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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살림하며 읽는 독서 일기

by 그사이
< 정원가의 열두 달 >
카펠 차페크 글/요제프 차페크 그림


정원가의 열두 달. 1일.

더운 여름의 아침 일과는 바쁘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그사이 나는 국도 끓여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욕실 청소도 해야 한다.

오전을 바쁘게 보내야만 무더운 한 낮을 편히 쉴 수가 있다.

집안일을 끝내고, 동물병원으로 서둘러 나선다. 너무 더워서인지 동물병원 쉬는 날인걸 깜빡했다. 아, 이런..

백내장 안약을 못 사고 허탈했으나 이왕 나왔으니 조금 더 걸어가 맛집 콩국물을 사들고 돌아왔는데 꽤 멀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것 같다.

장마는 끝난 것인지 멈춘 것인지 모르겠다.

장마는 장마답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는데 해마다 변하는 날씨가 무척 걱정스럽다.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일주일째 붙잡고 있다. 역시나 고전 중이어서 지루해진 나는 책장 앞을 어슬렁 거리다가 친구 같은 책을 꺼내고 마룻바닥에 누웠다 앉았다 하며 읽는다. 순식간에 책은 50페이지를 넘어간다.

“어떻게 그래?”

“사실 나는 이 책. N번째 독서야. “

모두가 좋아할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백 년이 된 이 이야기가 읽고 또 읽어도 나는 참 재밌다.


시작은 이렇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 카렐 차페크-

1월을 대표하는 식물은 무엇일까. 바로 유리창에 피어나는 성에꽃이다.
정원가의 열두 달. p.39
나는 줄곧 식물이 씨앗 아래쪽으로 뿌리처럼 자라 내려가거나, 씨앗 위쪽을 향해 감자줄기처럼 자라 오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식물은 씨앗 아랫부분에서 움튼 다음, 씨앗을 모자처럼 머리에 쓴 채 고개를 밀어 올린다. 머리에 엄마를 이고 자라는 모습을 그려보라. 자연의 신비다.
정원가의 열두 달. p.47


정원가의 열두 달. 2일.

수은주가 35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날이 무더우니 몇 개 안 되는 화분들이 시름시름한다. 힘들겠다.

기상이변은 더욱 악화가 되고 이르게 갑자기 덥고, 갑자기 추워지곤 한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징그럽게 열정적인 러브버그들은 하루밖에 못 산다고 한다. 줄어든 꿀벌에 대해 지구의 생태계를 걱정했는데 그 역할을 러브버그들이 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생태계유지를 위한 그 상위 계층의 천적이 그들을 해쳐도 되는지 아직 모르기에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해충이 아니고 익충이라고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많은 것은 무섭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덥고 습한 올여름에 내 식물들은 얼마나 살아남을까?

만약 정원가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진화해 온 생물이라며 무척추동물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정원가에게 등뼈란 하등 쓸모가 없으니. 이따금 “아이고, 허리야!” 하며 몸을 일으킬 때 말고 등뼈가 쓰이는 데가 어디 있을까?
정원가의 열두 달. p.57
공감되는 자세들..


정원가의 열두 달. 3일.

먹는 반찬은 날씨에 따라 유행을 탄다.

모두 좋아하는 반찬인 콩나물을 요즘 왜 자꾸 버리게 될까?

오늘 저녁은 나물 말고 콩나물 밥을 해야겠다. 밥은 밥솥이 할 테니 짭조름하고 청양고추를 팍팍 썰어 넣어 칼칼한 양념장의 킥이면 끝날 것 같다. 저녁 메뉴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물론 이 날은 ‘노동절’이지 ‘성취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노동을 했다는 사실만을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으로 일구어낸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톨스토이를 만난 적이 있는 어떤 이에게 그가 손수 만든 장화가 어떻더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그렇게 후진 장화는 처음 봤노라고 답했다.
정원가의 열두 달. p.88


정원가의 열두 달. 4일.

앗! 뜨뜨..

7월의 볕은 금세 뜨거워진다.

우리 집의 에어컨을 켜는 조건은

최소인원 3명.

세탁과 건조 완료.

더 이상 가스레인지 사용할 일이 없을 것.

빨래를 마치는 사이 콩나물국을 끓이고(어제도 콩나물, 오늘도 콩나물. 콩나물은 효자 식재료다), 바싹 불고기를 구워 두었고,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데쳐두었다.

