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독서 일기
<잔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
강명희 지음
중편소설
언제, 어떤 연유로 이 책을 선택해 구입했을까 생각나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아예 잊힌 채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이다. 어떤 내용일까 전혀 상상도 안 되는 책을 펼치자 눈을 뗄 수 없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노란색 속표지가 마치 태고의 이야기를 간직한 보석인 호박의 깊은 색으로 느껴졌다.
잔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
이 책은 세 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답답하고 미련해 보였던 우리 할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글 속에 녹아있었다.
뒤늦게 나는 그녀들의 삶이 이해되고 뭉클하게 느껴졌다.
바보라고 생각될 만큼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할머니들은 사실은 대단히 능동적이며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었다.
남성의 바람, 여성의 재가, 첩과 어울려 사는 삶의 모습 등의 시대적인 불편한 이야기들이 전혀 거칠지 않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작가의 글솜씨가 제대로 발휘된 것으로 생각된다.
독서의 묘미는 또 있다. 흙과 바다와 동물에 대해서 답답함 없이 정확한 묘사를 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표현되며 어우러져 있었다. 독일 마장의 말과 교감을 하기도 하고, 행복과 아픔을 간직한 동산을 생생하게 떠올리게도 된다.
실화를 기반으로 소설화하였으나 불편한 소재들은 편향적이지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글이 탄탄하여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에 가닿을 수 있도록 쓴 글이다.
세 개로 나뉜 길지 않은 글을 읽으며 여러 번 내 안에서 깊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래 여운이 남을 글과 작가의 발견이다.
나는 이 보석 같은 책을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좋은 글을 만나니 좋으면서 또 부러운 생각이 슬며시 든다.
여기서 잠깐,
특별히 하는 일 없는 내게도 공휴일은 여유가 찾아지는 날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임시 공휴일인가?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향한 경례의 의미가 무엇인가?
며칠 동안 이어지던 자극적이고 요란한 비행기 소리처럼 마음이 불편해지는 의미가 퇴색한 임시 공휴일이다.
순하게 와서 닿으며 마음이 가득 차게 만드는 가을의 독서가 소중하고, 참 다행이다.
마음에 남은 구절을 필사해 본다.
화도댁은 씨감자 심을 때 생각이 났다. 움에서 싹을 틔운 감자의 씨눈을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러나 무턱대고 씨눈 숫자만큼 자르는 것은 아니었다. 감자가 싹이 나서 자랄 만큼의 양분을 남겨 두어야 한다. 감자는 씨감자에서 양분을 취하며 자란다. 그러다가 뿌리가 내려 스스로 양분을 흡수할 때서야 비로소 어미에게서 독립하는 것이다.
-중략-
”........ 여자는 말이여. 이 씨감자 같은 거여. 자식이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제 살을 베어 먹여 살리는 씨감자 같은거여.“
어린 농부 중.. p.216-217
2024년 10월 1일.
생각이 많아지는 국군의 날.
독서 그 후.
오래 묵혀 읽었던 독서가 끝난 지 어느새 열 달이 되어간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던 국군의 날에 들었던 여러 의문들을 현재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풀어나가고 있다.
우리 모두의 지난 열 달은 참 치열했다.
그때 내가 왜 이 책을 구입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읽지도 못할 책을 사는 일이 나는 참 좋다. 책을 묵혀 두었다가 읽으면 마치 종이더미에서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한 듯 깜짝 놀라고 기쁘다. 물론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지만..
<잔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 독서 후 지금까지도 책을 지나칠 때마다 표지를 쓰다듬어주게 된다. 그러면 책 안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다. 파독 간호사와 자식을 두고 재가한 과부와 어린 농부가..
계속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독서였고, 좋은 작가의 발견이었다는 뜻이다.
작가의 다른 책을 서점 바구니에 담아두고 아직까지 구입하진 못했다. 다음 달 아니면 그다음 달.. 언젠가 반드시 내 곁으로 올 것이란 것을 확신한다.
이 책에는 서평이 아닌 동생이 쓴 독후감이 적혀있다.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다.
평소에 아주 이해가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뒷부분의 서평을 보지 않는다. 게다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 쓴 평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거른다. 그러나 이 책의 독후감은 끝까지 꼼꼼히 보게 되었다. 그것은 왠지 글의 연장선 같게도 생각되었다. 독후감은 어느 평론가나 해설가가 쓴 것보다 진실성이 와닿았고, 누나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동생의 마음은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
서평이 아닌 독후감을 쓰는 이유
이 책을 쓴 강명희 소설가(이하 저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둘째 누나다. 저자는 1955년생 나는 1957년생이다.
(중략)
저자의 소설 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저자에게 소설은 "하고 싶은 거"고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고 "삶의 전부"이다. 저자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자식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제 살을 베어 먹여 살리는 씨감자" 같은 소설을 쓸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잔치국수 분천 어린 농부> p.236
저자가 1955년생이란 것과 첫 소설집이 2013년에 나왔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뭔가 늦지않았다는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만일 내가 책을 엮게 된다면 하나뿐인 오라버니에게 독후감을 부탁해야겠다는 꿈을 꾸어본다.
"얼마나 좋을까?"
꿈이란 역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