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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Dec 07. 2021

혼돈의 OTT 이용자를 위한 대안적 공간,종이잡지클럽

복합문화공간 종이잡지클럽

한 권의 잡지를 읽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어렵다. 이는 우리가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쓰는 시간과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두툼한 벽돌책이나 장편소설은 꼬박 주말 이틀을 투자해 방구석에서 자리를 지키며 독파하는 것이 어울리고, 얇은 책은 그보다 짧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잡지는, 늘 페이지 수에 따른 두께와는 무관한 시간을 요구한다. 잡지의 독자는 한 편의 글을 읽거나 한 장의 사진을 오래 바라본 뒤, 다시 목차로 넘어와 그 다음으로 넘겨볼 곳을 즉흥적으로 정한다. ‘종이잡지클럽'은 이런 종이 잡지 독자의 특성을 잘 이해한다는 듯 열람/대여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잡지 전문 공간이다. 2018년 서울 서교동에 터를 잡고, 2021년 제주 건입동에 2호점을 열었다. 


종이잡지클럽 합정점


OTT 이용현황을 고민하던 중에 잡지를 넘겨보는 일


먼저 합정점부터 들어서 보자. 첫인상은 “아담한 공간에 잡지가 가득이다" 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도 잡지는 더 있을 것이다. 종이잡지클럽의 운영진들은,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면 좋을 잡지를 수면 위에 드러내기 위해 꾸준히 서가를 관리한다. 
 
아담함과 거대함. 공간의 규모와 방문자가 느끼는 기분의 상관관계는 OTT 서비스의 문법에 비유할 수 있다.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 입장할 때 우리가 느끼는 압박감은, OTT 서비스에서 지금 볼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들의 목록들을 보기 위해 스크롤을 영원히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와 비슷하다. 바꾸어 말하면, 콘텐츠로 채워진 공간의 규모와 그 공간의 밀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종이잡지클럽'은 방문자의 시선에서 공간이 가진 밀도와 깊이가 한 호흡에 파악될 수 있는, 적당한 정도의 규모를 가졌다.


종이잡지클럽 합정
종이잡지클럽 제주


OTT 이용자로서 우리는 언제나 충분히 흡족하지 못한 한 달을 보낸다. 동시대인들의 공통 경험이다. 그러므로 매 월 구독료를 지불하는 OTT 서비스와 견주어 볼 때에, 종이잡지클럽의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은 다음의 이유들로 이로운 소비다. 1)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자꾸만 나타나는 콘텐츠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시야 안에 들어오는 것들부터 안심하고 넘겨보면 된다. 2) 또한, 국내에서 ‘잡지 전문 공간'의 정체성을 가지고 판매, 열람 및 대여, 커뮤니티 서비스까지 올인원으로 제공하는 곳은 은 ‘종이잡지클럽이 현재로서는 유일하다. 여러 OTT를 구독하는 것이 피로였던 사람들에게 일원화된 공간, ‘잡지가 궁금하면 여기에 오면 된다’는 감각은 소중하다.


종이잡지클럽 합정_new born 섹션


종이잡지클럽은 창간호를 각별하게 조명한다. 합정점의 ‘new born’ 섹션에는 아마도 당신이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을 잡지의 창간호들이 비치되어 있다. ‘멤버십 회원이 만든 잡지'에는 소개말에 관련 내용을 덧붙여서 방문자들의 눈길이 한 번 더 머물게 만든다. 이전까지 다른 잡지에서 하나의 꼭지나 월간 테마 단위로 다루던 내용이 아예 새로운 잡지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섣불리 2호를 기약할 수 없는 비정기적 발행물이라고 해도,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내겠다는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된 눈 앞의 결과물이다.


종이잡지클럽 제주


종이잡지클럽 제주점, 공항 근처의 라운지형 스토어


막 3주년을 맞이한 종이잡지클럽이 생각하는 이곳의 주고객은 다음과 같은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방에 읽을거리와 일할거리가 가득한 사람. 늘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는 동시에 좋아하는 것에 오래도록 애정을 지니는 사람들. 시대의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지만 정작 가장 아끼는 것은 조금 촌스러운 사물들인 분들.”
                                                                                              ⓒ종이잡지클럽 인스타그램


그런데 일상에서 읽을거리와 일할거리가 가득 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들은 여행자가 되어서도 거의 비슷하게 가방을 꾸린다. 종이잡지클럽은 2021년 제주도 건입동에 2호점을 내면서 공항이라는 공간을 깊이 염두에 두었다. 제주공항과 종이잡지클럽 제주점은 대중교통으로는 20분 내외, 택시로는 1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곳은 “공항을 오가기 전 여행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라운지형 스토어”다. 특히 쉼과 일이 뒤죽박죽 된 휴가지에서 일정을 마무리할 때에 들르기 좋은 선택지다. 


