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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Jan 11. 2023

계획과 변수

2023년은 충동적으로 살기로 했다. 타고난 P 성향이지만 일을 하다 보니 어설픈 J 인간이 됐다. 계획하다가 하루가  가기도 하고 계획하다가 겁을 먹고 꼼짝하지 않는 일도 생겼다. 퇴사계획이 틀어지면서 어차피 계획대로   없는  내년은 멋대로 P 인간으로 살자고 다짐했다.

그 첫 실행을 방금 마쳤다. 박물관에 가던 중 한성대입구역이 보였다. 햇살이 잘 들던 카페가 번뜩 떠올랐다. 과일 케이크가 유명한 곳인데 저녁 6시에 문을 닫아 한 번도 먹지 못했다. ( 반차 때 호기롭게 갔다가 허탕을 치기도 했다) 고민하는 사이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박물관은 글렀고 시간이 뜨는데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지하철을 내린 후였다.


햇빛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맛있는 딸기 케이크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미 사람이 여럿 앉아있었다. 평일에는 모두 일하는 줄 알았는데 나만 일하고 있었구나. 심통을 애피타이저로 먹었다.

 케이크는 예상만큼 기막힌 맛은 아니었지만 채광 좋은 창과 느긋한 노래는 좋았다. 원래는 박물관을 돌고 있었을 텐데, 몇천 년 전 유물 대신 달콤한 딸기 케이크를 쪼개 먹고 있다. 치열하지 않아서 좋았다.


창밖으로 들어온 햇빛이 언제 들고 언제 사라지는지 관찰했다. 한 번 지나간 햇빛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눈을 돌려보니 식물도 제법 싱싱했다. 겨울에 이 정도로 시들지 않은 것은 주인이 잘 돌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되려 시들시들한 건 내 쪽이었다. 겨울에 주인이 잘 돌보지 않아서였을까. 건너편에 던져둔 목도리를 꺼내 뚤뚤 감았다.


안내받지 못했지만 들어보니 이용 시간이 1시간 30분이란다. 한 시간이 떴다. 뭐해야 하나. 2023년은 어쩌고. 아니 당장 휴가 계획은. 노트를 펼쳤다. 계획을 짜자. 언제 바뀔지 모를 변덕스러운 계획을.


그럴 거면 왜 짜냐고 할 수도 있지만 맞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옛날 보드게임 속 통과 카드를 꺼내어 들었다. 다 이유를 붙이며 살기에는 피곤하니, 그건 그냥 그런 거로 해두기로 했다.


생각이 없어도 문제지만 나는 늘 너무 많아서 문제였으니까. 때로는 넘어가는 때도 있어야지. 될 대로 되라지 하며 치열함 대신 딸기 케이크를 먹듯이.


그나저나 앞으로는 따듯한 음료를 시켜야겠다. 인테리어가 포근하다고 안도 따듯한 것은 아니라는 거. 춥다. 그것도 무지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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