렸었다.

문상 오신 분들은 사진 앞에 한참을 머물며 엄마를 생각하셨다.

꽃 옆의 사진속 엄마는 내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너무 예뻤다.


나에겐 단골 꽃집이 있었다.

아주 가까운 아파트 입구에 2년 전 생긴 꽃집은 나를 위한 곳 같았다.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주세요”

언제나 날짜만 얘기하면 말이 필요 없이 마음에 꼭 드는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던

랄라 플레르 꽃집

그 꽃집 주인을 보면 꼭 케이크 가게에서 손님을 맞던 어설픈 내 모습이 떠올려졌다.

늘 보게되는 꽃집이 아닌 아뜰리에인가 싶은 곳이었는데 마치 내 케익가게 같았다.


49제 동안의 꽃바구니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사이 : 제일 작은 걸로 해주세요..

랄라꽃쌤 : 그럼 개당 3만 5천이면 되겠어요.

매번 꽃을 받을때 마다 혹시 우리가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나 싶었다.

그사이 : 이건  그 값이 아닌데요..

랄라꽃쌤 : 맞아요. 강습할 때 남아서 좀 더 넣은 거니까 걱정 마세요. 늦겠어요. 얼른 가세요.


마지막 꽃바구니를 찾으러 가니 꽃선생님은 나에게 위로의 꽃을 선물로 주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랄라 꽃집에선 조화를 다루지 않았지만 엄마의 새집을 장식할 조화도 특별히 만들어주셨다.

내 슬픔과 상실의 아픔을 꽃으로 달래주었다.

전부터 단골이었지만 매주 수요일아침에 만나며 각별한 정이 생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꽃선생님과 나는 비슷한 성향으로 서로 많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지나는 길에 새로 나온 딸기를 두팩 사서 나눠 드리거나 먼 곳에 사 오던 내가 먹을 특별한 쿠키를 전하기도 했다.

랄라 꽃집의 꽃은 아이들의 초중고 졸업식을 빛내주었고, 엄마의 49제를 함께 해주고 4년 만에 꽃집을 그만두셨다.


어쩌면 그분에겐 나는 한 명의 손님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꽃으로 나눈 진득한 우정의 경험이었다.

내게 마음을 나눠주었던 꽃선생님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란다.


첫주엔 특별히 보리수를 넣어주셨고, 나는 너무 하얗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지나치게 튀지않는 고운 옅은색 꽃을 넣어 꽃바구니를 만들어주셨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 꽃...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어버이날의 꽃
나의 슬픔을 충분히 위로해준 선물, (흰 작약과 보랏빛 히야신스 )
졸업한 아이가 선생님을 뵈러 간다니 딱 알맞는 작은 꽃병꽂이. 마음을 나눠주었던 고품격 랄라 꽃집

이후 꽃이 꼭 필요한 날에 여러 곳에 주문을 해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꽃은 너무 비쌌고, 뭔가 잔뜩 겉옷에만 신경 쓴 것 같은 꽃다발을 만나고 있다.

나는 다시 꽃집을 찾아 헤매는 꽃집 유목민이 되었다. 그 또한 설렘과 기대이다.

꽃다발이 마음에 안들지만 꽃은 한결같이 향기롭고 예쁘다.



< 꽃 이야기 3 >


꽃다발 청년은 요즘 꽃이 너무 비싸다고 잔소리 다발을 늘어놓지만 특별한 날에는 아이들이 꼭 꽃을 선물해 준다.

하지만

나는 꽃에 대한 갈증이 느껴져 나를 위한 꽃을 사러 꽃도매 시장으로 간다.

오후시간에 꽃을 사러 가면 도매 시장의 늦은 시간엔 사람들이 이미 좋은 것을 고르고 남은 시간이라 맘에 드는 꽃이 별로 없지만 더 저렴하다.

얼마 안 남았어도 갖가지의 예쁜 꽃들이 섞여있는 곳에선 특출 나게 더 예쁘게 보이는 꽃이 없어서  고민이 된다.

하지만 집에 오면 분명히 모두 예쁠 텐데 이것저것 남아있는 꽃들 중에서 신중하게 한참을 고른다. (고른다기보단 꽃 놀이중이다.)

상인들은 소매판매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 빨리 골랐으면 하는 눈치로 빗자루질을 한다.

