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책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김용택
시집
시인의 말
바람이 불던 날이었습니다
나비가 날던 곳이었습니다
돌멩이를 힘껏 던지던 강가였습니다
태어나지 못한 말들이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여
몇 자 따로 적었습니다
2021년 여름
김용택
큰 가방, 작은 가방, 손뜨개 가방에
간혹 커다란 주머니에
주머니도 없다면 맨 손에
언제나 마지막 패션의 완성은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시집이다.
어디서든 얼마만큼의 틈이든
그사이에 시집 아무 곳이나 툭 펼쳐 한편 또는 서너 편을 읽는다.
지금 가진 것은 세 번째 책인데 가장 짧은 사인글이 들어있다. 세 권의 시집마다 분명히 다른 사인 글이 들어 있었는데 내 아둔한 머리 탓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세 번째 구입한 책이 또 어느 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어떤 순간에 누구에게 가게 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갈 것이다
(가면 또 사겠지. 곁에 없으면 너무 허전하니까)
내가 가졌던 첫 번째 시집은 큰 아이에게 주었는데 무척 좋아했다. 감명을 주었을까? 아이가 퇴사하던 날 감사했던 팀장님께 시집을 사서 선물했다고 한다.
두 번째 시집은 10년 만에 한국에 온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헤어지던 날 회기역에서 친구에게 주었다.
”새 거 아니고 읽던 건데 널 주고 싶어. 괜찮니? “
“네가 읽던 거라 난 더 좋아.”
그렇게 아끼는 책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고 또 갔다.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시집은
아끼는 여러 책 중에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어디에나 함께 가는 우린 단짝이다.
시집에 대한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가장 좋아하는 - 꽃도 안 들고- 를 적어 내 단짝을 소개한다.
꽃도 안 들고
김용택
서쪽으로 걸어간다
오늘은 어제의 경계를 넘어보았다
내 몸이 갠다
내 뒤의 발소리를 벗어두었다
풀잎들은 별을 따 올
저녁 이슬을 달고
내 고요는 멀리서 깜빡이는
별 가까이 갔다
오늘이 이렇게 난생처음인데
그대에게 줄
꽃도 안 들고
어떤 꽃이 이 책과 어울릴까 이것저것 찍어본다. 하지만 역시 내 가방과 제일 잘 어울린다. 단짝이라서..
그사이의 느낌.
나는
난생처음인 오늘에게 뚜벅뚜벅 간다.
나는
꽃도 안 들고서..
내게
언제나 난생처음인 오늘에게
내가
내일은 꽃을 준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