토요일이니 최소 3인도 충족됐다.

오전 11시 30분. 에어컨 가동.

시원~하다.

그나저나 내 화초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매일 마음 한쪽이 찝찝하다..

달려가다 보면 적어도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평선이 얼마나 광활한지, 언덕이 얼마나 푸른지 알아차린다. 하지만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지닌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은 없다.
정원가의 열두 달. p.153-p.154


정원가의 열두 달. 5일.

책을 읽다가 소홀했던 식물들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식물들을 갈무리하다 보니 노동의 동작이 어설펐다.

시든 잎을 정리해 주고, 일일이 수돗가로 옮겨 더위에 지친 식물들을 물로 샤워시켰다. 실내에서 자연의 공기와 빗물을 만나지 못하는 식물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정원가의 열두 달. p.201

친구 같은 책을 덮는다.



독서 그 후.


먼저 <정원가의 열두 달>의 표지에 쓰여있는 가드닝의 명저란 말은 조금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카렐 차페크는 '아무리 간편한 비법이 있다 해도 결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곤 가드닝에 대해 자신이 벌인 일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며 정원 가는 반드시 스스로 부딪치고 인내하면서 깨달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실제로 책을 읽을수록 점점 가드닝의 가면을 쓴 철학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0년이나 된 철학책이라고 하면 책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나처럼 가드닝 책으로 알고 읽기 시작하는 사람만 보석 같은 책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이 식물을 잘 키우게 하는 지침서는 절대 아니고, 식물과 꼭 닮은 사람을 키우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책 표지의 꽃이 달개비 꽃인지 페튜니아인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책이 도착했을 때 초록색 꽃은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그 빛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초록색 반짝이가 내 손끝에 스며들었을 것 같다.

(책이 처음 도착했을 때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어디에 저장해 뒀는지 찾을 수가 없다.)

내 손에 들어온 <정원가의 열두 달>은 표지까지도 참 예뻤다.

책을 열고 더 놀란 것은 1929년에 출판되어 곧 100년이 되는 책이란 것이다.

위트 있는 글을 쓴 카렐 차페크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식물과 동물을 좋아한다. 귀여운 그림들을 그린 요제프 차페크는 무대미술과 극작가인 그의 형이다.

1800 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실용주의적인 영향을 받은 탓인지 구태 하지 않고, 경쾌하며 미래지향적이었다. 하긴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씨앗이 나무가 되고, 두장의 떡잎이 자라 꽃을 피우게 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아주 진취적이고 미래를 향한 일이다. 동시에 흙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독서 횟수를 더할 때마다 기록하고 싶은 구절이 점점 더 많아져 사실 통째로 이 책을 옮기고 싶어진다. 이 글을 작성하며 많은 구절을 넣다가 지워버렸다.

이 책이 모두에게 좋은 독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나 역시 손바닥만 한 정원도 없고, 식물에 대한 지식도 어설프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우리가 정원을 가지던 못 가지던 식물을 키운 경험이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런데도 만일 책을 읽기 싫다면 탁월한 생명력을 가진 스킨답서스, 물 주기에 신경이 느슨해져도 되는 다육식물, 꽃을 피워보고 싶다면 제라늄을..

제발 꼭 하나의 식물을 키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식물을 키우는 과정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 아마도 책에 담긴 내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정원가의 열두 달>을 브런치에서 소개하는 것은 두 번째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어느덧 4년 전 일이다.

몇 번을 읽었을까? 그냥 자주 만나는 오랜 친구 같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 책을 읽기 시작한다. 작가와 함께 1월, 2월, 3월.. 1년이 지나고 12월을 맞는다. 겨울 땅을 뚫고 구근의 싹이 돋고, 꽃이 피고 그러다 낙엽이 지면 다시 눈이 내리고 1월이 되어 유리창에 성에꽃이 피면 언제나 마음이 고요해졌다.

나는 사람이기에 삶의 혼란은 사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책을 펼치다 보면 어느 날엔가 초록색의 꽃잎도 흐릿하게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초록색 반짝이던 꽃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나만이 알아볼 수 있게 되도록 <정원가의 열두 달>과 남은 인생을 함께할 만하다.

‘내가 이 땅을 떠날 때 넣어달라고 할까?’


<정원가의 열두 달>은 왠지

100년을 살아온 생명력을 가진 식물처럼 여겨진다.

“카렐, 우리 또 만나요~”

완료된 연재북 [아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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