나는 꽃을 고르고, 그에 맞는 초록의 소재도 고른다.  때론 초록 소재가 되는 식물이 더 비싸기도 하지만 초록이 받쳐줘야 꽃은 더 아름답게 돋보인다.


작년 여름날 갑자기 꽃시장에 가고 싶었다.

늦은 시간에 가서인지 너무 뜨거운 여름이어서인지 꽃의 상태가 아주 맘에 들진 않았고, 꽃값이 많이 올랐다.

안 오른 것이 없는 세상이니 당연하겠지만 꽃을 사는 것이 아깝지 않던 내 마음에 부담이 되는 가격이라 망설여졌고,

힘들게 고르고 값을 치르는데 평소에 사던 나의 마지노선이 25000원 인데 15000원이 더 추가되었다.

‘헉!!! (마음속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지불을 끝낸 후 받아 든 신문지에 싸인 한아름의 꽃다발을 안고 꽃시장의 계단을 오른다.

장미향기와 초록소재에서 뿜어내는 유칼립투스 향기를 맡는 순간

고민했던 마음은 사르르 녹고, 기분이 좋아지며 발걸음이 가벼워 둥실둥실 떠오를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종일 묶여 다발채 마르고 있던 꽃에 물을 올려주려 끈을 풀고, 아래쪽 잎을 정리하여 버킷에 푹 꽂아둔다.

결국 끝을 향해가는 절화지만 빨리 물을 공급하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는 작업이다.

(컨디셔닝 작업이라고 한다)

예전엔 버킷에 꽂아 다용도실에 두었는데 요즘은 거실 한가운데에 둔다.

꽃꽂이를 한 것도 아닌 자연스러움과 서서히 힘이 생기는 과정을 보는 것은 참 신기하고 예쁘다.

절화인 꽃이 이미 죽은 식물인데 마치 살아나는 것 같다. 실제로 간혹 화병 속에서 뿌리를 내려 살아나는 식물도 있다.

살려내기엔 실패했지만 초록 소재인 불로초가 뿌리를 내려 흙에 심기도 했었다.

버킷을 채운 꽃의 양이 좀 아쉬워 보이지만 아침이 되면 밤새 물이 올라 꽃의 부피가 많이 늘어나며 행복의 지수가 올라간다.

이렇게도 맞춰보고, 저렇게도 맞춰보고 조물조물 어설프게 꽃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지만

역시 배움이 없는 내 꽃꽂이 솜씨에 좌절하며 겨우 미완성 같은 꽃꽂이 작품이 나온다.


신문지에 쌓인 꽃을 보면 마음이 급하다
꽃을 서둘러 버킷에서 넣어준다
일단 물에 담그고 하나씩 묶어놓은 끈을 풀어준다


꽃을 고르는 시간

꽃을 버킷에 꽂아 물을 올리는 시간

나름의 꽃꽂이 작품화를 하는 시간

시든 꽃을 정리하며 점점 작은 화병꽂이가 되다가 마지막에 화병을 깨끗이 씻어두는 시간


나는 일주일에서 열흘정도의 이 모든 꽃놀이 시간에서 행복을 느끼고 힐링을 한다.

딱딱하게 경직되려는 마음이 말랑해진다.

​한결같은 내 생각엔..

언제나 꽃값을 지불하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의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복을 전해준다.


마지막 순간에
내게로 왔던 모든 식물에게 경의를 표한다.

언제나 미완성 작품 1
언제나 미완성 작품 2
언제나 미완성 작품 3
점점 작아지다가..
화려했던 꽃의 여운...


* 선물용 꽃다발을 주문할 때의 팁! *

받는 이의 연령이 어떻든 꽃은 언제나 화사하고, 밝은 색으로 주문한다.

꽃만 말고, 어울리는 초록의 소재를 꼭 넣어달라고 한다. (고급스러운 꽃다발의 비결)


* 화병꽂이 팁 *

꽃병 입구에 투명 테이프로 우물 정(井) 처럼 붙이면 초보자도 예쁜 꽃꽂이를 할수 있다.


꽃을 사는 마음은  
명목이 없는 것이 아니다.

꽃을 사는 마음은
따뜻하고 향기로와지려는
마음의 노력이다.




* 향기와 함께 마음을 나누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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