제주점에 입장하자마자 전면에 보이는 것은 전국 30개 서점이 큐레이션한 도서들이다. ‘세가방(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의 큐레이션 도서들과 종이잡지클럽이 고른 잡지를 한 공간 안에서 만나보도록 구성했다. 이어서 제주 로컬 매거진 <sarm>, 제주 <iiin> 같은 지역 잡지도 비치되어 있다. 본격적인 여행 전에 들렸다면, 지역에 대한 정서와 지식을 조금 더 익히고 여행을 시작해볼 수 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
종이잡지클럽 제주


합정점, 제주점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숙모드 대신 어느 정도의 생활소음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운영진은 상시 콘텐츠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운영진은 특정 잡지 또는 꾸러미 형태의 잡지를 권해주는 식으로 방문자들과 대화를 이어 나간다. 이미 어떤 잡지를 읽을 지 리스트를 확정하고 방문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잡지를 알게 될 수 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


읽는 사람, 그리고 만드는 사람을 위한


이곳은 잡지로 시대적 흐름과 필요를 채우려는 독자 뿐 아니라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게도 각별한 공간이다. 종이잡지클럽 이름으로 펴낸 잡지 <We read magazine>은 운영진이 직접 읽어보고 선별한 28종의 잡지를 소개한다. 이 잡지는 2021년 여름을 기점으로 반년마다 한 호씩 최소 10호까지는 내는 것을 목표로 시작됐다. 종이잡지클럽은 수많은 잡지들을 한 곳에 모으고 서가를 관리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말과 글로 최대한 많은 잡지들을 소개한다. 방문자들은 <We read magazine>의 구성에 따라 종이잡지클럽을 이용하는 방식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단 무엇이든 넘겨본 후, 이 잡지가 지금의 나에게 왜 흥미롭게 느껴지는지 생각해보고,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들을 2-3개 정도 찾아보는 것이다. 


이곳에 비치된 정기간행물들의 표지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탄 듯 말려 올라가 있어, 마치 유년기의 만화방을 연상시킨다. 빳빳하지 않은 종이 낱장들은 계속해서 잡지가 읽히고 있고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는 증거다. 2018년부터 서울 합정점에서도, 그리고 2021년 제주점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종이잡지클럽은 오늘도 미온적이다 못해 냉소에 가까운 종이 잡지의 세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활기를 더하고 있다.


[ 에디터가 추천하는 잡지 ]


1) <바람과 물> (https://www.instagram.com/wnwmagazine/)

지구의 한 편에서는 ‘이 행성을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열패감이 번져가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후위기와 인간이 아닌 생물에 대해 마음을 쓰는 이들이 있다. <바람과 물>은 후자를 조명하기 위해, 2021년 6월에 창간된 두툼한 생태전환 잡지다. ‘바람'과 ‘물'은 자연,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의 기본 요소임을 환기시킨다. 전문적인 생태적 지식을 쉽게 해설해주고, 질문을 던지며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서로의 흩어진 마음을 모아서 실천을 도모한다. 


2) <한편> (http://minumsa.minumsa.com/1p/)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의 인문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다. 책, 논문, 잡지 모든 것의 속성을 조금씩 닮은 동시대의 새로운 잡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0년 1월 ‘세대'라는 테마를 시작으로 ‘인플루언서', ‘동물', ‘일'까지 한 단어를 테마로 하는 10여편의 글들을 엮었고, 사진은 없다. 출판사 민음사가 펴내고 있는 잡지 라인업(<릿터>, <크릿터>) 중에서도 <한편>은 과월호를 모아서 꽂아 놓으면 원색으로 된 책등의 디자인이 가장 서재의 인테리어를 위한 기능에도 충실하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3) <헵> (https://www.instagram.com/hep.magazine/)

종이잡지클럽이 펴낸 <We read magazines>에서 사진 잡지 입문용으로 소개해주어 알게 된 잡지다. 이 잡지는 음악의 제목을 매 호 주제로 선정해서 연관된 필름사진을 아카이빙 하는 사진 잡지다. 2018년에 제인버킨(Jane birkin)의 1978년 노래 ‘ex-fan des sixties’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간되었다. 곧 뮤지션 스탠딩 에그와 협업하고, 음악을 일상 가까이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뮤직&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을 선보일 계획이다. 



- 글. 서해인 에디터/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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